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만이 아닌 모든 이들의 축제 고시엔
광주여고 학생들이 만화 고시엔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화 고시엔? 이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가능성이 높은데, 일본에서 고시엔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고교야구를 뛰어넘는 전국 47개 도도부현을 대표하는 축제이기에 야구 고시엔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이름의 고시엔이 진행되고 있다. 야구 고시엔만 하더라도 야구 선수만의 축제는 아니다. 고시엔에 나서는 학생들은 플래카드 걸 뿐 아니라 입장식 진행 아나운서와 음악을 연주하는 취주악부, 지역 예선 스코어보드 담당자, 지역 예선 장내 아나운서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플래카드 걸이 드는 학교 이름은 이른바 서도 고시엔이라 불리는 대회에서 지구별 입상자들이 직접 수기로 작성한다.
야구부의 살림을 담당하는 매니저나 기록 담당, 데이터 담당은 물론이고, 18명 명단에서 제외된 뒤 유니폼을 입고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비 주전 선수들 역시 마친 가지다. 야구 선수들의 빛나는 활약이 있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야구 선수를 뒷받침하는 다른 학생들의 숨은 노력이 숨어 있다.
고시엔 대회가 다양한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시엔은 야구 선수들만의 축제가 아니며, 학생들의 축제를 의미하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학생들이 겨루는 스포츠나 문화 계열 행사를 대부분 ### 고시엔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고시엔이라는 단어는 청춘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고교 럭비 전국대회는 럭비 고시엔이라고 불리는데, 봄 고시엔을 주최하는 마이니치 신문사가
후원한다. 아사히 신문은 농구 고시엔을 후원하고, 산케이 신문은 배구 고시엔을 담당한다.
이름만 들어서는 정확히 무슨 대회인지 알기 어려운 대회도 있다. 바다 고시엔 (海の甲子園)은 세일링 대회를 의미하고, 녹색 고시엔 (緑の甲子園)은 스포니치 신문이 주최하는 고등학교 골프 대회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스포츠 대회와 전혀 관계없는 행사에도 고시엔이라는 이름이 사용된다. 이번에 광주여고가 우승한 만화 고시엔을 비롯해서 IT고시엔과 상업 고시엔, 장기 고시엔부터 우주 고시엔과 쌀 고시엔에다 카레 고시엔까지 고등학생 대상 행사는 대부분 고시엔이라는 이름을 활용한다. 이밖에도 칠판 고시엔과 시 고시엔, 사진 고시엔, 수화 고시엔 같은 문화계 행사뿐 아니라 에어 복싱 고시엔이나 에어 기타 고시엔, 웃음 고시엔 같은 재미있는 행사들이 대거 고시엔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런 각종 고시엔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해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고시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대회가 수백 개에 달하고, 이를 정확히 집계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인데, 일본에서 고시엔이라는 이름이 갖는 위상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사례를 통해, 고시엔이란 이름은 청춘들의 축제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한때 청춘이었던, 과거의 야구 소년들이 겨루는 또 다른 축제도 있다. 이른바 중년들의 축제, 그 이름은 바로 ‘마스터즈 고시엔’이다. 마스터즈 고시엔은 전국의 고교 야구 선수 출신들이 세대와 성별, 고시엔 출전 경험과 상관없이 팀을 이뤄 고시엔 방식으로 우승을 겨루는 대회이다. 매년 11월 주말에 이틀간 고시엔 야구장에서 경기가 펼쳐진다.
고시엔 대회 자원봉사는 참가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경력이지만, 마스터즈 고시엔은 자원봉사가 경력이 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나선다는 것은 일본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마스터즈 고시엔이라는 대회가 비교적 단기간에 의미 있는 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스터즈 고시엔과 비슷한 대회로 국내에서는 야구 대제전이라는 대회가 있다. 70년대 후반 존재했던 고교야구 올스타전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현역 고등학생 선수와 은퇴 선수가 함께 뛰는 대회이다. 야구 대제전이 전직과 현직 선수들이 출전하는 엘리트 야구 선수들만의 축제라면, 마스터즈 고시엔 대회는 고시엔에서 활약했던 선수들보다는 고시엔 무대를 꿈의 무대로 여기고 살아온 평범한 전직 야구 선수들이 도전하는 무대이다. 야구 대제전과 마스터즈 고시엔은 한국과 일본의 야구 문화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시엔 대회의 주연은 당연히 야구 선수들이다. 하지만 주연이 빛날 수 있는 것은 주연을 뒷받침하는 조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조연들이 고시엔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 되고, 고시엔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한, 지금의 청춘과 과거의 청춘들이 여전히 고시엔이라는 이름을 사랑하는 한, 고시엔의 이름은 계속해서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