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십 리 못 미처 서민들의 터전이 된 곳

- 2015년 제3회 서울, 우리 동네 이야기 입선작

by 어스름빛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명으로 새 도읍지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와서 풍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밭에서 쟁기질을 하던 농부가 십 리를 더 가면 좋은 땅이 있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들은 무학대사가 ‘서울’을 도읍지로 삼았고 이곳의 지명은 ‘왕십리(往十里)’가 되었다. 이 유래담은 조선의 도읍지를 정했던 사람이 민중이었기 때문에 민중의 지혜를 상징하는 이야기로도 풀이된다.


하지만 나는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무학대사를 만난 농부는 살아갈 땅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민중의 모습은 새 도읍지를 결정하는 현명한 사람보다는 평범하게 살아갈 터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대의 농부가 살던 왕십리는 지금도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터전이다.


‘성동구’에 위치한 ‘왕십리’는 경복궁이 있는 옛 서울의 고풍스러운 번화함도 없고 압구정 같이 새 중심지가 풍기는 도시적인 세련됨도 없다. 강남과 강북이 가까워 교통의 요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서울의 중심부는 아니다. 옛 도읍지 ‘서울’과 십 리 떨어진 변두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고 해야 할까.


왕십리 역사를 따라 철도길이 지나가는 행당1동에 가 보면 여전히 ‘응답하라 1988’에 나올 듯한 풍경들이 보인다. 이마트가 생기면서 행당시장의 규모가 작아졌다. 시장 옆으로는 아파트도 보인다. 하지만 그 틈을 비집고 한 자리에서 50년쯤 버틴 것처럼 보이는 오래된 간판이 보인다. 양장점과 유리 가게, 인테리어 가게, 속옷 가게가 낡고 닳은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예전만큼 복닥 복닥 한 시장거리는 아니지만 저녁때가 되면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는 ‘뽀글거리는 파마’ 머리의 아주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행당동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마장축산물시장이 있다. 마장축산물시장은 1963년 숭인동의 도축장이 옮겨 오면서 근처에 소, 돼지의 부산물을 파는 상점이 하나 둘 생기면서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축산물시장이 되었다. 1998년 도축장은 문을 닫았지만 축산물시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소고기가 먹고 싶은데 가진 돈이 많지 않을 경우 마장축산물시장에 가면 된다. 전문식당에서 파는 금액에 비해 2-3배 저렴한 가격으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쭉 늘어서 있는 도매상점에서 고기를 구매하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상차림비만 내고 구워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장축산물시장에는 요즘 가장 가난하다(?)는 20대들도 종종 보인다.


그뿐이 아니다. 한양대학교 옆엔 청계천 끝자락이 흐르고 ‘살곶이 다리’가 있다. 보물 제1738호인, 이 평평하고 넓은 돌다리는 역사도 유구하다. 세종 2년(1420)에 다리를 놓는 공사가 시작되어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이곳을 지나다니는 백성들을 많아지자 성종 14년(1483)에 완성된 다리이다. 이곳을 지나면, 동쪽으로는 강릉에 닿고 동남쪽으로는 송파에서 광주·이천을 거쳐 충주로 나갈 수 있었다. 남쪽으로는 성수동 한강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왕십리가 서민들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였던 역사는 지하철 노선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길고 유구했음을 알 수 있다. (고종 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이 다리의 석재를 사용해 일부가 손상되고 이후 방치되었다가 1971년에 보수·복원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한때는 살곶이 다리 밑 개천이 깨끗하여 백성들이 멱을 감던 놀이터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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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살곶이 다리’ 근처가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어 다리를 지나 광진구 군자동으로도 갈 수가 있다. ‘살곶이 다리’를 지나며 가끔 상상해 보았다. 조선 시대의 중인, 평민, 서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던 모습을. 가끔 왕께서 선정릉과 헌인릉에 가기 위해 가마를 타고 지나가시는 모습을. 다리 밑에서 시원하게 옷을 벗은 사람들이 멱을 감고 있는 모습을. 더 이상 깨끗하지 않은 청계천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만 나지 않는다면 더 오래 상상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2005년, 성동구에 서울숲이 생기면서 크고 높은 건물들이 하나 둘 세워지기 시작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 옆으로 위화감이 드는 도시적인 풍경들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숲 덕분에 성수동 역시 임대료가 비싸지는 현상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작년에는 한양대에서 청계천으로 진입할 수 있는 썰렁했던 삼거리 길목에 포스코에서 지은 주상복합건물도 들어섰다. 내가 알던 왕십리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얼마예요?” 물으면 인심 좋은 얼굴을 하고 “얼마면 사게?”하며 웃으며 응대할 것 같던 왕십리의 얼굴이 ‘정찰제 가격’을 붙인 도시 상인의 얼굴로 변해가는 기분이 든다. 조금 멀리서 보던 자본주의의 얼굴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다행인 사실은, 왕십리를 평범한 사람들의 터전으로 지킨 농부의 마음이 ‘성동구청’ 장에게도 전혀 졌나 보다. 지난 9월 23일 성동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방지 조례’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동네가 유명해지면 임대료가 집값이 상승해 오히려 원래 살고 있던 주민이 쫓겨나는 이상한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겠다는 생각은 친서민적이다. ‘성동구’가 부자들이 아닌 서민들의 공간임을 ‘성동구청장’ 역시 직시하고 있었나 보다.


서울이 ‘서울다워지는 현상’은 어쩔 수가 없겠다. 도시는 더 개발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더욱 변두리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왕십리’라면 ‘도시다움’에서 십 리 못 미처, 앞으로도 서민들의 땅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부질없는 기대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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