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거부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아야 할 국민연금!

아, 국민연금! 어쩌다 이 지경까지

by 자유와 예술

국민연금 national pension!

세계 3대 장르 영화제로 꼽히는 포르투갈의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단편영화.

나는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다가 너무나 친숙한 네 글자, 내가 31년 동안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 글자를 봤다. 원래 자세히 알거나 친하면 금방 눈에 띄는 법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연실색했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러닝타임 6분, 스릴러, SF, 공포영화.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막을 여는 '판타스포르토'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 생성형 AI(인공지능) 기술을 제작도구로 활용. 제작사는 "이야기의 설계와 연출, 편집과 사운드 선택은 모두 감독 판단 아래 이뤄졌다",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생존을 블랙유머와 풍자로 교차시켰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포스터는 섬뜩하다. 저 멀리 섬은 폭발하듯 활할 불타오르고 있다. 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아마도 그곳의 현실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듯하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듯한 해녀의 얼굴에는 한껏 비장함이 드러난다. 잔뜩 찡그린 표정엔 절망과 체념을 넘어 도무지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증오의 흔적이 잔뜩 묻어있다. 세상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다. 희망이라곤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문구는 실로 자극적이다.' survive to 90, return to 20. 90세까지 살아남으면 20대로 돌아간다.'


어느 영화나 다 그렇듯이 개략적으로 소개한 내용으로 그 결론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그리 유쾌하거나 희망적이지 않을 듯싶다. '국가의 숨겨진 의도'라는 문구에서 속임수와 비열함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90세까지 살아남으면 국가는 당신을 다시 20대로 되돌려준다.”
그 약속만 믿고 회춘을 기다리던 노인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4·3의 생존자로 제주에 정착해 살아온 노인 춘복은,
그 실종의 이면에 숨겨진 국가의 진짜 의도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한동안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국민연금'이라는 분명한 고유명사가 어쩌다가 보통명사처럼 쓰여 스릴러 영화에서까지 조롱을 받고 있을까.


국민연금공단 National Pension Service. 대한민국의 국민연금제도를 관장하고, 1,500조 원에 육박하는 국민연금기금을 운용하는 공공기관이다.


내가 31년 동안 근무한 나의 첫 직장이다. 우연한 기회에 입사했지만 늘 사랑했고 언제나 헌신했다.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늘 당당했다. 나는 분명히 긍지가 넘쳤는데, 국민연금이 어쩌다 이런 부당한 취급을 받아야 하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국민연금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건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한다. 그럼에도 왜 이런 무지막지한 홀대를 받고 있을까? 그건 시대 흐름에 제대로 탈바꿈하지 못한 탓이리라. 국민연금은 오랫동안 정체상태였다. 왜?


거대한 쓰나미처럼 인구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분명히 알았지만, 세대 간, 이해당사자 간 이해가 달라 마냥 모른 체 그냥 눈 감아 버렸다. '회색 코뿔소(gray rhino)' 현상이다.


거대한 코뿔소가 다가오는 게 멀리서도 보이지만, 막상 다가올 때까지 아무런 대응조차 안 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파급력이 엄청나지만 그저 익숙해 과소평가하거나 큰 비용 부담 때문에 방치해 버렸다.


어쩌면 애초부터 연금을 개혁할 마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님트(Nimt, not in my-term)를 바랐을 것이다. 굳이 내 재임 기간 중에 연금을 개혁해 욕먹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하는 건 지나친 망상일까?


지도자의 리더십은 한두 해가 아니라 백 년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당장이 아리라 먼 미래를 보아야 한다. 설령 이번 선거에서 낙선하더라도 옳고 바른 길을 가야 한다. 그게 지도자의 최고 덕목 아니겠는가. 신중하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결단했다면 용기 있게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국민연금 개혁을 그저 수수방관했을 뿐이다. 요리조리 눈치만 봤고 변죽만 울리다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출생자는 확 줄고 평균수명은 대폭 늘어나는, 인구위기라는 시한폭탄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개혁엔 으레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법이다. 어느 누군들 변화가 두렵지 않겠는가. 이미 제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순순히 빼앗기지 않으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이전보다도 더 많은 부담을 지우면 어느 누구라도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반대 목소리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개혁을 포기한 대가는 가혹할 수밖에.


국민연금! 이 얼마나 듬직하고 믿음직한 이름인가. 갈수록 길어지는 노년기에 만약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어쩔뻔했는가? 매년 물가가 오른 만큼 받는 금액이 늘어나니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받는다. 살아있는 동안 계속 받으니 백세 시대에 이보다 더 좋은 복지가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이미 늙었다. 갈수록 더 늙어갈 것이다. 늙어가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초고령사회는 엄연한 현실이다. 앞으로 이 상태는 계속된다. 왜? 합계출산율이 1도 아닌 0.7 수준밖에 안 된다. 한 해 태어난 아이가 20만 명도 안 된다. 현재 95만 명이 살아 있는 1971년생과 비교하면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오죽하면 테슬라의 창업주 알론 머스크가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를 걱정하겠는가. 이미 65세 이상 노인이 1천만 명이다. 누군가 말했다. 어딜 가더라도 노인과 반려견뿐이라고. 노인 1천만 명 시대! 이건 축복일까, 재앙일까.


나는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강산이 세 번 이상 바뀌는 동안 기금운용본부와 국민연금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이와 관련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얼마나 잘 알겠는가. 게다가 이젠 정년퇴직했으니 오로지 중립적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말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충분히 믿고 의지할 복지제도다. 갈수록 길어지는 노년기를 생각하면 자산의 규모보다는 끊이지 않는 현금흐름이 중요하다. 대부분 60세에 퇴직한다고 가정하면 평균적으로 이삼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국민연금이다.


정기적으로 따박따박 통장에 입금된다. 살아있는 동안 평생 동안 받고 늙을수록 금액이 늘어난다. 물가가 오른 만큼 매년 인상되므로 마치 복리로 이자를 받는 효과가 있다. 절대 마르지 않는 샘물 처럼 매달 25일이 되면 꼬박꼬박 들어오는 국민연금을 '평생 월급'이라고 부다.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비판이 있어야 건전하고 건강한 제도로 거듭 탄생할 수 있다. 다만, 그 비판은 순수해야 한다. 양보와 타협 없는 비판은 반대를 위한 반대, 즉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비난하느라 국민연금을 거부하거나 포기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순간 욱 하는 마음에 거부하는 그 순간, 어쩌면 우쭐한 기분에 젖어 콧노래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국민연금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혜택과도 영원한 작별이다.


납부예외 또는 보험료 납부 거부라는, 국민연금을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순간, 자신은 모르지만 어느새 아주 작고 사소한 생채기가 생길 것이다. 생채기는 날이 갈수록 덧나고 커져 마침내 손을 쓸 수 없는 상처로 덧나게 된다. 바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반환일시금. 보험료 낸 달이 120달, 꼬박 10년이 안 되면,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를 보태 한꺼번에 주는 것이다. 한꺼번에 목돈을 받으니 기분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찰나의 기쁨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고?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평생 동안, 매달 꼬박꼬박 연금을 받는 타인은 늘 곁에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이가 많을수록 받는 금액이 늘어난다. 그때 뒤늦게 자책한다. '모두 다 받는 국민연금을 나 혼자만 못 받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가',라고. 뒤늦은 후회는 아무 소용없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때 이렇게 제안하기도 한다. '목돈을 국민연금공단에 맡길 테니, 매달 연금으로 받으면 안 되는가?' 절대로 안 된다.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길고 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보험료를 많이 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오래 가입하는 게 핵심이다. 10년, 120개월은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최소 요건이다. 최대가 아닌 최소에 만족할 순 없지 않은가.


대략 서른 즈음에 경제활동을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30년, 360개월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꾸준함이 탁월함을 이긴다. 이는 국민연금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다.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 할수록 노년의 삶은 더 안정된다. 안정을 넘어 풍요를 꿈꾼다면 국민연금과 함께하는 길고 긴 축적의 시간을 무심하게 즐겨야 한다.


제 때 개혁하지 않은 국민연금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래도 순수한 마음으로 비판 하자. 거부하거나 포기하지는 말자. 찰나의 우쭐함에 젖어 타인들이 다 가는 길을 마다하고 혼자 처량하게 국민연금과 등진 채 살아가는 건, 나의 노년기를 차디찬 시베리아로 몰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찬란하게 빛나야 할 나의 노년기를 비참한 궁핍으로 몰아갈 순 없지 않겠는가! 앞으로 갈수록 길고 긴 노년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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