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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미소라멘

식성은... 바뀔까?

by 김긍정아가씨 Feb 15. 2025

나는 어려서부터 푹 우려낸 고기국물을 무척 싫어했다. 몸에 좋다며 엄마가 끓여주는 곰탕을 먹는게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몸에 좋은 거라면 무조건, 어떻게든 먹이려 하는 엄마인데도 우려낸 고기국물 앞에서는 백기를 들었다. '얘는 정말 싫어하는구나' 인정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랬던 내가 고기국물 푹 고아낸 일본식 라멘을 최애 음식 중 하나로 꼽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니, 아주 정확하게는 회사 앞 일본식 라멘집의 '해물미소라멘'만이 내 최애다. 이 집도 프랜차이즈라 지점이 여러 군데 있는데 다른 집 해물미소는 이 맛이 안 나고 오로지! 이 집 해물미소만이 내 최애다.


분명 같은 레시피일 텐데. 아마 같은 별다방이어도 어느 지점 라떼가 맛있고, 어느 지점 라떼는 연하고 그 차이처럼 그 정도의 차이가 있나 본데 딱! 우리 회사 앞 라멘집의 해물미소가 내 입맛에 딱이다.


꽤 오래전 회사 동료분이 같이 점심을 먹자 하셨고, 나에게 물어보지는 않으신 채 일본식 라멘집을 예약하셨단다. 고기를 푹 우려낸 국물을 베이스로 사용하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앗;;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물릴 수는 없어서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얼큰해 보이는 메뉴를 골랐는데 그게 해물미소라멘이었다. 맛집이라며 사주시는 메뉴인데 고기냄새에 잘 못 먹으면 어떡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매운맛이 강해서 고기냄새는 크게 못 느꼈다.


오히려 처음 먹었을 때는 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체면 불구하고 콧물을 몇 번이나 닦으며 정신없이 먹었다. 매운 게 익숙해지지는 않았는데 ‘어어어~ 먹을수록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듯.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게 생각이 난다.


그렇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니 이렇게 새로운 맛의 세계를 경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새 메뉴에 도전해서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집 해물미소라멘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은 가서 먹는 나의 최애음식 중 하나가 됐다. 나랑 어느 정도 친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은 이 집을 들렀다. 심지어 연애시절, 여기서 라멘을 먹다가 갑자기 사랑니 통증이 온 전 남친은 그날 저녁 야간진료하는 치과를 찾아 발치까지 해버린 에피소드도 있네.


또 2023년 질병휴직을 한 시기. 치료받는 동안 땡기는 건 무조건 먹으라고 했는데 그렇게 얼큰한 게 땡겼다. 마라탕이며, 짬뽕이며, 이 집 라멘이며. 퇴원 후 기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외버스에서 내리면 열에 아홉은 얼큰한 국물이 생각났다.


우리가 라멘을 건강한 음식이라고 말하지는 않으니 보호자인 엄마 입장에서는 마뜩잖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축 처져서도 해물미소라멘을 외치는 데 안 갈 수가 있나.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힘든 치료도 잘 마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소울푸드라고 해야 할 듯.


가급적 가공식품은 멀리하는 게 좋은 나에게 끊을 수 없는 라면의 맛이 유혹할 때 ‘라면 대신이다!’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은 먹는 (이 집)라멘. 지난주 매섭게 눈보라 치는 급 한파 속에서 이런 날은 따끈한 국물이 땡기네?라는 합리화를 하며 예의 그렇듯 해물미소라멘을 먹으러 다녀왔다.


다만, 삶은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주문할 때 추가로 꼭 붙이는 한 마디! "차슈는 빼고 주세요!" 그렇다. 식성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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