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미란이’에게

- 2015년 제9회 경기도시공사수필전 입선작

by 어스름빛

그곳에서는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던 첫날,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고릿 고릿한, 구린내와도 비슷한 냄새가 났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느닷없이 광주로 이사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이제 막 새 친구가 생기려고 할 무렵의 일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이사를 왔던 생경하고도 불쾌한 기분이 광주초등학교의 첫인상을 구린내 나는 곳으로 느끼게 했던 것 같다.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여느 곳에서나 경험하게 되는 텃세 때문이었는지, 낯선 환경에 내가 적응을 못한 탓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사한 곳은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 초월면 초월리’였다. 그곳은 1시간을 걸어야 초등학교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가야 초등학교에 등교할 수 있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수련관이 산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파트가 늘어서 있던 동네에 살던 나였다. 그런 내가 풀벌레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불빛도 전혀 비추지 않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학교에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기에 쉬는 시간에도 혼자 앉아 책만 읽었다. 학교가 파하면 재빨리 버스를 타고 하교를 해야 했다. 도무지 친구를 사귈 수가 없었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은 오전, 오후반이 있었기 때문에 오후반이 되면 오빠 없이 혼자서 학교를 다녔다. 외로울 수밖에 없던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던 하굣길이었다. 왠지 색다른 길로 가 보고 싶었다. 낯선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지천으로 핀 들꽃을 꺾어 손에 들고 여기저기 걷다가 우연히 어느 한옥 집 한 채를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마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집안에서 얼굴이 까맣게 탄 아주머니가 나왔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놀라는 기색도 없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아무 의심 없이 따라 들어갔다. 대청마루를 지나 방문을 열었더니 한 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처럼 얼굴이 까맣고 눈이 동그랗고 큰 아이가 나를 보며 같이 놀자고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미란이였다.


그때부터 심심할 때마다 미란이네 집에 가서 놀았다. 같이 놀면서 미란이의 얼굴이 왜 까맣게 되었는지도 알았다. 미란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 7살이었는데도, 농사일을 돕느라 뙤약볕 아래서 일했기 때문이었다.


미란이를 만나기 전까지 책만 읽었던 내 하얀 얼굴이 부끄러웠다. 미란이와 놀며 산과 들을 많이 누비며 걸어 다녔다. 미란이는 내게 자연 속에 얼마나 많은 먹거리가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수많은 녹색 줄기 중에서 찔레순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고 껍질을 벗기고 내 입에 넣어줬다. 입에 넣고 씹으니 단 맛이 났다. 뽕나무에 열리는 보라색 열매를 함께 따 먹을 땐 통통하고 흰 지렁이처럼 생긴 벌레를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미란이와 함께 다녔던 추억이 있었기에, 등․하교를 하던 산길은 더 이상 지루한 곳이 아니었다. 미란이와 나는 다른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학교를 같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혼자 걸어도 여유를 가지고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며 걸을 수 있었다.


뱀을 만나도 미란이가 가르쳐 준 대로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가 버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랬던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도 광주읍내로 이사를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미란이를 만나지 않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미란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낯설던 경기도 광주에 처음 이사하고 느꼈던 외로움을 따스한 정으로 채워주었던 마음은 앞으로도 평생 기억하고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고맙고 그리운 미란이를 나는 왜 이토록 잊고 살았을까? 어쩌면 살면서 또 다른 미란이를 만났기 때문은 아닐까?


초등학교 5학년,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었던 윤정이. 광주에서 성남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해 버스를 타고 다닐 무렵,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내가 무서울까 봐 먼저 끝나도 꼭 기다려서 함께 집으로 돌아갔던 다혜. 대학 시절, 가난했던 내가 밥을 굶을까 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밥을 같이 먹자던 승희 선배.


결혼을 하고, 이사를 하던 첫날에 신혼부부가 왔다며, 행복하게 살라던 윗집 아줌마는 어린 시절 내가 만났던 미란이의 다른 이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미란이를 잊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잊지 않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들에게 받은 조건 없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플랜코리아’에 해외아동결연을 맺어 매달 적은 금액이나마 후원하고 있다. 또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미란이 같은 사람으로 기억해 준다면 좋겠다.


앞으로 내가 미란이를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그 따뜻했던 마음을 실천하면서 내 방식대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