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前兆
김양순 선생님 번역본은 프로이트 박사님 텍스트를 최대한 정교하게 옮기는 것이 목표였다면 저는 이번 요약 작업을 통해서 원작이 일정 부분 훼손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많은 분들에게 더 쉽고 재미있게 [정신분석 입문]을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 세 번째 강의는 바로 이해가 되는 사례가 많아서 대부분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결론 부분은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꼭지를 중심으로 다시 구성하니 그 점은 양해 구하며 바로 시작합니다.
착오 II
지난 강의에서 우리는 착오라는 심리현상을 일으키는 의도를 관찰했다. 만일 착오가 가진 독립된 의미에서 의도를 찾아낸다면 착오현상이 쓴 가면 뒤에 있는 *실재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말을 통해서 일어나는 착오만 살펴보자. 즉 말실수가 가지는 의미, 즉 의도가 분명한 사례를 분류해 보겠다.
(*실재: 원글에는 없지만 무의식을 마주하게된다는 의미로 제가 추가했습니다. 라캉쌤이 이야기하는 그 실재를 감히 가져다 썼습니다.)
자기가 말하고자 했던 것과 정반대 단어가 입 밖에 나올 경우 의미는 뚜렷하다. 국회 의장이 자기 당에 불리한 국정감사 개회식에서 "즉각 폐회를 선언합니다"라고 말하는 경우 의장은 폐회를 바라고 있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런 명확한 것들 말고 착오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다. 즉 모든 착오에 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비슷한 경우를 보자. 겉으로는 은사님을 존경하는 대학원생이 사은회 행사에서 사회를 보면서 "우리 은사님 건강을 축원하며 구토합시다"라고 말하는 경우 축배를 들다 (독어 anstossen) 대신 aufstossen(구토하다)로 실수한 사례를 통해서 사회자는 속으로 이 사은회가 같잖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나아가 재미를 위해서 일부러 외설스럽거나 천하게 들리는 욕을 교묘하게 변형시켜서 쓰는 위트는 이런 착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중간 결론을 내리자면 착오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진지한 정신 행위이며 거기에는 고유한 의미가 있고 두 가지 다른 의도가 상호작용하여, 더 적절히 말하면 상호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여러분이 할법한 질문을 답해보기로 하자. 추가로 염두할 것은 우리는 착오현상 그 자체를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정신분석을 하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방해하는 의향이랑 방해받는 의향을 나누고 그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도 후에 살펴보겠다.
1. 말실수는 모든 경우에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식으로 의미를 가집니까? 아니면 특별한 경우에만 이론이 적용됩니까?
나는 모든 경우라고 믿고 싶다. 왜냐면 관찰한 말실수 어떤 경우를 검토하더라도 내 해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반드시 내가 설명한 메커니즘만으로 작용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수집한 많은 경우에 그렇게 작동하며 나는 그것을 정신분석학 입문자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2. 다른 착오 이를테면 망각, 잘못 듣기, 잘못 읽기 따위도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까? 또한 피로, 흥분, 방심, 주의력 장애 같은 요소도 착오를 일으키는 요인인데 여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착오 행위에도 내 이론은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본다. 우선은 말실수만 계속 보자. 불쾌감 순환장애 피로 등으로 착오가 생긴다는 것은 정신분석에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필수 조건이 아닌 보조 조건이다. 말실수는 완전히 건강하고 정상 상태에서도 나타나지 않던가? 흥분하거나 방심만으로 착오를 설명하는 것은 겉할기이고 그 안쪽을 우리는 뒤져 보아야 한다. 대체 무엇이 흥분이랑 주의력을 흩뜨려 놓았는가를 살피는 것이 여기서도 핵심이다.
비슷한 발음 영향이나 언어가 가지는 유사성 혹은 관습이랑 관련된 연상이 여기서 중요한데 문제는 왜 굳이 그 길을 택하느냐이다. 우리 눈앞에 길이 있다고 무작정 가는가? 그 길을 선택하는 데는 동기가 필요하고 몸을 전진시키는 힘도 필요하다. 즉 방심이나 연상 모두 착오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아니다.
실험 심리학자 분트는 피로한 상태에서 내가 가진 연상경향이 원래 의도를 압도하면 실수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아직도 이따위 이론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경험을 돌이켜보자. 말실수는 피곤하지 않아도, 연상 메커니즘이 없는 단어에도 발생한다.
3.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경향 가운데 하나가 항상 착오행위 표면에 나타나고 다른 것은 숨는다면 그 숨겨진 의향은 어떻게 끌어내야 할까요? 설사 끌어냈다 해도 그것이 과연 정확한 의향인지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방해받는 의도랑 방해하는 의도를 나누어 볼 때 착오는 방해하는 쪽 의도로 일어난다. 지금까지 방해하는 의도를 설명해 왔다. 문제는 방해하는 의도가 잘 파악이 안 되는 경우인데 우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그에게 의도를 묻는 것이다.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설명할 것이다. 이 순간이 바로 여러분이 정신분석이라는 메스를 사용하는 때이며 이것은 정신분석 연구에서 아주 좋은 표본이 된다. 물론 바로 반발이 고개를 쳐든다. 누가 솔직하게 질문에 답하느냐는 문제이고 그 사람 답을 또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겠다. 꿈보다 해몽식으로 대부분 실수를 둘러대며 핑계를 대거나 후술 하면서 논리를 지어내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대학원생 사례로 가보자. 우리가 예상한 대로 학생은 교수님 사은회가 꼴 같지 않고 은사를 경멸하더라도 어떻게 그걸 시인하겠는가? 오히려 극구 부인할 것이다. 자칫 그런 말을 했다가는 앞으로 학교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솔직해서 얻을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이 화를 내면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두세요. 불쾌합니다. 누구 장래 망치는 꼴을 보고 싶으세요?'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 청년이 이미 방해하는 의미랑 방해받는 의미를 구분해서 잘 알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세상이 나를 조롱하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방식은 참 편하군요. 맞으면 내가 맞춘 것이고 틀리면 상대가 거짓말한 것이다, 이러면 끝이네요. 어떤 경우에도 선생님은 맞겠군요!"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재판장을 생각해 보라. 피고가 재판관 앞에서 자기 혐의를 자백하면 그 진술은 진실이 되어 형량이 정해지고, 부인한다고 해도 재판관은 증거랑 양심에 따라 구형을 하는데 이 제도를 여러분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 선생님은 재판관이고 잘못 말한 앞에 내담자는 피고이며 분석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범죄입니까?"
여러분들 반론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나 재판장 경우랑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신분석가) 간접증거라는 것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기에, 정신분석은 그렇게 허술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으며 여러분이 오해하는 실증과학이라는 것도 엄밀하게 증명된 학설이 없는 경우에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엄밀히 증명된 것만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꼰대일 것이다. 과학은 확실성에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근사치에 만족하며 신이 내리는 완벽한 보증이 없어도 연구를 계속해야 과학자로서 맞다.
그러면 내담자/피분석자가 착오를 일으킨 의도를 스스로 설명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해석 거점을 어디서 잡고 간접증거는 어디서 구하면 될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몇 개만 살펴보자.
1 착오 이외 현상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말실수는 종종 비난을 뜻하는 쪽으로 왜곡을 일으킨다.
2 잘못을 저지른 심리상황에서 그 사람 성격이 간접증거가 된다. 다시 말해 평소 그 사람이 가진 인상을 착오랑 비교해서 가늠해 보는 방법이다.
3 여기까지는 착오를 해석하는 일반 원칙인데 처음에는 추측이나 해석을 가미한 제안이지만 끝으로 심리상태를 검토하여 실증해 줄 만한 간접증거를 찾아보자. 때론 우리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착오를 통해 예견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까지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가령 지난 글에서 '모셔다 드리다'랑 '강간하다'는 단어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독일어 특성상 '강간하러 모시겠습니다'라고 여성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독일 신사 착오를 분석하면 평소에 몹시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가 있다.
이렇게 실수 행위를 수집하며 연구하다 보면 간접증거는 무수히 마주할 수 있는데 '원망'도 큰 원인이 된다는 것을 본다. 가령 누구를 원망하는 마음이 그 사람 이름을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로 그 이름을 생각해 내고 싶지 않은 의도가 있다고 보면 된다.
가령 날 떠난 여인이 내 오랜 지인이랑 결혼을 했는데 그 후로 나는 지인 이름을 툭하면 잊어버린다. 결국 나는 지인이 그 여자랑 침대에서 따듯하게 부비는 꼴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 그놈에 대한 것은 모두 잊어버리자는 숨은 의도가 작동한 것이다 (칼 융 사례 - 이런 민망한 예는 굳이 칼 쪽에서 가지고 오시는 의도도...-_-;).
쉽게 말해 망각이 일어나는 심리상태를 복기해 보면 그것을 잊고 싶은 심리가 숨어 있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내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스스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하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충고하고 싶은 것은 실생활에서
내가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너무 떠벌리지 말라는 것이다.
정신분석가가 아니더라도 예민한 사람들은 망각이라는 착오 행위를 통해서 내 심리나 의중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망각이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파악했기 때문이고 순진한 여러분은 그에게 간접증거를 마구 발설하며 내 은밀한 의중을 자백하는 중이다.
분실도 비슷하다. 평소 알던 지인이랑 사이가 틀어지면 그가 선물했거나 그를 상징하는 물건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예민한 여자들 경우 약혼자가 자주 약혼반지를 두고 오거나 분실하는 행동에 과하게 반응하는데 그들은 교육 분석을 받지 않아도 이미 아는 것이다. 이 남자가 나랑 약혼한 것을 후회한다는 것을 분실이라는 착오를 통해서 읽는다. 즉, 잃어버리고 잊는 실수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 여인들은 파악하고 있다.
반대로 동기motivation가 사라지면 기억이 돌아오는 사례를 보면 더욱 내 주장이 확실해질 것이다. 갑자기 아내랑 사이가 나빠진 사내는 아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애정은 사라졌다. 한 번은 아내가 외출했다 책을 선물해 왔는데 평소 내가 관심 주던 분야라서 고마움을 느꼈지만 그 책을 분실하고 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투병생활을 하는 자신 어머니를 간호하는 아내 배려에 감격한 남자는 문득 그 책을 책장 서랍에서 정확하게 찾아낸다. 어디 두었는지조차 잊었던 책이 자기 서재에 잘 있더라는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를 보라. 실수 행위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 깊이 보여주는 심리 사건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수 행위가 되풀이될 때이다. 여기서도 경제학 원리가 적용이 되어서 한 번 일어나고 마는 착오는 우연일 수 있지만 반복해서 일어나는 집요한 실수는 그 행위에 중요한 본질이 있어 실수 행위를 반복하여 무언가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니 이럴 때는 실수 행위 방식이나 수단을 보기보단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 주요하다.
가령 나에게 교육 분석을 받고 분석가가 된 첫 제자 영국인 존스 군은 내키지 않는 편지를 써야 했는데 작성하고도 며칠을 묵히다가 마침내 결심하고 부쳤으나 배달 불능이라는 쪽지랑 돌아온 것을 마주한다. 주소를 쓰지 않고 보낸 것이다. 이번에는 주소를 확실하게 적어서 우체국에 가지고 갔으나 우표를 깜빡 잊고 붙이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다. 결국 이 편지를 부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마는 사건이다.
전조前兆
재미있는 것은 영민하고 예민한 사람들 경우 이런 이론을 몰라도 일상생활에서 판단을 할 때 이런 착오가 만든 결과를 전조前兆로 보고 현실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독일 화학자 일화이다. 그는 결혼식 시간을 잊어버리고 교회에 가지 않고 실험실에 갔다. 이 실수로 인해 결혼식은 엉망이 되었고 그는 이 사건을 토대로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그는 안 것이다. 그 실수에 어떤 의향이 숨어 있는지 자신 안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를 말이다. 작은 실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평생을 독신으로 보내는 거대한 결정을 내렸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러분은 영화에서도 불길한 장면이 시작되기 전에 깔리는 엄습한 기운이나 작은 실수를 보면 곧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감한다. 실제로 고대 인들은 전조란 단순한 실수 행위 하나로 여기지 않았다. 이를테면 큰 일을 앞두고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일을 전조라 여겼다. 문제는 전조란 어디까지나 내 주관에서 판단한 행위로 객관성은 전혀 없다.
사소한 실수를 전조로 둔갑시키고 인정하는 것은 주로 미신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그런 작은 착오에서 숨은 의도를 찾아보는 면밀함이랑 그 의도를 발견하는 즉시 현실에서 결단을 내리는 배짱을 보이는 위에 화학자 같은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사소한 것을 전조로 받아들여 판단내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과학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이런 전조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전조가 다 들어맞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고 들어맞을 필요도 없다.
오늘 요약은 제가 너무 심하게 원작을 훼손하여 김양순 선생님이 보신다면 때려죽인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정신분석을 모르시는 작가님들이 보시기에 재미있도록 재구성했습니다. 오늘 강의에서는 실증과학으로 잡을 수 없는 실체 즉 착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박사님께서도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느꼈지만 요약을하는 작가로서 전조에 힘을 주어 글을 마무리 했습니다. 오늘 요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전조]를 꼽겠습니다.
칼 융은 이렇게 빈틈을 보이는 프로이트 박사님에게 실망하여 떠난 이후 모든 것을 개인 묘사로 설명하는 도사가 되었습니다. 즉 전조를 잡는 범위를 너무 넓혀서 지나가던 풍뎅이만 내 어깨에 내려도 분석심리학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반면 일반 심리학에서는 상관관계는 보이나 그렇다고 인과관계는 전혀 없는 변수를 엮는 오류자로 칼이나 프로이트 모두를 싸잡지만 다릅니다. 전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프로이단이랑 융니안은 철저하게 갈립니다.
프로이트 박사님 이번 강의에는 없지만 언어로 작동하는 우리 뇌는 환유를 통해서 일정 부분 그런 실책을 계속 저지르며 돌이켜 이게 무슨 운명이냐고 자신이 내린 판단을 분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라캉을 공부한 후에 다시 프로이트 텍스트를 보니 좋은 지점이 이런 것이네요. 라캉 정신분석을 통해 언어학을 조금 이해하고 다시 마주하는 [정신분석 입문]은 더 정교하며 더 예리할 뿐입니다.
알면 알 수록 보면 볼 수록 프로이트 박사님은 옳습니다.
- 드림헌터
추신:
성인지 감수성 등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남자] 가사랑 그 안에 위트는 정말 놀랍기에 요약 중간에 일부 인용했습니다.
https://youtu.be/iiBk99JHGd8?si=PiqvTFnWCqhGIk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