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즈음 취미로 시작한 유도는 이제 생활이 되어 퇴근 후 사업으로까지 번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최대한 돈을 손해보지 않는 범위에서 해왔으나 이것도 점점 규모가 커지고 상황이 날 자극하자 결국 독립된 공간에서 더욱 전문성을 갖춘 단계로 진화한 것이지요.
이제 보따리 장사 그만할까 싶어 맘에 맞는 코치들이랑 힘을 모아 6억 정도 되는 규모에서 반은 투자금으로 나머지 반은 융자를 받아 작은 창고를 매입한 후에 스포츠 센터로 개조할까 알아보았지만 지금까지 취미 식으로 해온 사이즈라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없다고진단받습니다.
그전에 사업 규모를 조금 키워서 몇 년간 손실 없이 잘 운영을 한 재무제표 실적을 먼저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임대 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먼 곳은 싸고 역세권은 비싸더군요. 싼 곳은 결국 망하는 길이니 비싸더라도 최대한 가격이 저렴한 역세권을 타켓 했습니다. 말이 쉽지 뜨거운 아아를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좋은데 싼 물건이 없듯이 요충지에 싼 임대료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세상사 말도 통하지 않고 고급 정보란 있을 수 없는 이민자에게도 기회는 왔습니다. 제가 생각한 조건을 얼추 맞춰주겠다는 백화점 담당자를 만났지요. 그가 하는 말은 캔디처럼 달콤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해서 얘들은 뭐가 남으려나 건물주를 슬며시 걱정하기도 했고요.
계약을 주저하자 그 달콤한 말은 농도가 진해져 갔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면 모든 절차를 생략하며 장점은 극대로 하고 단점은 모두 삭제한다 하였습니다. 물론 구두로 했지요. 결국 2주 정도를 내 귀에 꿀을 처바른 담당자에게 계약금을 입금하며 가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담당자는 다른 회사로 취직했다며 문자 하나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Good luck! All the best!
그리고 그 업무를 임시로 보겠다며 부임한 총괄 매니저는 모든 계약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면제받았던 서류들은 모두 무덤에서 부활하였고 그 서류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면 설계사, 변호사, 건축 설계사, 시공사 등등 전문가 조언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회계사 수임료가 세상에서 제일 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요.
그토록 힘들게 비싼 서류를 만들어 넣으면 빨간펜 선생님처럼 부족한 부분,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까이면서 다시 작성하고 올리기를 반복하며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여기까지 오면서 들어간 비용이 눈 덩이처럼 불어난 데다가 가계약 상황에서는 계약을 포기하는 쪽이 계약금을 모두 날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클이 너무 지나친 날에는 결국 동업자랑도 사이가 나빠져서 지금까지 넣은 돈을 다 포기하고 빠져나오기로 했습니다. 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세보다 싼 것이지 봉급쟁이인 나를 파산시키기에는 충분한임대료입니다. 더구나 유도라는 사업이 무슨 식당처럼 입소문 난다고 줄 서서 오는 것도 아니라 이것은 그저 잘해야 임대료랑 코치들 사례비 정도 충당하면 성공하는 일이니, 내가 지금 무슨 미친 짓을 하는가 하루에도 멀쩡히 있다가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렀습니다.
이제 막 태어나 한창 귀여울 때라는 아이를 보아도 마음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까다로운 계약서를 이해하고 만족시켜야 한다는 스트레스에다가 우리 집을 담보로 들어간다는 사실로 인해 아이 얼굴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평생에 한 번뿐이라는 이 소중한 시간을 다 태워버렸지요. 10년간 사이가 좋았던 동업자랑도 많이 틀어지고 자세한 내역을 모르는 가족, 아내에게는 길게 설명을 하지 못하니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속에서 계약서를 찢었다 붙였다를 반복하고 실제로 변호사랑 작성한 최종 계약 서류도 우체통까지 가져갔다 그냥 들고 오기를 수 차례 반복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하고 무식하고 실수가 많고 쓸데없는 정에 휘둘려 큰일을 그르치는 인간이라는 것을 거대한 건물주 앞에서 드러내는 나날이었습니다.
결국 백화점 행정실에서 마지막 서명을 하고 가게 열쇠를 받아서 나오는 발걸음은 죽을 줄 알면서 다시 게임판에 들어가는 <오징어 게임 2> 성기훈이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기훈은 전략이라도 짜서 들어가는 것 같던데 나는 무슨 깡으로 지금까지 취미로 하던 유도를 백화점에 입점한 것인지 지난 3개월 무엇에 홀린 듯 정신이 혼미합니다.
시드니 역시 26일을 기대하며 카운트 다운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이러하니 글이 써질 리가 없습니다. 건물주에게 시달림이 극으로 치닫던 순간 아무도 오지 않기에 아무런 반응도 없는 내 브런치에 파랑벨이 울렸습니다. 뭔가 보니 제12회 브런치북 출간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작년에도 그러더니 얘들은 어떻게 수상 발표를 계획보다 먼저 하는지 짜증이 났습니다. 각 출판사는 직원이 얼마나 많기에 몇 만 권이나 될 브런치 응모작을 과연 두 달 만에 다 읽었을까요?
음모론을 펼치자는 것은 아닌데, 몇 만권을 훌쩍 넘는 응모작 중에 샘플로 몇 천 개만 보았다는 실토로 들립니다.
이번 공모전 역시 낙방했습니다. 당선된 작품을 보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 일부러 피하는 중인데 내 글은 어찌 이리도 대중에겐 사랑받지 못하고, 공모전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가 화가 나서 AI에 관련된 작품 하나를 억지로 열어 보았습니다.
지금 기분이 이러니 글이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같은 공모전에 참가했으나 떨어진 놈이 대상 받은 작가 글을 읽는 심경이 어떨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대상 작품 스크롤을 내리면서 도대체 뭐가 이 글을 대상으로 올리고 내 글은 폐기해야 했는지, 내 글을 읽기는 했는지 또 끝없는 비교를 합니다. '놀라운 작품들로 인해 행복한 작업이었다'는 뻔한 출판사 평가 소감은 약을 올리는 듯했고요.
그만하자.
브런치를 통해서 감사한 일도 많았고 좋은 분들도 알게 되었지만 이제 여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위함은 아니다는 결론을 지었습니다. 어차피 나는 작가도 아니요. 이 정도 했으면 브런치에게 나도 받은 것 이상은 했다 싶었습니다. 이미 9월부터 줄줄이 떨어지던 다른 응모전 결과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차에 브런치가 마지막으로 뺨을 쎄게 올리는구나. 고맙네.
주변에서 이런 나를 보고 좀 더 노력해 보라는 분들도 있지만 내 글은 [이상 문학상] 같은 주류 문학으로 가기엔 너무 싸구려이며, [좋은 생각]으로 보내기에는 너무 야하고, [샘터]에 보내기에는 기독교 색채가 너무 짙고, 신문사에 넣기에는 한물간 정신분석 따위 소재이며 그렇다고 저널에 올리기에 전문성은 없으니 세상 그 어디에도 제 글이 어울릴만한 곳이 없습니다.
제발 정신 차리고 이제 임대료 갚을 일만 고민하자.
내 목숨을 담보로 한 묵직한 가게 열쇠를 들고 집으로 와서 썩은 미소를 지으며 '계약 잘 마무리했어'라고 아내에게 한 마디 하고는 '수고했어'라는 말을 등 뒤로 씻고 저녁을 먹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혹시 무슨 개소리 섞인 태클이 또 왔을까 싶어 인상 쓰며 메일함을 여는데 원고 청탁이라는 편지를 봅니다.
처음에는 광고인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진짜 같습니다. 다른 작가님에게 여쭤보니 [월간에세이]에서 브런치 작가들에게 간혹 이런 청탁을 한다고 하니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원고료나 다른 조건 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진지하게 내 글을 정말로 읽고 그것을 종이로 출간하고 싶다고 먼저 말해주는 이 감동은 브런치북 대상을 받은 것이랑 진배없는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한 번 쓰고 끝날 인연이겠지만 [월간에세이] 편집부에 잘 말씀드려서 몇 번 더 쓸 수 있을지 부탁해보려 합니다. 어떻게 편집 부장님 기분을 좋게 하면서 내 의도를 전할지는 지금까지 백화점 담당자에게 당한 수법을 떠올려 달콤한 말을 더해 살살 설득해 보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 내 글을 응시해 주는 그 눈길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눈길은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고 그냥 제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형체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눈길이 내 글을 본다는 상상은 날 흥분시키고 글을 쓰는 쾌감을 극한으로 치닫게 합니다.
그리고 내 글에 라이킷을 눌러 주는 작가님들을 보면 그 응시는 다시 강렬해지고, 제 글에 댓글을 주시는 분들 문장에서는 짜릿한 오르가즘이 올라옵니다. 이런 상상은 막연했던 스케치 같던 응시에 풍부한 색을 넣어주고 흐릿했던 경계를 진하게 구분해 줍니다.
그 시선을 느끼기 위해 저는 글을 씁니다. 제 글에는 새로운 기표를 탄생시키거나 어디서도 듣지 못한 기발함 따위는 있지 못해, 예술 작품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저라는 한 개인이 겪는 불안이랑 증상 따위를 기록하는 작업으로서 가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제 글을 인정해 주시는 모든 분들은, 출판사 편집부장님들을 포함해서, 마치 나를 분석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고 곁에 있는 성실한 정신분석가 혹은 책으로만 뵈옵는 프로이트 선생님처럼 든든하지만 엄하지 않은 초자아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