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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 Aug 27. 2022

전시를 준비하며_수리부엉이와 숲

엠마


인스타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작년과 올해 60일 동안 개인 SNS 계정에 그림을 올리는 모임에 두 차례 참여했었다. 두 번 모두 완주하지 못했지만 아이패드 드로잉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하루의 기록을 남기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모임을 이끄는 이끎이 님으로부터 연말 전시 계획 프로젝트가 있는 것을 알고 신청해두었는데 어느새 성큼 날짜가 가까워졌다. 줌으로 만나 전시 주제와 각자 작품에 대한 계획을 나누고 지정해 준 사이즈로 화방 사이트에서 캔버스를 주문했다. 원래 아이패드 드로잉을 해서 출력할 생각이었는데 이전에 배우고 사용해 봤던 재료를 쓰는 쪽으로 맘이 바뀌어 유화로 진행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꺼내는 오일 통과 물감, 유화 도구들이 만드는 냄새를 킁킁거리며 화실 다니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전시는 두 작품을 내는데 작은 사이즈의 1호 캔버스에는 각자가 그리고 싶은 멸종 위기 동물을 그리고 8호나 10호 캔버스에는 ‘내가 바라본 하루’를 주제로 그리기로 하였다. 어떤 멸종 위기 동물을 그릴지 집에 있는 동물 책들을 꺼내 고민할 즈음 꾸룩새 연구소에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어 부엉이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연구소 부소장님 말씀으로 모든 부엉이과 동물이 멸종 위기인데 나는 그중 귀가 솟아있는 수리 부엉이가 좀 더 끌렸다. 과연 수리부엉이가 어떻게 그려질지, 또 큰 캔버스엔 무엇이 그려질지 궁금하다. 막연히 숲을 그리고 싶은데 무튼, 고민하는 시간 속에서 하나하나 결정하고 작업하는 과정을 즐기고 싶다.


웬디 케셀만 글, 바바라 쿠니 그림의 “엠마” 그림책에는 일흔두 살의 할머니가 나온다. 할머니는 아들딸이 네 명, 손자가 일곱 명, 증손자가 열네 명이나 있다. 꽃과 가족사진이 가득한 집안에서 아이들을 반겨주는 할머니의 노후는 무척 다복해 보이지만 가족들이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 않다. 나무 타기를 좋아하고 주황색 고양이, 호박씨와 창밖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바라보기 좋아하는 할머니는 세상의 모든 소박함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줄 안다. 하지만 외롭지 않은 노년이 어디 있을까. 어느 날, 전혀 취향에 맞지 않는 그림 선물을 받은 할머니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직접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고향 마을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좋아하던 기억들을 만나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삶 속에서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계속 그리라고 응원해 준 가족들 또한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그림으로 만나는 뜻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엠마 할머니에게는 그림이 도구가 되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악기 연주가 될 수도 있다.



안과 밖, 생각과 말, 감성과 이성, 욕구와 표현이 잘 흐르는 삶을 살고 싶다. 기억들이 꽃처럼 되살아나고 현실의 나를 여유롭게 바라보며 언제든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삶!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으로 그리고 싶은 것, 마음 안에 담고 싶은 무언가를 만나면서 말이다.


도착한 캔버스 위에 어제 젯소를 여러 차례 바르고 사포질을 했다. 색연필로 쓱쓱 스케치를 하는 동안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채색을 하고 완성될 때까지 마음을 기울여 수리부엉이를 만나봐야지.



엠마 | 웬디 케셀만 글 | 바바라 쿠니 그림 | 느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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