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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그린드레스 Aug 15. 2021

인어 스토커

다시 쓰는 <인어공주>

아스라한 봄날이었어요. 인어 왕과 인어 왕비가 문어 과학자를 찾아갔어요.

“우리 둘은 아이를 낳을 수 없대요. 바다에 인어는 우리 밖에 없어서 입양도 못해요. 시험관 아이도 못한대요. 사이보그 인어 아이를 만들어주세요. 우리의 DNA와 영혼을 심어주세요.”


과학자는 사이보그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말했어요. 왕과 왕비는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만들어 달라고 졸랐어요. 과학자는 부지런히, 그럴듯한 사이보그 인어 공주를 만들었어요.


꼬물꼬물 물방울을 터트리는 귀여운 꼬마 공주가 왕과 왕비의 품에 안겼어요.

“우리 공주님, 이름은 ‘에리얼’이다.”


과학자가 왕과 왕비에게 돈을 내라고 하니 둘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이렇게 비쌀 줄이야. 일단 반만 내겠소. 다음에 갚을게요.”


과학자는 자식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때와 태도가 달라진 둘을 보니 화가 치밀었어요.


인어 공주, 에리얼은 진짜 인어처럼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에리얼은 어느새 16살이 되었어요.


에리얼은 개구쟁이라 물 밖에 자주 나갔어요.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오는 날에도 물 밖에 몸을 내밀었어요. 그날도 그랬지요. 에리얼은 험상궂은 날씨가 마냥 즐거웠어요. 거친 빗줄기를 맞으며 물밖에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는데 커다란 배가 뒤집어지고 박살 나는 걸 보았어요. 사람들이 바다에 빠졌어요. 모두들 우왕좌왕하며 헤엄치는데 한 젊은 남자만 바닷속 깊이 빠지고 있었어요. 에리얼은 그 남자를 한 팔로 감고 뭍으로 데려다주었어요.


정신을 차린 남자는 에리얼에게 고맙다고 하려다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어요. 에리얼의 다리가 물고기 비늘로 덮여있어서 놀랐거든요. 에리얼은 이를 까맣게 모른 채 입을 헤벌렸어요. 남자의 외모에 넋을 잃어서요. 둘이 멍하게 서로를 보는데 사람들이 달려왔어요.

“왕자님! 왕자님, 괜찮으세요?”


에리얼은 언제까지 뭍에 있을 수 없었어요. 뭍에서 지내려면 인공 아가미가 있어야 하거든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어서 바다로 돌아갔어요.


왕자의 눈부신 외모에 반한 에리얼은 매일 뭍으로 나가 왕자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왕자는 궁전에 돌아갔고, 에리얼은 뭍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어요.


왕자에게 반한 에리얼은 상사병이 났어요. 에리얼은 왕과 왕비에게 인공 아가미를 사달라고 졸랐어요. 왕과 왕비는 고개를 젓고, 큰소리로 말했어요.

“인간은 인어를 흉측하게 봐. 인공 아가미가 있어도 네 지느러미를 깔볼 거야. 정신 차려!”


에리얼은 풀 죽어 돌아섰지만 곧장 두 눈을 불태우며 문어 과학자를 찾아갔어요.

“……인공 아가미를 만들어주세요. 지느러미도 인간의 다리로 만들어주시고요. 저는 사이보그라 만들기 쉽잖아요. 돈은 나중에 낼게요.”


과학자는 짜증이 밀려왔어요. 왕과 왕비는 에리얼을 만드는데 든 돈을 아직도 다 안 갚았거든요. 자식까지 이렇게 나오니 어이가 없었어요. 과학자가 거절하니, 에리얼은 무릎을 꿇고 빌었어요. 과학자는 에리얼을 노려보면서 말했어요.

“너를 만들어 준 값까지 네가 다 갚는다고 약속해. 못 갚으면 궁전을 빼앗을 거다.”


에리얼은 꼭 갚겠다고 약속하고 각서도 썼어요.


과학자는 인공 아가미를 보청기처럼 작게 만들어서 에리얼의 목에 붙이고, 지느러미를 다리로 만들어주었어요.


에리얼이 뭍으로 나가려고 몸을 돌리자 과학자가 에리얼을 붙잡고 말했어요.

“왕자를 잡아서 꼭 결혼해라. 그래야지 갚을 돈이 생길 테니.”


에리얼은 왕자와 결혼하리라 다짐하며 뭍으로 나갔어요. 궁전을 찾아가서 왕자를 불러냈어요. 왕자는 에리얼을 보고 흠칫 떨며 경호원에게 쫓아내라고 했어요.


에리얼은 멀리서 왕자를 지켜보고 소문을 들었어요. 왕자는 석 달 후에 결혼을 한대요.


에리얼은 다시 왕자를 찾아가서 소리쳤어요.

“이봐, 내가 당신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보답은커녕 날 쫓아내다니. 은혜도 모르는군.”


왕자는 겁에 질려서 대답했어요.

“당신이 날 보는 눈빛이 부담스럽고 느끼해서 그랬어요. 쫓아낸 건 미안합니다. 원하는 걸 드릴게요.”

“난 당신을 만나려고 뭍까지 왔어. 내가 원하는 건 너야. 너, 나랑 결혼하자.”


에리얼의 말을 들은 왕자는 펄쩍 뛰면서 고개를 저었어요. 보기 좋게 거절당한 에리얼은 부르르 몸을 떨었어요.


깊은 밤, 에리얼은 잠이 오지 않아 바닷가를 걸었어요. 바다 위로 머리 두 개가 올라왔어요. 인어 왕과 인어 왕비였어요.

“딸년 잘못 둬서 이게 뭔 짓이냐. 너, 우리가 진 빚까지 갚는다고 했다면서? 미치겠다. 왕자가 결혼하면 돈 다 갚아준대?”


에리얼이 고개를 젓자, 왕과 왕비는 날카로운 칼을 내밀었어요.

“이 칼로 왕자를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라. 그것만이 살 길이야.”


칼을 집어 든 에리얼은 망설였어요.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인데 협박을 할 수는 없었어요. 석 달이라는 시간이 있기에 에리얼은 왕자를 사로잡아보려고 애썼어요. 매일 왕자를 쫓아다녔어요. 지친 왕자는 에리얼에게 단호하게 말했어요.

“이건 스토커가 하는 짓이. 더 이상 못 참겠소. 다시 한번 찾아오면 감옥에 가두겠소.”


에리얼은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과 자존심이 사라지는 걸 느꼈어요. 에리얼은 이제 왕자를 미워하게 되었어요.


그날 밤, 에리얼은 왕자가 있는 궁전에 몰래 들어갔어요. 잠든 왕자의 목에 칼을 대고, 바다에 있는 문어 과학자에게 스마트 메시지를 보냈어요.

-돈 갚아야 하는데 현금을 못 구했어요. 돈 대신 인간 어때요? 성별은 남자고요.


과학자는 좋다고 했어요.


에리얼은 왕자를 끌고 나왔어요. 팔로 왕자의 목을 감고 바람처럼 달려가서 바닷속에 뛰어 들어갔어요. 숨을 쉴 수 없는 왕자는 죽었어요. 에리얼은 왕자를 문어 과학자에게 넘겼어요.

“이제 돈 다 갚은 거 맞죠?”


셈이 깐깐한 과학자는 왕자의 값어치를 따져보고 맞다고 대답했어요.


왕자가 실종되자, 궁전 사람들은 CCTV를 돌려보았어요. 에리얼이 왕자를 끌고 가는 걸 보고 스토커가 결국 일을 냈다며 혀를 찼어요. 바다를 뒤져보아도 왕자를 찾을 수 없었어요.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왕자는 전설이 되었어요. 바다의 거품이 되었다는 구슬픈 소문이 돌았어요.


에리얼은 다시 운명의 남자를 찾으려고 한 달에 한두 번 뭍으로 나오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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