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너머의 파란 모자

by 주리

어느날, 언니 비르기트는 사팔눈이 된 채 아침을 맞는다. 처음엔 재미있는 일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뇌에서 자란 종양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고 결국 길지 않은 시간에 작별 인사를 나누기까지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동생의 시선에서 쓰여졌다. 짧은 동화 속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죽음은 과장 없이 삶 너머의 세계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아이가 불안한 감정이나 알지 못하는 차가운 세계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지점들이 좋았고 어린 초등 친구들이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 자체가 무섭고 두려웠던 유년기의 나는 죽음 이후엔 아무 것도 없고 끝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게 참 오랫동안 공포스러웠다. 그에 반해 동화 속의 아이는 죽음을 지켜보며 어른들이 해주는 말을 기반삼아 스스로 단단하게 생각을 쌓아올리는 것 같았다.

언니는 없지만 언니를 위해 파란 모자를 뜨고 언니와 얘기 나눌 그 언젠가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죽음은 단절이 아니다. 삶 곁에서 손을 맞잡고 가까이 있는 삶 이후의 삶이기도 하다.


P.58

언니의 몸은 관 속에 들어 있고, 언니의 영혼은 하늘 나라에 가 있는 걸까? 언니가 둘이라는 소릴까? 한쪽은 죽어서 더 이상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도 쉬지 못하는데, 다른 한쪽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살아 있어야 날 수도 있는 건데…… 그건 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언니가 새가 된 것은 아니었다.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럼 언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아빠나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또 기다려 봐도 두 사람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랑 엄마는 지금 언니를 관 속에 눕히고 이불도 잘 펴서 덮어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니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안녕……” 하고 작별 인사도 나눌 수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목이 메어 울음을 터뜨렸다.


P.63

나는 엄마한테 언니 물건에 손을 대기가 겁이 난다고 했다. 또 언니의 영혼이 옆에서 지켜볼까 봐 좀 무섭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언니는 죽은 게 틀림없지만, 우리가 언니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언니는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계속 살아 있는 거라고 했다. 언니가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며, 우리에게 자주 하던 말, 언니가 특히 뭘 좋아했고 뭘 싫어했는지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언니는 늘 곁에 있을 거라고 했다. 언니를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느낄 수는 있을 거라고 했다.


“낱말 공장 나라”의 글작가 아네스드 레스트라드의 “종이별을 아니?” 그림책에서는 지구에서 보이지 않지만 달 뒤편에 있는 종이별이 나온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요정들이 사는 종이별에서 여자 요정의 배 속에 작은 점이 생기고 점점 커져 아기 요정이 태어난다. 아기 요정은 종이별 저편이 궁금했고 나비 날개 비행기를 타고 어른 요정들과 지구별의 어느 집 지붕에 내려 앉는다.


종이 같은 얼굴의 할머니가 요정들에게 말한다.

“이제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종이별로 나를 데려가 주겠니?”

작은 종이에 할머니 이름과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 같은 액자 속의 할아버지 이름도 적는다.

요정들은 할머니의 몸이 너무 무거워서 대신 정성스레 이름을 적은 종이를 받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요정들과 함께 종이별로 돌아갔어.

넓디넓은 우주 어딘가, 달 저 뒤쪽

지구별에서는 안 보이는 곳

지구별 사람들이 행복한 여행을 꿈꾸는 곳

이제 지구별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곳

바로 그곳, 종이별로 말이야.”


지구 저편의 종이별처럼 삶 건너편에 있는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어쩐지 조금 위로가 된다.

지금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듯이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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