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교토 국제고, 무난한 대진표 받아
2년 연속 교토 지역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여름 고시엔 무대를 밟게 된 한국계 교토 국제고, 봄 고시엔 대회에서 개막 하루 전 코로나 감염으로 출전을 포기했기에 이번 여름 대회에 나서는 각오는 다른 팀보다 특별할 수밖에 없다. 고시엔의 첫 행사는 8월 6일 열리는 개막식이지만, 8월 3일 진행된 조추첨부터 고시엔 대회가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름 고시엔 대회는 49개 홀수팀이 출전하는 관계로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하는 팀이 나올 수밖에 없어 행운의 팀, 불운의 팀으로 나뉘게 된다. 봄 고시엔 대회에서 교토 국제고의 출전 포기로 인해, 이번 여름 대회에서는 코로나에 걸린 4팀의 일정을 1차전 마지막으로 편성하다 보니, 코로나에 걸린 4 학교가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하는 셈이 되었다. 봄 대회에서 교토 국제고가 눈물을 머금고 사퇴했던 것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교토 국제고는 1회전에서 이와테 현 대표와 대결하는 등 3회전까지는 특별한 강팀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1회전부터 최강팀 오사카 토인이나 지난해 우승팀 지벤 와카야마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조추첨에서만큼은 운이 따른 것이다. 일본은 고시엔 조추첨을 생중계로 진행했고, 조추첨이 끝나자 아사히 신문은 고시엔 추첨 결과를 호외로 발행했다. 또한 학교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A-B-C 등급으로 평가하는데, A등급인 교토 국제고는 3회전까지는 A등급 학교를 만나지 않는다. 공은 둥글로 결과는 알 수 없지만 3회전까지는 한국어로 된 교토 국제고의 교가를 2회 초에 한번, 경기 끝나고 한번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럼 8강 이후의 대진은? 다시 추첨을 한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워졌지만 2019년 연말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국내 팬들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일본이었을까? 국내 콘서트 예매는 선착순으로 진행되는 관계로 중년 아미들의 경우 이른바 ‘광클’ 능력이 세대에 비해서 떨어질 확률이 높다. 반면 일본은 팬클럽을 대상으로 1차 추첨을 하고, 일반 추첨에 이어 선착순 예매를 진행하기에 콘서트를 볼 확률이 한국보다 높은 것이다.
한국은 선착순을 선호하고, 일본은 추첨을 좋아한다. 문화적인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선착순이, 일본은 추첨이 보다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착순으로 배정하는 광클의 경우 콘서트뿐 아니라, 입시 학원의 인기 강좌나 대학교의 수강 신청까지 이어진다. 이런 방식은 여름 고시엔 대회 대진 추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름 고시엔 대회 대진 추첨은 대회에 출전하는 49개 학교 주장들이 모여 진행하는데, 누가 먼저 뽑을 것인지를 놓고 제비뽑기를 한 뒤에 순서대로 제비를 뽑아 대진표를 완성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국제 축구연맹 조 추첨에서도 동일하게 진행된다. 일반적인 스포츠 행사와 다른 여름 고시엔의 특징은 이런 제비뽑기를 3번이나 진행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추첨을 통해서 1회전부터 3회전까지의 상대를 가린 뒤에 8강은 3회전 이후에, 준결승은 8강전 이후에 추첨을 통해 상대를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3번이나 추첨하는 것은 추첨이라는 오랜 전통에다 추첨 제도를 통한 시행착오를 경험한 뒤에 정착된 것이다. 초창기 고시엔 대회에는 참가팀이 적었기 때문에 굳이 추첨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참가팀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제5회 대회부터 대진 상대를 추첨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전 경기를 추첨으로 진행했다. 전 경기 추첨이란 이름으로 고시엔 야구장에서 공개 추첨을 통해 상대를 결정했다. 1회전이 끝나면 2회전 추첨을 하고, 2회전 이후에 3회전 추첨을 하는 방식이어서 추첨 횟수가 지금보다 더 많았다. 이렇게 추첨을 하더라도 도쿄와 홋카이도처럼 2 학교가 출전하는 지역의 경우 1회전에서는 대결하지 않는다던가, 저녁에 경기를 끝낸 학교의 경우에는 아침 경기에 배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통해 불공평함을 줄이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방식을 거친 뒤 2017년부터 현행 방식인 3회전까지 일괄 추첨한 후, 8강, 4강전을 추첨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이렇게 추첨을 여러 차례 하는 것은 추첨을 좋아하는 일본에서도 축구나 배구 같은 다른 종목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고시엔 추첨은 공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야구팬들에게는 흥미로운 행사이다. 고시엔 추첨에 관심이 집중되고, 대진 상대가 결정되면 또다시 기사를 쓸 수 있기 때문에 다소 번거롭지만 미디어에게도 좋은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월드컵 축구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토너먼트 대회는 24개 팀이나 32개 팀처럼 짝수로 출전 팀을 구성한다. 여름 고시엔 대회처럼 49개, 홀수 팀이 출전하는 토너먼트 대회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홀수 팀이 출전하면 부전승을 거두는 팀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일본에선 특별히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월드컵 조 추첨을 하면 대부분 이른바 ‘죽음의 조’가 탄생하게 된다. 우승 후보들이 같은 조에 몰리게 되면 흥미로운 대결이 펼쳐지게 되지만, 강팀이 탈락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고시엔 야구는 토너먼트이기 때문에 우승 후보가 1회전 탈락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고시엔 본선 무대에 진출한 팀이라면 실력 차이가 나더라도 일정 정도 이상의 수준을 갖췄다고 할 수 있기에, 우승 후보들이 1회전에서 만난다 해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지는 않는다. 여름 고시엔 대회는 3번의 추첨을 통해 우승을 가리게 된다. 어떤 팀이 상대가 될지 추첨 전에는 알 수 없다. 일본인들은 길흉을 점치는 제비뽑기를 즐기면서, 여러 번의 추첨으로 완성되는 청춘들의 승부에 열광한다. 스포츠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3번의 추첨 행사는 여름 고시엔의 드라마를 풍요롭게 만드는 조연 배우 같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