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해!

언제까지나 옆에 함께 있을게.

by 아름다운 관찰자

"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딸아이가 발작이 올라와 힘들어 엄마인 내게 몇 번 소리치며 한 말이다.


예쁘고 다재다능한 딸이, 한참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자신의 꿈을 위해 매진하는 시기에 딸은 자신의 병으로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런 딸에게 엄마인 나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더구나 엄마의 유전적 영향으로 고생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여러 형태의 세상의 혹독함 중 정신적인 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딸아이가 이 세상에 분노하여 다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까지 올라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자기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그래서 부모에게 자신을 왜 낳았냐고 따지기도 하고 자신은 태어나고 싶지 않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신 병동에 입원하고 있을 때에는 있는 힘껏 소리를 계속해서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발로 차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감정 발작들이 지나가기까지 보호병동 진정실 침상에 묶여 혼자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시간 동안 딸은 세상과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를 계속 찾았다고 했다.


나는 고통이 올라와 날이 서 있는 딸에게 섣불리 위로해 주려하거나 섣불리 긍정멘트를 날리지 않는다. 단지 잠잠히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모든 의미를 두고 그 순간에 온 주의를 다해 깨어있으려 한다. 그렇게 있다 보면 딸아이에게 필요한 행동과 말이 적절하게 나오는 것 같다. 나도 고통이 올라오면 같이 눈물 흘리거나 꼭 껴안아 주기도 하고, 어떨 땐 감정적인 고통은 태풍처럼 왔다가 지나가고 있다고 작은 소리로 일깨워 주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엄마의 유전적 영향과 우리 부부의 미숙했던 수준으로 인해 딸에게 고통을 준 것은 일면 사실이기에 함께 울면서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라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누구의 탓이었는지, 어떤 원인이었는지 해명하려 하지 않는 태도이다. 세상을 향해 자신과 남을 향해 분노하고 복수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아이의 상태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는 말이나,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상하고 두려움에 섞인 말들도 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에게 반협박식으로 들릴 수 있는 경고의 말들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네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우리는 이렇게 할 거야'라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뉘앙스의 말들을 내뱉었다가 오히려 아이의 발작만 더 부채질한 꼴이 된 적이 많았다.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과 말을 하면 아이에게 지극히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주되 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으로 일깨워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유서를 쓰는 상상이 계속된다고 하면... 올라오는 감정들을 통제하느라 많이 힘들구나... 근데 엄마는 지금 입양한 아기 고양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 우리 집 다른 반려견, 반려묘와 어울리며 생활할지 그것이 더 궁금한걸! 하고 말해 준다.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마인드가 정말 필요하다.


얼마 전에 코리 도어펠드의 책 '가만히 들어주었어'를 알게 되어 읽어 보았다. 책 속에 나오는 토끼처럼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가 다시 엄마의 사랑이 전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고통 속에서 올라오는 아이의 말들을 주의 깊게 깨어서 잠잠히 들어주는 것이 그동안 딸아이에게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그런데 에고가 강하고 상처투성이였던 엄마가 참사랑을 할 수 있기까지 성숙해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엄마가 자신과 소외되었던 삶의 현장에서 돌아와 자기 안의 참생명의 본질에 든든히 뿌리내려 깨어 존재함으로 아이의 말들을 공감하며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는 귀와 지혜로운 입술이 있기까지 엄마도 수없이 많은 내면의 작업들이 필요하다. 과거의 고통과 후회, 미래가 주는 두려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아이와 함께 현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질 때 아이의 마음에 빛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들어 가는 것 같다. 이것 자체가 사랑이 되고 생명이 된다. 그렇게 엄마의 역할을 다할 때 나머지는 아이의 몫이다. 아이 안에 있는 참생명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알아볼 때까지 제 역할을 끝까지 잘 해내 줄 것을 오늘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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