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오든 감사하게 여기리라

튀르키예 여행(2)

by 자유와 예술

내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건 뭘까? 우선 낯선 풍경을 원한다. 색다른 문화를 보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뜻밖의 만남, 마치 행운과도 같은 우연한 만남을 원한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급작스레 밀어닥친 파도처럼, 순식간에 떠밀려오는 뜻밖의 만남을.

그는 자못 남달랐다. 큰 키에 우람한 덩치와 짙은 구레나룻, 한없이 해맑은 눈빛과 선량한 인상, 게다가 저 혼자 흥에 겨워 둥실둥실 춤추는 몸짓은 말 그대로 덩치 큰 개구쟁이를 연상케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고생하거나 실패한 적 없는, 이리저리 구불구불 마구잡이로 꺾인 곡선이 아니라 오로지 반듯한 직선의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그를 만난 건 순전히 행운이었다. 나는 애초에 카파도키아에서 진행하는 ‘지프 투어’에 별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가이드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선택했을 뿐이다. 꽤 비싼 가격이 부담된 데다, 지난여름 로마의 ‘벤츠 투어’에서 느낀 실망감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레드, 그린, 카키, 블루 중 어느 지프를 탈지 고르는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꼴찌를 한 터라 그를 만난 건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졌다.

그는 모든 일에 진심이었다. 무엇을 하든지 한순간도 허투루 대충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런 소박한 만족감을 넘어 크나큰 감동과 깊디깊은 울림을 전하는 예술가였다. 그는 온갖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저절로 감탄사를 내지를 수밖에 없는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거센 칼바람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장갑을 벗은 채 연신 휴대폰 카메라를 작동했다. 계곡을 휘몰아치는 차디찬 바람에 얼마나 손이 시렸을까. 뜨거운 열정으로 기필코 추위를 녹여버리고야 말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붓는 그에게 나는 더할 나위 없는 경탄과 감사를 보냈다.


나는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Attitude)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날 그의 기분이 정확히 어땠는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건, 늘 맑고 푸른 기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시로 변하는 기분이 아니라 늘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게 제대로 사는 길이 아닐까.

인생을 결정하는 건 바로 하루의 기분이다.
그날의 기분이 하루의 성과를 결정하고,
하루의 성과들이 모여 미래를 만들고 그 미래들이 곧 내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2025년의 끝자락, 그것도 머나먼 타국에서 맞이한 첫눈의 감흥을 색다른 기쁨으로 선사해 준, 덩치 큰 개구쟁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이건 진짜 우연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됐던 내가 여행이라는 적극적인 행동을 했으므로 이런 우연을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나는 튀르키예에서 평소 좋아하는 『여인숙』이라는 시를 지은 ‘루미(Rumi)’를 만났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여섯 시에 아침 먹고 여섯 시 오십 분에 버스를 탔다. 카파도키아를 출발한 버스는 두 시간 뒤 ‘콘야(konya)’의 어느 '오부 룩 한'에 도착했다. 실크로드 시대에 장거리 교역자들이 머물던 전통 숙박업소. 마치 철옹성 같은 그곳에서 나는 ‘루미(Rumi)'를 만난 것이다. 처음엔 전혀 몰랐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데 ’ 루미‘라는, 그리 흔치 않은 그 단어가 각종 팻말에 붙어있는 게 아닌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면 더욱더 궁금해지고, 궁금하면 어떡하든 확인해 볼 수밖에. 나는 가이드에게 여쭸고, 긴가민가했던 가이드는 현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시인보다는 신비주의 성향의 수피즘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메블라나 잘랄레딘 모하마드 루미! 13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다.


진정한 영적 지도자로서 갈 길을 잃은 백성들을 품어 안고 '적게 먹고, 적게 마시며 아무렇게나 옷을 걸치고' 기존의 권위와 형식에 맞섰다. 암울한 시대를 헤쳐나가려는 추종자들과 제자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고 명상과 기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슬람 본질에 다가가려 했다. 그들은 이슬람 신비주의자인 '수피'로 불렸다. 그는 인류 공동체가 상호존중과 화해를 통해 함께 사는 진정한 지혜를 제시하였다. 특히 용서와 관용을 강조했다.


오라, 오라!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불을 섬기는 자도, 뱀을 섬기는 자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품어 안으리라.
용서하라, 용서하라, 100번이고 용서하라.
인간은 용서할 수밖에 없나니, 용서하지 않을 권한은 다만 신의 영역이거늘….


그의 가르침은 종교를 뛰어넘는 사랑이었다. 그는 인류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1273년 루미가 서거하자 모슬렘뿐만 아니라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40일간이나 되는 장례에 모두 하나같이 애도하고 참여했다.


대스승 루미는 '남에게 친절하고 도움주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라.' '연민과 사랑을 태양처럼 하라.' '남의 허물을 덮는 것을 밤처럼 하라.' '분노와 원망을 죽음처럼 하라.'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기를 땅처럼 하라.' '너그러움과 용서를 바다처럼 하라.' '있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행하라.'는 7가지 교훈을 남겼다.

인간이란 존재는 여인숙이라네.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는
기쁨, 절망, 슬픔이 찾아오고
때로는 순간의 깨달음도 예기치 않은 손님처럼 찾아온다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리.
설령 슬픔의 군중이 온 집 안을 휩쓸며 가재도구들을 모조리 내가더라도
각각의 손님들을 정중하게 대접하리라.
그들이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나를 깨끗이 정화하는 것인지도 모르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라 할지라도
그들을 문 앞에서 웃음으로 맞이하며 집 안으로 초대하리라.
누가 오든 감사하게 여기리라.
모든 손님들은 저 멀리에서 보낸 삶의 안내자들일 터이니.
여인숙 - 루미

지중해 최대의 휴양지 안탈리아(Antalya)! 고대 문화유산이 가득한 관광도시. 잿빛과 회색이 어우러져 마냥 무겁고 침울하게 느껴지는 튀르키예의 여느 도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울긋불긋 강렬한 색상을 바탕으로 흥겨움과 생기발랄함이 그득했다. 마치 꿈과 희망이 없는 삶은 단 하루라도 살 가치가 없으니, 내일 곧 죽더라도 마지막 그 순간까지는 강렬한 소망을 쟁취하여야 한다,라고 선언하듯이.

나는 지중해에 내려앉은 찬란한 은빛 윤슬을 가슴에 품은 채 길게 이어진 공원을 느릿느릿 걸었다. 몇 년 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보았던 윤슬을 떠올리며 나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천 개의 해가 뜨고 졌을 뿐인데, 나의 삶은 얼마나 많은 추억과 경험으로 수두룩한가! 어느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새 내가 얼마나 요동치는 삶을 살았는지를.


나는 환갑을 지나 완연한 육십대로 접어들었다. 나를 이 세상에 내놓은 부모님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리 굽고 저리 휘어지고 여기저기 울퉁불퉁 긁힌 자국이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버텨낸 덕분이다.


내 인생의 끝이 언제인지, 내 삶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아는 건, 어떤 고난의 파도가 닥치더라도 참고 견디며 버티어낼 것이라는 것이다. 절대로 비굴하지 않은 채로. 비록 행운이 따르지 않아 쓰러질지언정 나는 금세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갈 것이라는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삶이다. 결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과 온갖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단 한 줌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단 한 뼘의 후회도 없이, 그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제대로 살아갈 것이다. 죽지 못해 억지로 사는 하루가 아니라 오늘 이 하루가 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소중하게 아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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