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그린 Oct 06. 2023

남편의 제안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우리 이번에는 시험관 한번 해보는데 어때?”          


거듭되는 인공수정 실패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였다. 제안을 해준 남편이 참 고마웠지만 내 입에서는 다른 말이 먼저 나왔다.   

       

“시술 한 번 하는데 비싸지 않아..?”    

 

참 나 자신이 옹색했다. 지난 몇 달간 거듭된 인공수정 과정은 편할 날이 없었다.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힘들어하는 나를 배려해 무궁화호 기차 말고 ktx를 타보자고 한 건데 나는 김 빠지게 그 앞에서 돈 이야기를 꺼냈다.      

시험관은 병원과 시술 과정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내가 시술을 받았던 5년 전에는 평균 1회 400~500만 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한 번 만에 임신 성공이라는 쾌거를 이루면 얼마나 좋을까. 두세 번 만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수년에 걸쳐 여러 번 시도했어도 결국 임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시험관 하는데 전셋집 보증금 하나 들어갔다고들 말했다. 금전적인 부분을 떠나 쏟아부은 시간과 몸 컨디션을 생각하면 보증금 아니라 전셋집 하나 투자했다고 여겨진다.     


“정현이네 이번에도 실패했데. ”     

“벌써 몇 번째야?”     

“세 번째지 아마도? 전세 보증금 날린 거지 뭐~”  


생명의 존엄이 부동산 투자 실패처럼 치부돼 불편했다. 나의 실패를 돈으로 수치화해 가십거리로 삼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렇게 시험관을 하기도 전에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던 터라 남편의 제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시험관 제안을 하기 전 우리는 인공수정을 3번 시도했고 모두 실패를 했다. 첫 번째 실패 이후 상심이 컸다. 아이가 단번에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우리 둘 다 너무 건강하니까 2번째 인공수정은 성공할 거야 다시 시도해 보자~”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한두 달 휴식기를 가졌다. 몸의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우린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약을 받고 주사를 맞아가며 난포가 잘 자라 완벽한 타이밍에  터져 착상이 잘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두 번째도 임신의 기쁨을 누리진 못했다. 두 번이나 안 좋은 결과를 얻고 나니 남은 기회는 한 번 뿐이란 생각에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2번 실패를 하고 나니 의지가 의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인공 수정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3번을 시도했는데도 임신을 하지 못하면 병원을 옮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의사와 본인의 어떠한 에너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란다. 임신하고 싶은 절박함이 낳은 편협한 생각이 안타깝다. 불임을 의사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부부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당연히 될 줄 알았던 두 번째 인공수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원인을 찾으려고 난임 검사를 받았다. 나의 문제이면 어쩌나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우리 부부는 너무 건강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3번 해도 안되면 병원을 바꿔야 한다고 했구나...’   

  

내가 편협한 생각이라고 치부했던 것이 절박함에서 오는 당연한 선택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겪어보지 않은 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 인공수정기 실패를 한 사람들의 경험담에 대해 논하고 판단한 내가 건방졌다는 걸 알았다. 2번 실패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패의 원인을 “나”에게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고 생각해야겠구나.’    

    

병원에 대한 의심이 짙어질 즈음 우리는 3번째 인공수정을 시도했고 결과는 똑같았다. 

이제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병원을 바꿔야 하는구나. 의사마다 난포를 키우고 커진 난포가 터지는 시점을 예상하여 약과 주사를 처방하는데 그 판단은 의사 경험에 의한 주관적 판단이라는 사실을 인공수정 전 과정을 겪고 나서야 알았다. 의사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니 그 원인을 어떻게든 타인에게서 찾으려는 건 인간의 기본적인 자기 방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의사와 에너지가 맞지 않았다는 편협한 자기 방어를 하며 그 병원을 다시는 가지 않았다. 

고민이 길어졌다. 다른 병원에 가서 인공수정을 다시 해 볼 것인지, 남편의 말대로 시험관을 시도할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임신을 기다릴지. 선택은 늘 어렵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아기천사가 우리에게 오는 방법을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건 꽤 무거운 마음이었다. 그러고 혼자 며칠을 고민했다. 밥도 억지로 먹으면 체하듯 인생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어휴 됐어. 무슨 시험관이야. 그래 돈 쓰면서 마음 졸이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일상생활을 했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내 속마음들 때문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생기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모성애는 왜 이렇게 크고 난리야. 왜 이렇게 임신에 집착하는 거지?’     

눈을 감고 누웠는데 나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이 쏟아졌다.      


‘아이 없이 사는 삶도 신혼 같고 좋을 것 같은데 딩크족으로 살까?’           

‘지금까지 한 게 아깝지 않아? 이미 3번 했으면 몸도 인공수정의 패턴에 길들여졌겠다. 그냥 다른 병원에 가서 인공수정 한번 더 해볼까?’      

‘시험관은 주사도 더 많이 맞아야 하고 몸이 더 힘들다는데 잘할 수 있을까?’     


씨앗을 뿌린 땅에서 싹을 틔울 것인가 새로운 땅에 씨앗을 심어 볼 것인가 그것은 마치 긍정적 자기 최면을 걸며 익숙함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와 같은 거였다. 남편에게 결정장애의 모습을 오래 보이긴 싫었다. 내 마음은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뭐든 시도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안되더라도 끝까지 해보고 미련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오빠 시험관 한번 해보자... “      

”괜찮겠어? “ 

         

남편은 매주 병원을 다니며 힘들어할 나를 위해 휴직에 들어갔다. 왕복 2시간 40분 거리를 운전해 가며 병원을 왔다 갔다 한지 4개월 만에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응원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