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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Mar 29. 2024

노인을 위한 나라도 있다

30년 후에 나를 상상하며

2015, 실버워터

2015년에 우연히 호주에서 늦은 나이에 유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는 시드니에 한인들이 만든 유도장이 없기에 유도 선수나 훌륭한 회원을 많이 보유한 우리 교민 사회였지만 일본식 호주 도장에 흩어져 운동하고 있더랬죠.


젠부라는 호주 유도장이 크다 보니 주로 그곳에 한인들이 많이 모였고 몇몇 국가대표 출신들은 코치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한국 유도를 호주에서도 인정은 했지만 우리 공간은 아니니 늘 남에 집에서하는 잔치에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 김한미 관장을 만나서 내가 가진 행정능력을 줄 테니 당신이 가진 유도 실력을 더해 우리가 한국 유도장을 시드니에 만들어보자 의기투합했습니다. 지금이라면 못하지만 그때만해도 젊었기에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운동할 장소도 구하지 못했지만 우리 힘으로 만든 유도장을 시작한다는 기쁨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요. 아직 운동할 장소도 구하지 못했는데 급한 마음에 올린 광고를 보고 유도를 하겠다며 연락 온 황병조 주장을 초대로 2대 김남주 주장을 지나, 고맙게도 한인 유도장은 시드니에서 번성을 했습니다.


그러다 코비드 사태로 1년 가까이 강제로 닫아야 했고 그 많던 회원들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뿔뿔이 흩어지면서 우리도 나락으로 가게 됩니다. 백신을 맞고 다시 도장을 열게 되었지만 한 번 무너진 사업장은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못해 김한미 관장이랑 저는 일상에서 버는 돈으로 유도장 손실을 막으면서 회원 한 명을 놓고 수업하는 날도 많이 보냈습니다.


그 당시 고통은 말해 무엇하며, 어디 우리만 그랬겠습니까? 그러다 귀인을 만나 2024년 새로운 곳에서 두 번째 유도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김한미 관장은 19대 재 호주 유도협회장이 되었으며 저는 사무총장이 되었고 오늘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시드니에 사는 모든 유도 선수들 선생님들 심판위원들 어린이들 학부모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난 시간을 기억하시는지 서로를 축하하고 유도를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볼거리 놀거리가 많지 않은 시드니 교민사회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은 누구나 유도에 관심 있는 분들이면 함께 와서 즐거운 시간 가지고 소박하지만 정성껏 준비한 점심 식사대접도 하며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를 준비했습니다.


9년 제 유도 생활동안 행복했던 기억만 뽑아 하루에 녺여 본 것이지요.


나이도, 관심사도, 성격도 무의식도 모두 다르고 뚜렷한 사람들을 모아서 만들어야 하는 행사인 만큼 과연 내 기대처럼 이루어질까 기대반 걱정반으로 잠을 설치고 오늘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오늘 하루가 저절로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다른 편으론 내가 가서 반드시 어려움을 해결하고 갈등을 해소시켜서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 전의도 불탔습니다.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내가 꼭 이루리라는 양가감정입니다.



한 시간이 넘는 유도 세미나였기에 혹시 지루해하는 분들이 계시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많은 자료를 준비해서 관객들 호응을 이끌어주신 호주 유도 협회 소속 선생님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익한 정보를 얻었고 모두가 큰 박수를 주었습니다. 세미나 후에는 70대 선배님들부터 10대 아이들까지 모두 매트 위에 올라와 웃고 즐기며 함께 운동하고 가르침도 나누는,


제가 꿈꾸던 나라를 보았습니다.



대학이 운영하거나 큰 사설 유도장에 가면 저는 가장 부러운 것이 시설도 아니요. 국가대표급 회원들도 아닙니다. 흰머리에 검은띠를 두르신 선생님들, 선배님들이 그곳에는 계신다는 사실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모든 격렬한 운동 더욱이 격투기 종목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참여할 공간이 없는데요. 유도는 다릅니다.  


70대부터 10대까지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유도는 흰머리 선생님들께 배워야 하는 지혜가 있기에 특별합니다. 이분들이 계시기에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는 유도 정신을 실제 두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제가 느낀 감동을 잘 지키고 살려서 후배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습니다. 더 욕심을 내자면 이 행사가 교민 사회에 오래가는 역사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바쁜 이민자 삶에 귀한 시간 내주시고 와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 스스로에게는 오늘이 너무도 행복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다음 세미나는 고국에서 조준현 조준호 선생님을 초청하여 새로 이사 갈 도장에서 준비하려 합니다.




김쎔,

30년 후에도 우리는 어디선가 유도하고 있겠죠?

그때도 우리 같이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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