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얼마면 돼요?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불행이 잠시 잊힌 순간에 조용히 깃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부시지 않아도 한 줌의 따뜻함이 스며드는 그 찰나에.
불행은 언제 시작되는 걸까.
그 시작은 분명 조용하지만 짙게 스며드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고통이 무기한 계속될 거란 예감이 몸을 휘감고 지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이건 불행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도 그랬다.
도시는 멈췄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졌고,
그 시간이 끝나긴 할까, 끝은 있는 걸까, 싶었다.
결국 끝은 찾아왔고
잊고 지냈던 계절의 색도 다시 돌아왔다.
그렇다면 끝이 있다는 건 어쩌면 불행이 아니라
그저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처럼.
내 손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삶의 일부로 고정 돼버렸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진정한 불행 아닐까.
나는 불행을 잊고 있을 때 행복하다.
조승리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p.159)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있다면?
내가 가능한 일에만 접근한다면?
불가능하단걸 불가능한 걸로 인정해 준다면?
불행의 이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불행하지 않다.
불가능한 일에 비하면 가능한 일이 훨씬 많음을 알기에.
내가 불행하다고 여겼던 많은 순간들은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상 속 걱정뿐이었다.
실체 없는 불안에 휘둘리며 스스로 만들어낸 그림자 같은 것들.
‘걱정은 사서 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때로 값을 치르면서까지 불행을 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정작 아무도 그걸 팔고 있던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불행을 향해 들이던 정성을
이제는 조금만 행복 쪽으로 돌려보려 한다.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기를.
얼마면 될까?
얼마면 지금 이 순간에 웃을 수 있을까.
커피 한 잔이면 되는 날도 있고,
햇살 좋은 산책길이면 충분할 때도 있고,
그저 괜찮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이면 족할 때도 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행복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우리가 너무 비싸게만 느껴왔을 뿐.
걱정이라는 이름의 불행이 다시 나를 찾아올 때,
나는 조용히 나를 일깨우듯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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