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나를 바라보다.
나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원하지 않는 대로 될까 봐 불안해하고, 원하면서도 정말로 원하는 대로 될까 봐 마음 졸이고 있었다.
카오스,
땅은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
한낮의 시선, 이승우
이 문장은 복잡하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심정을 잘 담고 있다. 우리는 종종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하며, 동시에 간절히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부담감을 느낀다. 그 모순적인 감정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혼돈(카오스).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
올해 초 ‘양가감정’이라는 단어를 곁에 두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필사 글을 통해 그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양가감정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사랑하다가도 곧 미워지고, 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갈등이 생기는 것 말이다.
이런 감정들은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 내면이 얼마나 풍부한지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때론 내 안에 너무 많은 나 자신이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반쯤 미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자연스럽다. 우리는 원래 그런 복잡한 존재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감정은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사실 사랑이 바탕이 되기에 미움도 생기는 것 아닐까. 감정이 없다면 미움도 없다. 결국, 이런 복잡한 감정은 우리가 상황이나 사람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방식이다.
같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감정이 공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새로운 기회를 앞두고 기쁨과 기대감에 차 있으면서도 불안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올 수 있다. 우리의 감정은 결코 한 가지로만 흐르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우리 마음이 다층적이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과 ‘잠시 거리를 두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 때 우리는 큰 혼란에 빠지곤 한다.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런 감정은 더 깊고 강렬하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사랑과 의무,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뜻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부담감, 서로 다른 기대와 현실 속에서 우리는 내면의 다양한 자아와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자아들이 충돌해 갈등이 시작된다. 서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란 걸 인정해 주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혼돈 속에 있는 것도 괜찮다. 양가감정은 우리가 복잡한 내면을 가진 만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이 좋다. 결국, 이 과정이 우리에게 더 큰 평온과 이해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혼돈 속의 나를 꾸짖지 말고 다독여 주었으면 한다.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차분히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혼란도 결국 다 괜찮다.
이 모든 감정들이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으로 이끄는 길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