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세상 어려운 일!
여느 해와 같이 새해가 밝고 새 날이 밝았다. 미라클 모닝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미라클과 같은 것이므로ㅋ 새해라고, 새 날이라고, 해가 뜨는 걸 지켜볼 만큼 이른 기상을 하지는 않았다. '충분한 수면으로 새해는 건강하게 시작하는 거야!'라는 나만의 합리화를 해 본다.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인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나 또한 차분히, 정말 모범적으로(자체 평가)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한 해의 마지막날에는 6시 퇴근 후 최근에 확인한 5000원에 당첨된 로또를 새 로또로 교환하고 새 신자로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에도 참석했다.
저녁 미사를 마친 뒤에는 집까지 4km 가까이를 인터벌 달리기(3분 뛰기 + 2분 걷기)로 돌아왔다. 꽤 멀게 느껴져서 절대 걸을 수 없는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런데이앱 1회 차 분량으로 집 근처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가깝잖아.
자주는 아니지만 런데이앱을 쓸 때는 보통 천변 주변을 반복해서 뛰다 보니 거리에 대한 감이 없었는데 4km가 제법 멀구나! 아니, 어쩌면 걸어 다닐 생각을 하지 않다 보니 멀게 느껴졌을지도. 올해 상반기에는 10km 마라톤을 두 번 이상은 뛸 예정이므로 연습 겸, 운동 겸
발레수업이 없는 날에는 뛰어볼 생각이다.
마지막날까지 운동미션을 완성한 스스로에게 보상으로 과자 하나를 선물했다. 원래는 요 근래 꽂혀 있는 예감 오리지널을 먹을랬는데 막상 편의점에 들어서고 나니 초코과자도 너무나 땡긴다. 그게 뭐라고 세상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나.
알게 모르게 치팅 많이 하고 있는데 과자 한 봉지 더 먹는다고 큰일나겠냐 싶지만 뭔가 모범적인 마무리에 들어가는 치팅 한 조각!이라고 생각하니 '딱! 하나만!'하며 정성껏 고민하게 된다.
간만에 먹는 초코 발린 과자는 세상 꿀맛! 집에서 먹기에는 어머니의 매서운 눈과 잔소리가 두려워 쌀쌀한 날씨에도 편의점 밖 나무테이블에 앉아 과자봉지를 뜯었다. 그만큼 간절하게 먹고 싶었던 거지. 편의점 사장님이 혼자 앉아 과자를 먹고 있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래셨다.
어린아이 마냥 엄마 몰래 과자 먹고 있는 내가 그냥 웃겼다. 한 봉지는 정말 순삭이다. 완전범죄를 위해 입까지 싹싹 털고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씻기까지! 많은 경우 운동 후 집에 들어서면 힘들다는 핑계로 소파에 앉는 걸 제일 먼저 하는데... 모범적인 날답다.
오랜만에 병샐러드 밀프랩도 했다. 들어가는 재료도 대여섯 가지가 되는 데다 마무리 초록이들을 손으로 뜯고, 뜯고, 뜯어서 채우다 보니 시간이 꽤나 걸린다. 혼자 1부터 10까지 다 하려면 생각보다 분주한데 옆에서 재료 손질해 주는 어머니가 있어서 다행! 병샐러드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거의 자정에 가까워졌다.
예년이었음 약속을 만들어 시끌벅적하게 보냈을 수도,
약속이 없었다면 쓸쓸해하며 착잡해했을 수도 있을 텐데 이번에는 딱히 약속 없는 내가 그렇게 서글프지는 않았다.
퇴근 후 이미 나 혼자 만의 스케줄로도 꽉 차 있어서 그랬을지, 그냥 무탈하게 연말을 보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평화로운 이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새해 첫날에는 집 근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사찰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멀찌감치 주차가 쉬운 곳에 차를 세워두고 운동 삼아 걸어 다녀왔는데 나중에 보니 7km 넘는 거리, 운동시간도 1시간 40분 넘게 나오네.
땀이 적당히 날 정도로 적당히 운동이 된 느낌. 저녁에 집에 와서 보니 발바닥에 불이 난다. 사찰 주변 뷰맛집 카페에서 시그니처 커피까지 한 잔 하니 이것이 소확행!
요번 새해에는 무탈한 일상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았다. 지인들과 주고받은 메시지에도 건강하게, 안전하게, 보통날처럼 새해를 보내라는 덕담이 많았다.
이럴 때야말로 일상적으로 말하는 라떼스러운 말들이 명언이자 정답이다. 예컨대 나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살고 싶은 소중한 하루라든가, 아무 일도 없어서 무료하게 느껴지는 하루가 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라든가. 오늘도 보통의 하루! '오보하'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거창한 목표, 거창한 계획, 잘 모르겠다. 올해는 보통의 하루에 감사하며 그 하루를 무탈하게 보낼 수 있도록! 그렇게 지내야겠다. 조금 더 욕심낸다면 하루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