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북유럽으로 떠났냐고 묻는다면
북유럽 하면 흔히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피요르드와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백야, 그리고 긴 겨울, 그것도 해가 거의 보이지 않는 깜깜하고 긴 밤이었다. 덧붙이자면 엘사 정도? 물가가 비싸고 사람들이 키가 크고 영어를 정말 잘한다는 것도 후에 알았지만 북유럽은 나와 상관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친구가 스웨덴이나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을 때도 친구들이 추위에 고생하겠다는 생각 외에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나는 정말 북유럽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아는 게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 내가 북유럽에 대한 관심과 동경이 생기게 된 것은 여행을 떠나기 전으로부터 벌써 몇 해 전, 바야흐로 약 6년 전, 학교에서 사회복지 수업을 듣고 난 후였다. 당시 사회복지에 대해서도 '사회복지' 하면 '봉사활동'과 연관시키며 그 외에는 뭐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던 무식자였던 나는 어느 날 사회복지 개론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교수님께 북유럽 교(?)를 전파당하게 된다.
사회복지의 모델은 대부분 늘 북유럽이었다. 좋은 거는 뭐만 나왔다 하면 스웨덴이었다. '아니 또 북유럽이란 말인가!'라는 말을 혼자 속으로 하며 듣다 보면 '세상에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세상에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세상은 원래 부조리로 가득 찬 불합리한 곳이 아닌가 하며 지금까지 문학 수업에서 카뮈 등이 말한 세계는 원래 부조리한 것이라는 다소 염세적인 문학적 세계관을 뒤흔든다. 아무튼 북유럽 사람들은 끊임없는 이른바 끝장토론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며 그로 인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곳을 만드는 합리적인 사회라는 것을 배웠다. 이쯤 되면 사실 사회복지 수업은 북유럽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북유럽에 대한 세뇌 아닌 세뇌(?)를 당하게 된다.
북유럽에 대해서 알게 되면 사람들은 다소 당황하게 된다. 이른바 '엄친아'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우리와 극과 극에 놓여 있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 없다. 북유럽을 제외한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들도 북유럽은 대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가 신기해하는 게 태반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과 같이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들, 도대체 북유럽이 어떤 곳이기에 저런 시스템이 가능한 걸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행복의 비결이 과연 뭘까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들이 가진 행복의 비결을 나도 알 수 있게 된다면 나도 그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 여행을 그런 탐방의 취지로 기획했으나 실상은 그저 관광하는 다른 여행과 다르지 않았다. 변명이나 다름없지만, 나는 그저 일개 말단 오브 말단 직원이요, 대학원 졸업 논문을 앞둔 수료생의 신분이었다. 짬을 내어 여름휴가를 가는 주제에 조사 탐방 같은 대단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만한 인재는 아니었다. 그런 고로 나는 아주 제한된 예산으로 그저 북유럽에 발을 딛고 살짝 그 세계를 훑어보는 데에 만족하기로 했다.
비행기표는 몇 달 전에 사뒀음에도 불구하고 여행 계획은 바쁘다는 핑계로 내내 미루다 보니 틈틈이 짠다고 짜다가 한 달 전에야 비로소 숙소를 예약하게 되었다. 아뿔싸, 북유럽 물가를 생각 못하고 있었다. 이상한 근거 없는 자신감에 여유를 부리다 그때 가서 보니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르게 그렇게 부지런한 줄 몰랐다. 하루에 기본으로 20만 원은 훌쩍 웃도는 호텔비를 보고 정신을 놓을 뻔하다가 바로 에어비앤비로 시선을 돌렸다. 그랬더니 이미 괜찮은 숙소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예약하고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래서야 여행을 떠날 수 있겠는가, 빚으로 시작해서 빚으로 끝날 것 같은 암울한 예감과 함께 여행 내내 깡통을 주우러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돈은 없으면서 물가는 살인적인 곳에 가겠다고 계획을 한 것 자체가 글러먹은 생각이었나 하는 현타가 오며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거지 체험이라 한들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차저차하여 가까스로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구하고 보니 어느새 가는 날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래도 이왕지사 이렇게 저지른 거 일단 즐겁게 가보자 싶은 생각으로 출발을 앞두고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을 다시 봤다. 배경이 핀란드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핀란드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이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마 내가 핀란드에 대해서도 자일리톨 외에는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땐 약 10년 후 내가 이 영화를 보는 상황과 느낌을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그러고 보면 인생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신비롭고 재미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실야 라인을 보고 손을 흔들어주는 핀란드 수오미 섬 관광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