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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Sep 15. 2022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트레바리_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스베냐 플라스펠러)



 책의 저자는 현대인을 인정중독과 일에 대한 강박적인 사랑에 시달리는 향락노동자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런 맹목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일을 사랑하기 위해서 휴식과 여유, 놓아두기를 권한다.그의 말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성과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려 애쓰고 이를 통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언가든 하고 있지 않으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런 나는 뭔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는 그러한 워커홀릭이 마치 우리가 인정을 원하기에, 일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싶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그래서 이를 멈추고 내려놓는 것 역시도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에 달린 것처럼 가정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정말로 그러한가 의문을 품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많은 직장인, 노동자들은 무언가 더 좋은 성과를 위해 퇴근도 휴가도 반납하고 일을 한다기 보다는,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내버려진다는 불안감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자발적인 워커홀릭이 되는건 아닐까.


즉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더 빨리 더 멀리 달리기위해 밟는 페달이라면 좀 덜 욕심부리고 내려놓기를 선택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그게 저자가 말하는 자유가 있는 일에 대한 사랑, 멈춤으로써 얻게 되는 일에 대한 더 큰 생산성과 창의성일 것이다. 하지만 페달을 밟지 않으면 바로 뒤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절박함, 그러므로 살기위해 앞으로 나가는게 아니라 제자리라도 유지하고 있어야한다면 워커홀릭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이런 고된 노동을 기꺼이가 아닌 어쩔 수 없이 감당해내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건 개인이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정의한바대로 살 수 있고, 본인 삶에서 일의 비중과 일에 투자할 에너지의 양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되는 사회적 시스템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의 말처럼 '놓아두기' 에는 노동현장은 너무 촘촘히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있고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며 그런 틀 속에서 개개인은 쉽게 무력해질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 살아남느라 애쓴다, 라는 절박감에 대한 이와 공감, 또 이제 그만 애써도 괜찮아, 라는 우리 존재에 대한 위로와 존중이야말로 현대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의미로 오늘도 수고한 우리 모두에게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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