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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Nov 03. 2023

강박 이야기

음식 Paranoia

저는 스스로 몸을 신줏단지 모시듯 아주 아끼는 편입니다. 원체 태생이 겁이 많고 생각도 많은 탓도 있으며 아버지께서도 이런 것에 관심이 많으셔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런 사소한 것들은 습관이 되다가 강박까지 발전합니다.


세끼 식사 역시 무척이나 신경 써서 싸구려 인스턴트는 피해서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 강박이있으니 여행을 가거나 급작스레 잡힌 고객 미팅 자리 등 아무거나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헬리코 균으로 오지게 고생도 상황을 더 강렬하게 몰고 갑니다. 헬리코 박테리아가 위를 파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위벽도 얄팍한 저로서는 (원인을 몰라) 5년 이상 위가 깎이는 고통에 잠도 잘 이루지 못하고 독한 약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결국 헬리코 균으로 판정받고 약을 일주일 정도 먹어 싹 나았으나, 그 후로는 누구랑 음식을 나눠 먹거나 하는 일을 극도로 꺼립니다.


더구나 한국인들은 80% 이상 헬리코를 보유하고 있다니 한인 두 명이랑만 같이 식사를 해도 그 인간들 중에 한 명이라도 감염자일 확률은 96% 이상입니다 (i.e. 1- 0.2^2). 그러니 연애를 해도 여친하고 키스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살짝 쪽! 하는 뽀뽀라면 모를까,


체액을 주고받는 깊은 키스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합니다.


또 뻥치시네~ 아닙니다. 헬리코로 고통받은 분들은 지금 이야기를 대부분 이해합니다. 5년간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던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연애를 하면 늘 불안하면서 궁금한 것이 얘가 헬리코 박테리아가 있을까 없을까하는 것이고 어떻게하면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그 약을 좀 먹여볼까 하는 궁리 뿐이니 진도가 잘 나갈리 없습니다.  


그럼 각설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건강 강박으로 인한 생활 방식 몇 가지 공유해 보겠습니다. 이 글도 반응이 좋으면 <강박 이야기> 시리즈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다. 시작합니다.



1. 우유 강박

jerseygirlorganics.co.nz

이런 강박은 대부분 어설프게 아는 정보를 통해서 시작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가히 홍수라고 말할 정도이고요.


어느 날 뉴스에서 <우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랑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프랭크 오스키> 등등을 접하게 됩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간단히 골자면 보자면:


지구상 모든 포유류는 특정 기간만 모유 수유를 한다;

인간도 어미젖을 먹는 동물이지만 특정 기간이 지나면 벗어난다;

심지어 송아지도 6개월 정도 지나면 젖을 뗀다;

그런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성인이 되어서도, 심지어 다른 동물 젖을 먹는다;

소젖은 6개월 미만 송아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안에는 인간을 위한 것은 별로 없다;

심지어 우리는 해독하지 못하는 풀독도 있다.


철분이 많다고 하지만 우유 안에는 Phosphorus성분도 있어서 어차피 철분 흡수를 방해하고 단백질이 풍부하다고 하지만 우유 단백질은 우리 머리칼이나 콩을 구성하는 단백질 하고 비슷하다고 합니다. 머리칼은 일주일 넘게 위액에 넣어도 분해되지 않고요.


우유나 콩같은 단백질을 분해하려면 (머리칼도 포함) 우리 위액으로는 불가능하고 된장이나 치즈처럼 다른 미생물 도움으로 삭혀야지만 흡수된다고 하네요.


더 큰 문제는 남자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암소 역시 포유류이기에 잉태한 상황에서만 젖이 나오는데 어린 암소 사료에 여성 홀몬이 범벅된 것을 먹이면 한 번 젖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엔 죽을 때까지 나오며 자연상태에서는 3년 이상 커야 임신 가능한 개체로 성장하지만 이것도 6개월로 단축시킬 수 있다네요. 일타쌍피입니다.


맛있는 치즈, 이번주까지만 먹고 끊으려 합니다. ㅠㅠ

그러니 우유에는 엄청난 양에 여성 홀몬이 있어서 남성이 우유를 마시면 특히 몸이 박살이 난다고 하는데 제가 실험자는 아니지만 좋을 것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뿐 아니라  공장에서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 등도 많으니 끝이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에 우유가 들어갑니다. 흔히  유제품이라고 해서 버터나 아이스크림 빵 등등에 빠지지 않고 커피나 차에도 넣으니 이걸 빼려면 주방장에게 한소리 듣겠지요. 


물론 이에 반대하는 정보도 많지만 저로서는 위에 논리에 고착되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간식으로 먹는 삭힌 치즈랑 요거트는 아직 끊지 못했네요.



이렇게 우유 욕을 하면서 정작 치즈는 즐긴다고?


이게 뭔 소리냐고 하실 수 있지만 원래 이런 강박 편집증은 논리가 아니라 심리이기 때문입니다. 실컷 그럴듯하게 설명하지만 잘 보면 모순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알지만 스스로는 고치지 못합니다.



2. 플라스틱/캔 강박

내 도시락통 뒷면 숫자

우리가 먹는 음식은 어딘가에 담겨서 Serving 됩니다. 대부분 플라스틱입니다. 이것이 좋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은 늘 있지만 어느 날 그 안에 있는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됩니다.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그릇이나 병 아래를 뒤집어 보면 재활가능 삼각형 안에 숫자가 보입니다. 이 숫자도 어떤 뜻이 있고 나름 성향이 다르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이런 플라스틱이 보이지 않게 부서져서 입자가 내용물 안에 잔뜩 들어간다고 합니다.


결국 플라스틱을 미세하게 갈아서 같이 먹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각종 음료를 담는 플라스틱 병에는 어마 어마한 양이 녹아 있다고 합니다. 사용 빈도에 따라 개인차이가 있겠으나 이런 것 신경 쓰지 않고 마구 섭취하는 일반인들 경우 매주 신용카드 한 장 정도를 갈아서 먹는 것은 흔하다고 하네요. 그런 것들이 우리 미세 혈관 따위를 막거나 오작동을 일으키겠지요? 흑흑.. 쓰면서도 손이 저려 옵니다. 벌써 막혔나...


참치 등이 담긴 캔도 문제라고 해요. 캔에서 나오는 독성에 절여진 참치 살코기는 우리 몸에 들어오면 좋은 미생물들을 죽인다고 하니 캔 음식을 자주 먹으면 금속중독에 걸릴까 봐 최대한 피하고 있습니다.


어제저녁에도 아내가 요리에 참치 캔을 넣어 주었는데, 단백질 보충하라며 웃었지만 그 사악한 미소에 오금이 쩌릿 쩌릿했습니다. 하지만 내색했다가는 더 큰 사단이 일어나니 묵묵히 섭취하는 수밖에요. 그래서 간장이나 식초 등 식재료도 병에 든 것을 소비하려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자주 가던 식당.. 이젠 안녕 ㅠ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감자칩을 시원한 케찹에 푹 찍어 먹는 것을 세상 즐기는데요. 근처에 자주 가는 스테이크 집이 있습니다. 칩스가 아주 일품이지요. 문제는 함께 나오는 케찹, 토마토소스가 플라스틱 병에 담긴 것입니다. 안 넘어갑니다. 결국 이곳을 갈 때는 몰래 케찹 병 작은 것을 챙겨 갑니다. 아내는 창피해 죽겠다고는 하지만 창피한 감정보다 이게 낫습니다. 문제는 이 식당 내부 규정입니다.


"No outside food allowed"

외부 음식 반입 금지


케찹을 가방에서 꺼내어 뿌려먹자 지나가던 직원이 뭐라고 한소리 합니다.


"Sir, you are not allowed to have any outside food in this restaurant. Sorry."

선생님, 죄송하지만 이 식당에서 외부 음식은 반입 금지입니다.

"I know, but this is not a food. This is a tomato sauce."

알아요. 하지만 이건 음식이 아니고 케찹이에요.

"That's sorta food."

그것도 일종에 음식입니다.

"I don't think the definition of food includes this."

글쎄요. 음식이 규정하는 범위에 이건 안 들어갈 거예요 (ㅅㅂ).


이러고 식당 직원이랑 싸우자 매니저가 와서 인상 쓰고는 대충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내는 쪽팔려 죽겠다고 다시는 여기 오지 말자고 해서 최애 식당을 잃었네요. 흑흑..



3. 비타민C 강박


박스로 사서 먹던 비타민C, 이젠 줄이자.

코비드를 지나며 특별히 생긴 강박입니다. 시드니 역시 이 시절에 거리 제한으로 집에만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코비드를 경험한 사람들이 높은 사망률에 그 후유증으로 미각이나 후각을 잃었다는 수기는 흔히 접합니다.


그러다 알게 된 <비타민C 과복용>입니다. 어차피 천 mg이상은 흡수가 안 되어 소변으로 다 배출된다고 하지만 과복용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완전히 다른 주장을 펼치는데요. 그에 관련된 것은 어렵지는 않지만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쉽게 영상을 찾아보실 수 있기에 저는 생략하겠습니다.


효과만 놓고 보면 1> 피곤하면 입안에 생기던 물집이 안 생기고 생겨도 바로 사라집니다. 자면서 이를 가는 습관이 있는데 피곤하면 심해지고 그러면 이를 갈다가 혀를 씹기도 하여 늘 피곤 + 입안 상처 = 물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습니다. 한데 과복용 후에는 피곤함도 덜한 것인지 이런 물집 발생 빈도가 줄었고 발생해도 금방 사라집니다.


2> 달고 살던 감기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습니다. 그에 더해서 주변 사람들 가족들이 한두 번씩 코비드에 걸리는 과정에서도 저는 여태 증상 없지 지내고 있습니다. 이 덕인가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비타민C 전도사가 되어서 설파를 하고 다니나 다들 반응이 뜨뜨 미지근하다 못해 일부는 그거 과복용하면 신장에 무리 간다, 조심해라 합니다. 진짜인가 찾아보니 비타민C가 염분하고 만나면 결석을 유발한다는 이야기가 정말 있습니다.


아, 이를 어쩌나! 주로 점심은 회사에서 맵고 짠 한식을 먹는데 식사 후에 열 개씩 빨아먹는 비타민C 먹는 행복감을 이제 포기해야 하는가? 결국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아침은 간이 되어있지 않은 삶은 달걀이랑 고구마 바나나 등을 먹으니 아침 먹은 후에만 실컷 먹고 낮에는 먹지 않기로 말이죠.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알면 알 수록하지 말아야 할 강박이 많아지면서 또 반대로 꼭 수행해야 하는 내가 만든 의례가 생겨납니다. 강박은 피해야만 하며 의례는 꼭 지켜야만 밤에 편히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래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으면 정신분석 책을 보면서 삭힙니다. 결국 정신분석 책을 보는 의례, 강박도 생겨납니다. 이 공부를 통해 증상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어난 꼴입니다.


책을 읽는 강박이라니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이런저런 일로 책을 열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는 날에는 또 불안해집니다. 이런 모든 불안이나 강박이 없을 수 있을까요? 정신분석을 받으면 조금 나아진다고는 하는데 과연 그 끝이 있을까 싶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이만 총총




2023, 내 작은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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