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
한 번은 보호병동에 들어가 있는 아이로부터 전화가 올 때면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담당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을 때 교수님은 어떤 말이든 다음의 3가지만 전해지면 된다고 하셨다.
1. 버티어 줘서 고맙다.
2. 너는 지금 성장하는 중이다. 괜찮다.
3. 이 시기만 지나면 반드시 좋아진다.
1. '버티어 줘서 고맙다'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말이었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잘 해내어서 아니라 아이의 존재 자체로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 주는 말이다. 한편으로 짧지 않은 긴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 아픈 아이를 돌보고 있는 부모에게도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겨 지금 내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너의 노력에 고맙다."라고 아이에게 자주 말해 주었다. 입원해서 치료받고 있는 것도 아이가 힘들지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기에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고, 그런 딸을 묵묵히 감당하고 한결같이 있는 남편과 나 자신에게도 고마웠다.
2. '너는 지금 성장하는 중이다. 괜찮다'는 아파서 학교도 중지하고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해야 했던 딸아이를 부정적인 시야로- '사회 실패자'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계속 딸아이를 믿음의 시야로 바라보면서 격려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말이었다. 아이가 정말 좋아져서 퇴원을 했는데 다시 입원하기를 반복할 때에도 교수님은 "괜찮다"라고 먼저 말씀해 주시고 따뜻하게 받아주셨다. 그래서 나도 교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가 약을 먹고 있어도 계속 발작하고 또 그 시간이 지나면 미안해하는 아이를 진심으로 괜찮다는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이 말은 부모로서도 실패한듯한 나 자신에게도 다독이는 말이 되었다.
3. '이 시기만 지나면 반드시 좋아진다'는 기도를 중단하고 침묵함으로 모든 상황을 맡기기로 하였던 나에게 다시 새로운 믿음을 주었다. 처음 교수님께 한 두 번 들었을 때는 교수님이 부모를 위로해 주려고 으레 하는 말인 것처럼 들었었다. 그런데 아이가 입원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교수님으로부터 똑같은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교수님이 아닌 엄마인 내가 정말로 아이가 나을 거라고 믿고 있는가?...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나의 마음부터 바꾸기로 하였다. 아이가 아픈 모든 상황을 더 큰 선(善)에 맡기는 것과는 별도로 엄마가 아이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데 아이가 변할리 만무하였다. 그래서 당장 나에게 주문을 걸듯이 소리를 내어 말해 보았다. "이 시기만 지나면 반드시 좋아진다." "너는 성장하는 중이다. 괜찮다." 처음에는 조그만 소리로 띄엄띄엄 나오던 말이 여러 번 반복할수록 목소리도 커지고 또박또박 나왔다. 아이가 나을 거라는 믿음이 나의 마음에서도 올 때까지 계속 큰 소리로 혼자서 반복했고 아이 아빠에게도 식탁에서 확신 있게 말할 정도가 되었다. 그 후론 나도 아이랑 통화를 할 때마다 "괜찮아, 넌 성장하고 있는 중이야... 이 시기만 지나면 반드시 좋아져"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교수님의 사랑과 믿음의 말들은 엄마인 나의 마음을 먼저 바꾸어 주었고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해 주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순응하는 마음과 함께 나의 마음이 믿음으로 바뀌면서 한 달 넘게 보호병동 안에서 생활하던 아이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퇴원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나 다시 아이가 죽음에 대한 생각과 병동에 대한 애착으로 힘들어해서 그때는 아이와 함께 개방병동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크게 낙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있는 중이고 이 시기가 지나면 또 괜찮아질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아이 옆에 묵묵히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더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4. 네가 겪고 있는 마음의 고통들이 너의 본질이 아니다.
5. 너의 본질은 너 안에 있는 참생명 자체이다.
감정과 생각들은 하늘의 구름처럼 지나가는 것이야. 일순간 검게 하늘을 온통 뒤덮어도 너의 참생명은 구름 너머 맑은 하늘에 한결같이 반짝이고 있는 눈부신 태양과 같아. 감정과 생각은 구름과 같이 잠깐 머물다 가버려. 그리고 날씨와 같이 변덕스럽지.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고 평화로운 날이 있으면 태풍이 몰아치는 날도 있어. 추운 날이 있으면 따뜻한 날도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너의 감정과 생각들에 너의 정체성을 두지 말고 너의 감정과 생각은 인정은 하고 받아들이되 잠잠히 지켜보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어느덧 폭풍 같은 감정과 생각들이 지나가고 그 자리에 평화로움이 찾아올 거야. 그리고 맑게 얼굴을 드러낸 네 영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고요한 생명 자체에 눈을 떴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