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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Nov 09. 2020

미국 사커맘이 되어보니

축구 경기에 따라다니며 경험한 진짜 미국

8월 중순에 시작되었던 아들의 축구팀 가을 시즌이 이번 주말 막을 내렸다. 지난 6월 말 미국에서 코로나가 살짝 잠잠해질 무렵, 야외에서 하는 운동이긴 하지만 과연 시작해도 되는 걸까 긴가민가하며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던 팀이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 훈련을 금지할 수도 있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고 아이와 이야기했는데, 가을 시즌 내내 무탈히, 건강히 모든 훈련과 경기를 마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축구팀 훈련은 일주일에 두 번, 1시간 30분씩이었고, 축구장이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어서 편하게 다녔다. 큰아이가 축구를 하는 동안 둘째와 나는 놀이터에서 놀거나 산책을 했고, 매주 같은 놀이터에 가다 보니 둘째를 알아보고 같이 노는 친구들도 생겼다. 축구가 있는 날은 점심을 차리면서 저녁 메뉴까지 한꺼번에 만들어 놓고 나갔다가, 끝나고 오자마자 데워서 먹었다. 덕분에 일주일에 두 번씩은 우리 집 가스레인지 4구가 동시에 열일했다.


한국에서야 축구팀 선생님들이 집 앞까지 데리러 오시고 데려다주셨으니 아이가 다녀오는 동안은 엄마의 자유시간이었는데, 여기서는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리고 가는 모든 과정이 엄마, 아빠의 몫이다. 축구장이 있는 공원 주차장은 기다리는 부모들의 차로 늘 북적인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운동을 하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캠핑 의자에 앉아 끝내지 못한 업무를 마저 하거나, 다른 자녀들과 놀이터에서 놀아주기도 한다.


아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노트북으로 일하는 아빠 (Photo by dreamersonya)


토요일 경기는 한 주는 15분 거리에 있는 잔디 구장에서, 또 한 주는 메릴랜드주 내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가 그곳 팀을 상대로 했다. 덕분에 1시간쯤 운전해야 하는 바닷가 근처의 아나폴리스(Annapolis), 앤 아룬델(Anne Arundel) 같은 곳들도 가볼 수 있었다. 지역마다, 동네마다, 분위기나 인종 구성이 달랐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아이들이 대다수인 곳도 있었고, 동양인 아이들이 눈에 띄게 많은 팀도 있었다. 아이들이 유난히 거칠고 파울을 많이 하는 팀도 있었고, 패스 플레이를 기가 막히게 하는 프로 같은 팀도 있었다.


주말 경기에서는 미국 사커맘, 사커대디들의 열정과 열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운동을 공부와 동일하게 중요시한다고 들었는데, 아이들이 어릴 때는 무게 중심을 오히려 운동 쪽에 두는 것 같았다. 아이의 축구 경기에 온 가족이 깔맞춤을 하고 오는데, 축구 유니폼이 빨간색이면 아빠는 빨간 티에 빨간 신발, 엄마는 빨간 바지를 입는 식이었다. 뙤약볕 아래 1시간 이상 앉아 있어야 하는 여름에는 아예 타프를 설치하고 가족 수대로 캠핑의자를 갖다 놓고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작은 냉장고 사이즈의 아이스박스에 음료수와 물, 간식을 잔뜩 가져와 먹고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두리 같은 것을 설치하고 그 안에 어린 자녀들을 가둬놓고 온갖 장난감과 간식을 넣어 주는 가족들도 보였다. 가두리 속에서 꺼내 달라고 징징대던 아가들도 어느덧 적응을 한 건지 아니면 포기를 한 건지, 시즌 끝날 무렵엔 그 안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의젓하게 굴러다닐 정도로 자라 갔다.


경기장 필수템 - 깔맞춤과 가두리 (Photo by dreamersonya)




큰아이가 속한 U-10 팀은 총 32명인데, 작은 팀 네 개로 나누어 운영한다. 팀 별로 코치가 두 명씩 있는데, 모두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의 아빠들이다. 우리나라처럼 축구 학원 선생이 주업이 아니라, 본업은 따로 있으면서 취미나 부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코치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야 하다 보니 훈련은 늘 저녁 시간에 있다. 부모들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이메일 안내도 보내야 하고, 홈/원정경기도 어레인지 해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 훈련 시간을 총괄해야 하는 헌신을 요하는데도 재미로 하는 일이어서 그런지 모두들 즐겁고 유쾌해 보인다. ‘내가 어려서 하던 축구를 이제 내 아들이 하고, 나는 아들의 팀을 코칭하는 누구 아빠다,’ 그들에게선 이런 자부심이 물씬 느껴진다.


우리 팀 코치는 초장부터 팀워크보다는 개인기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선포하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패스 플레이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개인의 기량을 키우고 혼자서 드리블해 돌파하는 실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니 경기에서 패스 플레이를 잘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불만을 표하지 말고, 부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 축구팀에서는 아이들 성향에 따라 공격, 미드필더, 수비, 골키퍼 포지션이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여기서는 모든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시킨다. 한국에서는 공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눈을 감거나 피하는 아이들은 골키퍼를 시키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는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2년 후까지는 모든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하다가, 만 12세쯤 되고 선수들의 기량과 선호도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포지션을 정해준다고 한다.




이곳 아이들에 비해 체격이 작은 편이고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 아들은 처음에는 약간 주눅 든 모습이었다. 코치들은 훈련, 경기 시간 내내 마스크를 쓰고 말하니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들리지도 않고, 축구팀은 학교와는 또 달라서 코치가 말하는 즉시 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경기에서도 긴장을 많이 해서 그랬는지 움직임이 예전만 못했고, 덩치 큰 이곳 아이들과 부딪히면 넘어져 뒹구는 게 일상이었다. 운동 강도도 상당해서 축구 훈련이나 경기를 하고 온 날은 딴딴하게 굳은 종아리를 한참 주물러줘야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이번 주말,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아들은 골키퍼로 페널티킥을 한 골을 막아내고, 후반전에는 어시스트 한 골을 기록한 후, 프리킥으로 바로 골을 넣으며 맹활약을 했다. 아들의 왼발 감아차기 슛은 코치들도 알아주는지 코너킥이나 프리킥은 전부 아들의 몫이었다. 경기장에서는 아들 이름이 메아리치고, 애미 목에서는 돌고래 소리가 자꾸 터져 나왔다.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던지 목이 다 칼칼해질 정도였다. 주말에 경기장에서 본 아들은 벗은 양말 빨래통에 갖다 넣으라고 잔소리해야 하는 그 아들이 아니었다.


훈련에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고, 주말마다 온 가족이 경기장에 총출동하는 건 많은 시간과 수고를 요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코로나 속에서 축 늘어져 지낼 수도 있었던 시간을 빠릿빠릿하게 이곳저곳 다니며 진짜 미국을 경험할 수 있었다. 경기에 몰입하며 긴장감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모습, 자신감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모습,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팀원들과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하고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나도 그렇게 진짜 사커맘이 되어 가나보다.


첫 시즌 수고했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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