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하나,
친구의 딸이 중학생이 된다. 학교에서 벗어난 지 꽤 된 나는 지금의 학사일정이 영 낯설다. 1월에 졸업식이라니! 딸의 졸업식을 위해 연차를 쓴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의 중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친구의 딸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 집에서 학교 운동장이 보일 정도로 코 옆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한단다. 나는? 스쿨버스를 운영하는 사립 중학교에 다녔다. 학교까지는 버스를 타도 20~30분은 걸렸으니 스쿨버스를 놓치면 시내버스를 타거나 아빠에게 데려다 달라고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잠도 많고 동작이 재빠르지 않은 나는 종종(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스쿨버스를 놓치고는 했다. 우리 집은 아파트 5층. 당시 중학생인 나에게 휴대폰 따위는 없었는데-그때만 해도 삐삐시절이었음. 것조차 소유해 본 적은 없었음-집까지 올라가지 않고서도 부엌 창문으로 엄마와 이 상황을 공유했다.
스쿨버스 놓칠 새라 후다닥 뛰어도 아니고 뛰쳐나가는 나를 보고는 엄마도 내심 불안했는지 지켜보고 있었나? 아무튼 5층까지 다시 뛰어 올라가지 않아도 드라이버인 아빠에게 상황이 전달됐다. 엄마는 아빠가 내려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고, 그렇게 아빠차를 타고 무사히 등교했던 기억이 난다.
직장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도 회사에 출근했어야 했는데 나를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면 지각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아빠도 아빠 루틴에 맞춰서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나 때문에 서둘렀다거나 해야 할 것을 패쓰해야 했다거나 그랬을지도. 그때의 나는 나밖에 생각하지 못해서 내가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다는 사실만 생각했던 듯.
회사에서 자녀의 등원 문제로 지각하는 엄빠 동료들이 있는데 백분 십분 이해가 간다. 게다가 그들의 아이들은 엄빠가 통제, 제어하기 어려운 어린 아기들이지만 그때의 나는 다 큰(중학생 정도면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는 나이이지 않나ㅋ) 청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아빠의 도움을 매번 받았었네. 이제 와 생각하니(이제서야;;;) 아빠에게 미안하다.
또 하나 생각나는 에피소드!
그날도 예외 없이 아빠 차를 타고 등교 중이었다. 차는 학교 정문 근처에 도착했고 나는 하던 대로 가방을 메고, 도시락통을 들고, 차 문을 열고, 발을 딛고... 그 시간이 꽤나 걸렸나 보다.
일단 가방을 메며 아빠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는 했으나 그 모든 동작을 완료하기까지는 시차가 좀 있었던 듯. 그것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빠도 바빴다. 얼른 나를 내려주고 출근해야 했었으니. 다시 한번 아빠 미안!
아빠는 내가 인사를 했으므로 당연히 내렸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내 발 하나는 땅을 딛고, 하나는 차 밖으로 나오려는 사이 차는 서서히 출발했고 뒷바퀴가 땅에 있던 내 발을 즈려밟고 지나갔다. 나보다 주변에 같이 등교하던 이들이 더 놀라서 쳐다본 거 같고, 아빠도 당황해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일단 너무 놀랐고, 바퀴는 크게 속도를 낸 것이 아니므로 큰 무게감 없이 쓱~ 지나간 느낌이랄까? 아픈 것도 모를 지경이었다. 사실 아픈 것보다 불 같이 화를 내는 아빠의 모습에 조금 쫄았고, 쳐다보는 시선들에 창피했고 그런 게 더 신경 쓰이는 사춘기 소녀였다. 솔직히 진짜 아픈 줄은 몰랐다.
내가 연신 괜찮다고 했고 아빠도 급했으므로 내가 걸을 수 있음을 확인한 아빠는 바쁘게 차를 돌려 일터로 향했다. 나는 제법 긴 등교의 마지막 언덕길을, 그제서야 약간의 아픔이 느껴지는지 절뚝거리며 올랐다. 그리고 학교 건물 앞에 이르러서야 아뿔싸... 실내화 주머니는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하하핫;;;
선도부 학생(선배였겠지?)이 실내화로 갈아 신지 않은 나에게 다가와서 벌칙으로 토끼뜀을 시키는데 양말을 적시는 피!가 그제야 보인다. 발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양말 앞 쪽을 서서히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는데 융통성이라고는 1도 없는 나는 여차저차 상황을 설명할 줄도, 피로 적셔지는 양말을 들이밀어 볼 생각도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토끼뜀을 다 뛰었다. 그 발로.
이후에 어떻게 피는 멎었고 그 상처는 병원에 갈 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깊어서 한동안 불편하게 다녔던, 그 에피소드가 같이 떠오른다. 불같이 화내던 아빠가 내가 잠든 줄 알고 발가락에 연고 발라주려고 내 방에 들어왔던 것도 생각나고. 선잠이 든 상태라 인기척에 깨버렸지만 모른 체 하고 있었지.
그게 중학교 몇 학년 때였나. 나에게는 아직도 생생하게 선명한 기억인데 벌써 강산이 몇 번은 변해버렸다. 시간 참 안 가는 듯하면서도 많이 흘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