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타국에서 첫눈을 맞는 행운을

튀르키예 여행(1)

by 자유와 예술

크리스마스 저녁의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3층 대합실. 나는 밤 11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튀르키예로 갈 것이다. 직항 아닌 두바이를 경유해서.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10시간, 두바이에서 이스탄불까지 4시간, 게다가 경유지에서 5시간 대기해야 한다. 이미 대구에서 인천공항까지 4시간 버스를 탔다. 아마 내가 진정으로 원한 건 이처럼 지루한 일정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고요하게 앉아 있어야만 하는, 강제가 깃든 무작위를 통해서 숲과 같은 고요와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나는 지난가을부터 계획했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여행을 떠나기로. 혼란한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끝없이 밀려오는 생각의 파도에 휩쓸린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질곡의 늪에서 잠시라도 해방되고 싶었다.


나는 꼬박 30년 9개월을 다닌 첫 직장, 국민연금공단에서 퇴직하는 중이다. 아직 완전한 퇴직은 아니다. 재직과 퇴직이 혼합된 어중간한 상태다. 출근은 안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 소속된, 즉 공로연수 중이다. 아직 반년이 남았으니 백수는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정년퇴직이 곧 은퇴로 연결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Homo Hundred, 100세 시대 아닌가. 법적으로 정년은 60세지만, 그 후에도 정신과 육체는 여전히 활동을 원하고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단순히 살아서 숨만 쉬는 유기체를 넘어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한다. 게다가 가치 있는 행위를 통해서 설렘과 떨림이 가득한 일상을 바라지 않는가. 하지만 그건 바람이고 기대일 뿐이다. 현실은 어떤가? 기대와 현실은 좀체 좁힐 수 없는 크나큰 간격이고 넓디넓은 틈을 보인다.

나는 꽤 오랫동안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어쩌면 그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지 않을까.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삼십 년 동안 켜켜이 쌓아온 루틴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는데, 혼란스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마치 온실처럼 평온하고 아늑한 공공기관을 벗어나 정글과 다름없는,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세계로 두 발을 살짝 들이민 그 순간부터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앞으로 내가 맞닥뜨릴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임을. 마치 내가 도전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두 팔 활짝 벌려 나를 환영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임을.


나는 연달아 패배했다. 차라리 도전하지 않았다면 패배는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럭저럭 하루를 버티는 건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내 삶을 스스로 낭비하는 것이지 않을까. 게다가 이 세상에서 살아볼 기회를 준 그 누군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함이 아닐까. 항구에 정박한 배는 비록 안전할지라도 그건 배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듯이,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깨어지고 무너지더라도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여행을 떠났다. 낯선 풍경을 볼 작정이 아니라, 다른 시선을 가지기 위해서 잡다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나는 여행하는 동안 오롯이 '지금, 여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지난 과거를 추억하지도, 앞으로 맞이할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으려고 했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내가 뭔가를 하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차오르는 생각들과 내 가슴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집중해 볼 작정이었다. 오쇼 라즈니쉬가 말한 것처럼, 나는 현재를 살려고 했다.


과거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단지 현재에 살아라.
그러면 모든 과거도, 모든 미래도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멀고 먼 여정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10시간 동안 6,738km를 비행해 경유지 두바이에 도착했다. 날이 갈수록 장거리 비행이 힘들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디좁은 그 공간에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레드와인을 마셨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숨차고 가슴이 답답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10시간을 깊은 잠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내가 늙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비행기는 특수한 공간이다. 스스로 신체의 자유를 포기한 채 오로지 최소한의 물질적인 서비스를 제공받는, 하늘에 떠있는 감옥 같다, 마치 닭장에 갇힌 닭처럼 숱한 사람과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면, 그 누군가의 사소하지만 특이한 행동을 물끄러미 쳐다보게 된다.


스투시 후드티를 푹 뒤집어쓴 채 식탁용 테이블을 쉴 새 없이 문지르던 어는 청년! 그는 단박에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승무원이 물티슈로 닦은 뒤에 다른 승무원이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음에도 그는 직접 화장실에 가더니 티슈를 가져와 테이블을 정성스레 닦았다.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지극히 섬세한 그의 손길은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듯이 정성스러웠다. 잠시 뒤 세 번째 승무원이 하얀색 면 타월로 한 번 더 문지르자 10분 동안 진행된 청소가 드디어 끝났다.


나는 매우 궁금했다. 과연 그의 식탁용 테이블에 어떤 흠이 있었을까? 그가 그토록 집요하게 꼬투리를 잡은 건 테이블에 있는 흠의 문제일까 아니면 마음에 있는 강박의 문제일까? 자초지종을 알지 못하니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다. 비행기가 두바이에 도착했을 때, 이런저런 기념품을 챙겨주는 승무원의 행동에서 항공사의 실수나 잘못이 적지는 않은 듯하다.


나는 집을 출발한 지 자그마치 36시간 만에 튀르키예 앙카라의 어느 호텔에 도착했다. 길고 긴, 멀고 먼 여정이었다. 두바이에서 이스탄불까지 5시간 동안 대략 3,320km를 비행했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무려 5시간을 달려 앙카라에 도착했다.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동쪽 끝에서 출발해 서쪽 끄트머리에 도착한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기온과 주변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다.


새벽 5시를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 나는 신경을 곧추세운다. 5시 기상, 6시 식사, 6시 40분 버스 출발을 여러 번 강조했던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여럿이 함께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해진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사소한 약속 위반은 숱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카파도키아!

'스머프'의 영감이 되었고, 아나톨리아 지방 한가운데 위치해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이 살았던 땅이다. 머나먼 과거에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던 화산 지역으로 마그마 분출로 만들어진 용암바위 주위로 화산 분진이 내려앉아 응회암으로 굳어진 곳에 숱한 버섯바위가 있다.


깊은 어둠 속으로 버스가 미끄러지듯 달리자 점차 여명이 밝아왔다.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하얀색과 검은색이 묘하게 뒤섞여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차창 밖 이국땅은 고요했다. 더없이 길게 이어진 넓디넓은 평원은 마치 민둥산처럼 볼품없이 초라했다. 드문드문 녹색이 눈에 띨 뿐, 생동감이라곤 전혀 없는, 온통 텅 빈 공허만 가득했다.


어느 순간 차창 밖 풍경이 변했다. 수묵담채화가 길게 펼쳐졌다. 텅 빈 허무가 못내 아쉬웠을까? 맑디맑은 새하얀 눈꽃송이가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아무런 낌새도 없이, 마냥 수줍어하면서 그저 살포시, 그러나 쉴 새 없이 내려앉은 눈꽃송이는 금세 온 세상을 한없이 충만한 느낌으로 물들였다. 낯선 이국땅에서 맞이한 첫눈! 어찌 경이롭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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