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나는 여행

혼자 10여 곳을 넘게 여행하며 느낀 점

by moka

내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이제 놀라는 반응도 없이 의례 그렇다는 듯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놀란다고 해봐야 '또 혼자? 혼자 가면 재밌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혼자라서 굳이 재미있을 것도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재미없을 것도 없다. 뭐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나 싶겠지만 뭐든 동전의 양면이 있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껏 20개 국 가까이 다녀왔는데 돌아보면 그중 열 군데가 넘는 곳을 홀로 다녀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가 매우 용감한 줄 알지만 사실 나는 겁이 많다. 나도 딱히 혼자 가고 싶어서 '아무도 없이 혼자서 갈 거야'라는 생각으로 갔던 적은 글쎄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없는 것 같다. 시작은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거나 형편이 맞지 않는 경우였다.


내가 홀로 한 첫 여행은 10년도 전, 아마도 2007년 여름, 공교롭게도 비행시간이 10시간이 넘는 동유럽이었다. 당시 나는 그리스 산토리니와 동유럽을 놓고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집에서는 그리스는 여름에 가면 더 더울 텐데 뭐하러 거기를 가냐며 만류했고 결국 나는 동유럽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 말마따나 그 해 그리스는 폭염으로 여름에 불이 나기까지 했다. 아무튼 여행은 가고 싶은데 동행할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 그때 한 친구가 "혼자 가! 민박집 가보니까 혼자 오는 여자들도 많더라!"라고 했다. '나 혼자 거기 까기 가라고?' 나는 혼자서 먼 이국땅 그것도 비행시간이 10시간도 넘는 곳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근데 친구는 나를 부추기며 말했다. "거기 가서 민박집에서 사람들 만나서 같이 다니면 되잖아. 다들 그러던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단순한 건지 아니면 그만큼 여행이 가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만 믿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으로 홀로 하는 비행이 겁났는데 신기하게도 비행기 이륙 전에 대기하면서 나이가 제법 있으신 한 중년의 여성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약 3,40년 정도 전에 내가 다니는 대학교를 졸업한 대선배였다. 이런 데서 학연 지연 이런 거 따지는 게 웃기긴 해도 하나의 공통점만 있어도 사람은 가까워지기 쉽다. 게다가 혼자 하는 여행이 처음이라 불안했는데 뭔가 하나의 연결끈이라도 있으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비록 자리는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비행을 무사히 마쳤다. 여행을 잘 하라는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헤어졌다.


운 좋게도 민박집에 도착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여행을 즐겁게 마쳤고 나는 내가 혼자 여행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가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혼자 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을 때는 기꺼이 함께 할 수 있었다. 민박집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들도 다들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데 여행을 하며 마음이 열리고 그래서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겐 대부분 서로 조심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친구와 여행할 때보다 갈등이 덜한 면도 있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민박집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당시 유행이었던 '싸이월드'를 통해서 친구를 맺고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다.


돌이켜보면 혼자 여행을 할 때마다 딱히 혼자 가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서 함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혼자라도 다녀오자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결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홀로 떠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맞춰주곤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나의 페이스에 맞춰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함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면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자유롭고 좋았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는 온전한 선택권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홀로 여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낯선 곳에서의 나, 모르는 사람과 함께할 때의 나 등 여러 측면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렇기에 내게 홀로 떠나는 여행은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 나는 늘 나 자신을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되도록 안전한 것을 좋아하고 그런 것들을 선택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소심하고 겁이 많다고 생각했던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는 그 위기의 상황에서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대담하다 싶을 정도로 대범하게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길을 잃거나 무엇을 잃어버리거나, 이상한 사람을 만나거나 아니면 실수를 하거나 하는 등의 상황은 여행에서 흔히 겪을 수 있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 내게 닥친 그 문제를 해결하게 되기 전까지는 매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잊고 있던 내 안의 숨겨졌던 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면 그때의 그런 기억들이 내게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다.


이뿐만 아니라 혼자 하는 여행을 통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 함께 여행할 때에는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기대가 채워지지 않아 실망해서 힘들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떨어져서 혼자 있게 되면 그 빈자리의 크기를 비로소 느끼게 된다. 혼자 외로이 밥을 먹을 때, 의도치 않은 묵언수행을 하게 될 때, 길을 잃어서 무섭다고 느낄 때,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을 때 등 자유로움의 이면에는 외로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같이 힘든 것이든 좋은 것이든 추억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다음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더욱 값진 시간이 된다.


그러니 홀로 하는 여행은 배움과 성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의 발견뿐만이 아니라 타인과 자기 자신, 그리고 삶을 배운다. 여행을 통해 내가 살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나를 던지면서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좋은 일만큼이나 생각지 못한 황당한 일들을 겪기도 하고 역시 힘든 일들도 종종 있다. 그러고 나면 당연히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혼자인 동시에 타인을 필요로 하는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배운다.




핀란드 헬싱키 투어보트에서 홀로 시나몬롤과 따뜻한 커피를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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