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작가를 위하여!
사업을 키우면서 동업자랑 관계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생각했던 것이랑 서로 다른 일들이 벌어지니 각자 다른 무의식을 가진 우리는 각자 다른 해법을 제시합니다.
사업가 기질인 동업자는 이럴 때일수록 사업을 키우자는 입장이고 쫌생이 회계사인 저로서는 난관이 오자 자산을 매각하여 현금을 만들고 한곳에 집중하자는 의견입니다.
이차이는 좋고 나쁜 것도 아니며 결과 역시 당장 알 수도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맘으론 스며들지 못하니 기울기가 다른 함수처럼 점점 멀어져가는 직선을 그려갑니다.
재미없는 이딴 아저씨 이야기나 쓴다면 이 공간이 아깝습니다.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야 기다리시는 분들께 의미가 있겠습니다.
자, 그럼 어떤 글을 써야 절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행복을 드릴까요? <날 사랑한> 시리즈를 진기한 소재로 다시 시작해 볼까요? 크리스마스 섬에서 방출된 드림 교수가 시드니로 돌아와 우울증을 앓는 재벌 4세 여성을 만나는 설정으로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우울증 개념을 풀어 볼까요?
정신분석에서 우울증은 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로 봅니다. 지금 우리는 알록달록한 종이에 숫자를 써서 돈이라고 칭하고는 그것을 얻기 위해 죽고 사는 게임을 하고 있지요. 문명 밖에 사는 종족이나 아주 어린 아이들은 이게 무슨 놀이인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반짝이는 종이보다는 당장 눈앞에 빵을 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돈에 중독되고 이 실사판 브루마블 게임에 진임인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우울증자들은 이런 게임을 초월한 분들입니다. 이런 게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실재를 마주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시시하기만합니다. 잔고에 얼마가 찍힌들 무슨 기쁨이며 부동산이 얼마가 있던지,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고 헤메는 자들에게 이런 것들은 종이 조각이며 큰 벽돌일 뿐입니다. 우울 증상을 가진 분들은 그 증상을 가지지 못한 우리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초월자들이니 아무리 강력한 의사가 나타나 진료하려해도 그들 눈에 우리 모두는 시시한 레고 장난감 인간들입니다.
글을 쓰다 알게 된 형님이 계십니다. 제 글을 좋아해 주시고 지금도 건강을 담보로 습작을 하고 계십니다. 안쓰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에 작은 도움을 드렸는데 아이처럼 좋아하십니다.
제가 형님 글 쓰는 것을 도와드린다고 하자 소풍을 준비하는 아이같은 모습을 보이시는데 막상 저는 씁쓸합니다. 성공한 인생 말년에 글 쓰는 소일거리로 이리도 행복하시다니, 돈에 치이는 저로서는 이제 이런 지겨운 돈놀이에서 벗어나 편안한 은퇴자로서 지난 시간을 글로 남기시려는 형님 시간이 부럽습니다.
이미 게임을 끝내고 경기장 밖에서 나를 보시는 형님 눈동자를 통해서 내 모습을 봅니다. 피 칠갑을 하고 사방에서 달려오는 거대한 적들을 마주한 초라한 참가자로서 남자 한 명이 서있습니다.
지금 이 오징어 게임에서 나는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다시 글이 돈 이야기로 갑니다. 아무래도 제 무의식에 가득한 것이 돈이기 때문에 무슨 글로 시작해도 그 끝은 돈 이야기이네요.
호주 사람들은 어떤 무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쓰는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어를 공부한다는 뜻이 아니고 언어 구조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 구조를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단어를 교체하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영어 공부 목적에도 맞지 않습니다. 나아가 언어가 다르다면 분석가랑 내담자 역할도 원활하지 못하다는 결론입니다.
분석가는 제2 외국어로 말하는 내담자 언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가 자유연상에서 말하는 것들 그 안에 이미지나 오류가 무의식에 연결되는 지점을 찾지 못합니다.
초창기 우리 분석가들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외국인 교수 분석가에게 교육 분석을 받았으니 제대로 된 분석이 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1세대 분석가들 역시 정확한 분석을 받았을까에 대한 의문 내지 원죄가 있습니다.
한국에 절 아끼시는 목사님에게 제 책을 보내드렸습니다. 읽어 보시고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아드님에게 전달을 부탁하려고요. 제 책을 받아보신 목사님은 끝내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다. 목사님께 책을 보내드리고 며칠 즐거운 상상을 했습니다.
제 책을 재밌게 보신 목사님이 감독에게 전달하여 제 글이 시나리오로 바뀌고 제작사가 붙어서 투자를 시작하고 영화배우들이 그 책을 다시 검토하는 환상까지 만들자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내가 만든 뻔하고 진부한 기표임에도 도파민이 마구 분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그런 즐거운 홀몬이 마르고 있지요.
우리 같은 무명작가들은 언젠가 세상에서 내 기특한 무의식, 특수한 자아를 인정받아 내 이름 기표를 떨치고 부랑 명예를 누릴 기대를 하지만 99.99%는 그 꿈을 그대로 가슴속에만 간직한 채로 관으로 들어갈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젠가 나는 사라지고 이 글만 아련하게 남아,
누군가 가슴에는 작가 미상으로 기억되며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아름다운 궁금증 하나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마칩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