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 대한 소회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직장에서 쫓겨난 중년 남성이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는 내용이다. 임원 승진을 앞두고 고군분투하는 그는 ‘회사가 곧 나’라고 믿는 회사형 인간이다. 직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중심축이고, 명함은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빛나는 트로피다.
그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잘해보려는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다. 조직의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자 억울해하며 울부짖는다.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한테 어떻게 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는데!”
그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분노하지만, 그건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평생 충성한 조직에서 쓸쓸하게 퇴직하는 모습은 잔인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명함이 사라지자 그를 설명할 언어조차 마땅찮다. 오열 대신 숨이 턱 막히는 듯 조용하게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지독히 씁쓸하다.
불행은 겹쳐서 오는 법이다. 퇴직 이후 맞닥뜨린 현실은 더욱 엄혹하다. 튼튼한 우산이 사라지자 경제적인 부담뿐 아니라 사회적·정서적으로 고립된다. 중년에 새로운 기술을 배워 다른 길을 모색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재교육 시스템은 형식적이고 직업 전환은 그저 구호에 불과하다. 끝내 부동산 사기까지 당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제 그의 존재를 알려주는 모든 좌표는 소멸됐다. 아무런 전조 없는 추락, 그건 공포 너머의 지옥이다.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라.”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허울만 근사한 텅 빈 껍질에서 벗어난다. 그는 느긋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인가.
만약 그토록 바랐던 임원이 되었다면, 그는 행복했을까? 사회적인 성공이 곧바로 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되었을까? 겉으론 성공한 듯 보일지라도 속으론 더 외롭지 않았을까? 어쩌면 권위적이고 허세 부리는 시대착오적인 꼰대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마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는 김 부장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했다. 그건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 내가 국민연금공단에서 이태 동안 몸소 겪은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과거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가슴 한편이 답답하기도 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맨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젖어 깊은 탄식만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달도 차면 기울 듯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피크 아웃(peak out)은 어쩔 수 없다. 이젠 화려한 과거와 작별해야 한다. 과거의 덫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면 안 된다. 과거의 나에게 따뜻하게 말해줘야 한다. ‘아등바등 사느라 힘들었지? 정말로 수고 했어!’라고.
퇴직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맞이할 예정된 미래다. 작년 기준 귀속 근로소득 연말정산 인원 2,085만 명은 언젠가 퇴직한다. 직장이 없어도 인생은 계속된다. 명함이 사라져도 존재 그 자체는 변함이 없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졸업식을 뜻하는 commencement가 시작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나는 이제부터 새롭게 살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비교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알량한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쉼 없이 경쟁하느라 나 자신조차 속인 거짓 페르소나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 소박한 일상에 감사하면서 더없이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한마디로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즐거움, 즉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행복을 즐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