만약에, 만약에.

“하던 대로 팥떡 하면 되겠지?”

“그러죠, 뭐."

아직은 쌀쌀한, 이른 봄. 입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입주식이란 새집으로의 이사와 새 출발을 축하하는 행사를 말한다. 센터에서는 내담자가 이웃에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도록 입주식 때 떡을 준비하곤 했다. 새집의 주인은 Y와 Y 엄마, 다행히 날이 맑았다.



“새집에 오니까 어때요?"

“제 방이 생겨서 좋아요."

평소와 다르게 방송국에서 촬영팀이 나왔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Y는 수줍게 인터뷰를 했다. Y와 Y 엄마의 사연은 두 번에 걸쳐 소개될 거라고 했다. Y의 방은 협찬받은 책상과 침대로 예쁘게 꾸며졌다. Y는 조금 마른 편이긴 해도 맑고 착했다. 누군가 애써 말하지 않는다면, Y의 엄마가 경미한 지적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Y는 영등포 쪽방 토박이였다. 쪽방에서 태어났고, 쪽방에서 자랐다. 그곳이 Y 엄마의 최선이었으리라. 그 해 여름 쪽방으로 도배 봉사를 갔던 날, 나는 단 한 명의 어린아이도 보지 못했다. 상상컨대 쪽방촌 주민들에게 Y는 얼마나 큰 사랑이었을까. 그러나 나라에서 정한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공간에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흔치 않은 광경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목사님의 노력으로 Y 엄마는 센터와 연결되었다.


‘Y 네 집 구하기’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쪽방 거주 미혼모 가정. 담당자가 일사만리의 마음으로 애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Y는 새집에서 학교에 가고, Y 엄마는 방역 자활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방송 이후 몇 천만 원의 후원금도 Y 엄마에게 전달되었다. 내 사례는 아니었지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작은 보람을 느꼈다.

'Y야, 행복하게 잘 살아라.'

나는 한 두어 번 보았을 뿐인 Y의 행복을 속으로 되뇌었다.


입주식 후 한 달이나 지났을까, 보람은 걱정이 되었다. 가깝지만 엄연히 다른 동네로 이사한 Y 엄마가 계속 영등포 쪽방에 나타났다. 박스를 식탁 삼아 쪽방촌 식구들과 소주 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담당 선생님 말씀으로는 쪽방촌 식구들에게 그간의 도움이 고마워서 Y 엄마가 찾아갔던 거라고 했다. 방역 자활에도 연락 없이 나가지 않아, 확인 연락이 센터까지 왔다. 나는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판단이 살짝 미숙하더라도 Y 엄마는 사회적으로 성인이고 어른이었다.


몇 번의 봄이 지났다. 나는 이제 더 이상 Y를 떠올리지 않게 됐다.

“참,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요?”

“Y 엄마가 죽었대, 암이었다지.”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눈물이 나거나, 슬퍼서 힘든 건 아니었다. 그냥 마음이 묵직하게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오래된 일인데도 아직도 뭉근하다. 내 마음이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잘한다고 했던 일들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주거복지하면 우리는 좋은 집을 생각한다. 사실 맞다. 집이 없어 힘들어지기 시작한 거니까. 그러나 좋은 집은 주거복지의 시작일 뿐 결코 끝이 아니다. 그토록 바라던 집이 생겼는데 여전히 사는 게 힘든 사람들이 있다. Y와 Y 엄마가 그렇다. 전에 만났던 노숙인 아저씨들도 그랬다. 가장 큰 문제는 의지할 곳 없는 외로움이다.‘집도 찾아 줬는데 외로움 따위 다 큰 성인들이 알아서 잘 극복해야지’라고 호통을 친다면 뭐 따로 드릴 말씀이 없어진다. 입주 이후에 Y 엄마의 외로움, Y를 위한 돈 관리를 지속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도박에 중독되면 통상 도박 빚 탕감을 위한 개인회생 단계까지 밟게 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도박중독자들은 주거가 취약하다. 센터 내방 외 아웃리치 주거상담을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비교적 단단한 마음의 비결은 중독자 간 자조 모임이었다. 도박중독 치료 과정에서 중독자 간 자조 모임이 장려되는데, 중독자들은 1년 동안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꾸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원하는 경우 가족 모임도 결성된다고. 도박중독 예방을 위한 자조 모임이 주거안정을 위한 사람 울타리의 역할까지 겸하게 된 셈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주거취약 네트워크’를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다. 주거취약 계층을 돕기 위한 협약식, 민관공이 함께하는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기사와 사진이 차고 넘쳤다. 그런데 정작 ‘주거가 취약했던 사람들의 네트워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만약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를 말한다. 그럴 리는 없지만, 기대나 예상과 다른 좀처럼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 만약인 것이다. Y 엄마의 죽음 앞에서 나는 자꾸 만약을 찾게 된다. 만약에, 만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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