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마느냐
십 대 시절부터 내 마음에 힘들게 부딪혀 오는 구절들이 있었다. 바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이다. 강한 울림이 있었지만 나보고 마치 죽으라고 들려서 너무나 부담스럽고 외면하고 싶었던 구절이었다. 그 당시 나는 믿지도 않았는데 미션 스쿨이었던 학교 화장실 문에 붙어 있었기에 알게 된 구절이다. 집에 이와 비슷한 책 제목도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성웅 이순신 장군도 일본과 큰 해전을 앞두고 이런 비슷한 말을 했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같이 겁 많고 눈물 많고 무서움이 많은 아이는 싸워 보기도 전에 얼른 짐 챙겨 멀리 도망갈 것이다.
그 후 20대에 믿음을 갖게 되었어도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구절들은 여전히 외면하고만 싶었다. 난 그런 것 몰라요라고 덮어 두기만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이 구절을 보았는데 너무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에는 '너는 밀알이니 죽어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해'라는 어떤 강요와 의무로 들렸다면 이제는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에서 밀알의 완전한 자유가 느껴졌다. 마치 너 죽기 싫으면 죽지 않아도 돼... 그냥 밀알이 땅에 떨어져도 한 알 그대로 있을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알의 밀알로 그대로 있겠다는 것도 존중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내가 더 이상 이러한 구절들에 겁먹지 않을 때에야 이런 밀알의 자유가 읽혔다는 것이다. 아무도 한 알 그대로 있겠다는 밀알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밀알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너 하나 죽으면 많은 열매가 맺혀'라는 아무리 선한 대의가 있더라도 밀알에게 한치의 강요는 있을 수 없었다. 아니, 있어서도 아니 되었다. 아무리 많은 열매가 있더라도 죽지 않겠다는 밀알의 뜻도 깊이 존중되어야 하고 아무런 비난이나 비판의 말도 할 수 없다. 그것이 밀알이 지닌 신성한 자유이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한 건 이런 완전한 신적 자유를 알고 누린 밀알만이 완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응 나도 알아... 내가 죽지 않아도 아무도 날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뜻이 온전히 존중받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죽고 싶어... 난 오랜 시간 한 알 그대로 있어 보았고 한 알 그대로도 만족스럽지만 이제는 내가 없어지는 것이 더 이상 무섭지가 않아... 아니, 오히려 없어지면 좋겠어... 그래서 많은 열매들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 아! 얼마나 아름다울까?
P.S. 독자님들께-그동안 [내맘내글]을 매주 금요일에 연재했으나 저의 일정상 수요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공지해 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