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호주 유도 생활
지난 시간 외국에서 한인 유도장을 운영했던 시간이 문득 스쳐가 짧게 소감 나눕니다. 이 글로 인해 역시나 힘들게 고국에서 도장 운영하시는 선배님들께 작은 참고가 되길 바라며, 동지분들께는 외국에서 유도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재미로 보아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2015년까지는 한인들이 하는 유도장이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여 제가 유도를 처음 접한 것은 일본 유도 franchise라고 하는 초대형 도장에서였습니다. 유도를 종교로 대하는 일본 사람들이 이런 것 마저 상품으로 판다는 것에 놀라웠어요. 지금은 유사사, 미 앤 마이노 등 한국에도 체인형태가 흔하지요?
여담으로 호주는 시드니 지역을 뺀 나머지에선 모든 유도장이 국영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구청이나 공립학교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매트는 호주 유도 협회가 지원해 주며 회원들 도복 역시 대관을 받아서 할 수 있으니 유도를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공짜로 유도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도자 선생님들은 대부분 저 같은 생체인으로 자원봉사자들이고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일본이 영어권 백인들에게 유도를 전파하는 것이 지상 목표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동남아 지역 등에서 일본이 유도를 전파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한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한다고 들었는데 형평성 때문에 생색내는 정도 같고요).
각설-
2015년 일본 도장에 가보니 한인들이 거기 다 모여 있더군요. 선출들은 보조 코치로 지도하고 있고 생체인들은 회비 내면서 배우고. 그러다 친해진 코치들이랑 하루는 의기 투합해서, 실력도 있고 행정 능력도 있는 우리가 왜 조조 아래 유비처럼 이러고 있느냐, 독립해 나가자!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지금 한인 유도부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공장도 없는 상태에서 배 수주를 땄다는 카더라처럼, 우리는 도장 자리도 없는 상황에서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잘 아는 태권도 관장님이랑 협의 중이었지만 건조하게 보자면 <반사기> 비슷한 시작이었죠.
도장 임대 계약도 하기 전에 회원 모집 광고를 올렸 보았는데 세 통 정도 전화가 왔고 너무 반가웠으나 도장 주소를 묻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코미디를 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준 세명 중에 한 명은 아직도 이곳에서 연락하는 후배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우리 클럽 초대 주장을 맡은,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우리 후배님 <황주장>이 되었고요.
자금이 없어서 여러 차례 보따리 장사로 도장을 옮기고 비싼 유도 매트는 꿈도 못 꾸어서 얄팍한 유치원 바닥용 고무 매트에서 운동을 해도, 우리 도장에서 운동한다는 것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들.
그 당시는 한인 주짓수 도장도 없을 때라서 다 함께 모여서 운동을 했고, 우리 친정이던 일본 도장에 매주 가서 함께 운동하고, 지역 사회 다른 유도/주짓수 도장이랑 협업해서 자체 시합도 열고, 바닷가에 전지훈련도 가고 BBQ 하고, 그때만 해도 제가 젊어서 그런지 힘든 걸 모르고 뛰어다녔습니다.
그런 열심은 돈을 벌거나 사업을 확장할 목적 따위는 아닌 그저 유도에 미쳐서 했던 것인데, 입소문이 나고, 저 형 유도에 미쳤나 보다 좀 불쌍하니 돕자는 식으로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능력 있는 후배님들도 많이 오셔서 어느 순간 도장이 급격하게 자리기 시작했습니다.
썬, 라대표, 진진, 이피디뿐 아니라 지금은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후배님들이 진심으로 날 도와서 이 척박한 사막에 50명을 넘어가는 클럽으로 커갔습니다. 그때를 맞추어 거폭 선수도 초청하여 영상도 제작하여 우리 클럽 역사뿐 아니라 제 인생에서도 황금기였습니다.
그리고 코비드가 터졌습니다.
한인 유학생들이 주 고객이던 우리 클럽은 여행/입국 금지로 박살이 나면서 강제 shut down.
어떻게 보냈는지, 무슨 힘으로 이겨냈는지 모를 시간을 몇 년 지내고 다시 문을 연 도장은 한 달에 네댓 명 회원으로 줄었고 당최 회복을 하지 못하다, 기어이 올 초에 김관장님이랑 진지하게 완전 폐업을 고민했습니다.
사비를 넣어서 클럽을 유지한다는 속 쓰림 보다는 이제는 많이 변한 시장 상황에 우리가 맞추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했습니다. 클럽에서 홍보나 운영을 담당하는 것도 저여서, 이제 너무 나이가 많은 내가 젊은 회원들 needs를 분석하지 못하고 SNS에 홍보하는 실력도 부족한 것이어서 슬펐습니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이청준 선생님 ‘매잡이’가 생각났습니다. 더 이상 매로 사냥하는 세상은 없어 진지도 모르는 곽서방이랑 그가 사랑한 매 “번개”이야기.
코비드 직전에 영광만 기억하는 나는 곽서방이고, 멸종한 사냥매는 ‘유도’입니다.
사냥매 번개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듯, 유도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시류에 뒤떨어진 매잡이 잘못이죠.
3월부터 조금씩 회원들이 돌아와 손실은 막게 되었고 크리스라는 필리핀계 호주인이 들어와 예전에 내가 유도에 미친 것처럼 하루 종일 유도에 빠져 사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2015년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가끔 이야기한 것처럼 저에게도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시간이 온 것 아닌가 하고, 우리가 한인 클럽이라지만 다음에 우리 클럽을 이끌어야 할 사람 조건에 한인 피가 흘러야 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나만큼 미쳐서 유도를 좋아하고 그 연장선 상에서 클럽 운영을 좋아라 하는 이를 찾고 있죠. 필리핀 혈통이라지만 호주에서 자란 크리스가 저를 대신해서 우리 클럽 행정을 맡는다는 것은 저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혹자는 힘들게 만들고 지킨 우리 한민족 클럽을 왜 외국인에게 넘겨주느냐라고 한탄하시지만 제 판단에는 변함이 없고요. 유도에 뜨뜨 미지근한 한인 혈통이란 우리 클럽을 유지하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 뼈저리게 알고 있습니다.
크리스뿐 아니라 지금 날 돕는 우리 호주 회원들/코치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정말로 운동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기거나 이곳을 떠나야 한다면 우리 클럽은 그들에게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내 맘대로 닫겠다는 짜증도 어느 정도 누그러듭니다.
지금까지 힘들게 이어온 한인 도장이 호주 사람 손에 들어가 더 근사하게 full time 도장으로 성공할 날을 마지막으로 상상해 보고; 그들이 지금 크리스나 다른 호주인들처럼 ‘우리 클럽 시작은 이 지역 한인들이다’라고만 기억해 주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