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밤이 내게 건넨 것
지난 토요일 밤, 거실 불을 끄고 넷플릭스로 BTS의 광화문 무대를 봤다. 직접 현장에 간 것도 아닌데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동안 그 밤이 내 안에서 쉽게 가시지 않았다. 광화문이 내게 건넨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정확히 몰랐다. 전날부터 온 세상 뉴스가 그 이야기뿐이었고, 전 세계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그제야 관심을 가져본다. 조금 늦었다면 늦은 셈이지만, 세상일이 늘 그렇듯 준비가 됐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멤버들의 이름은 들어봤어도 얼굴과 맞춰보려니 쉽지 않았다. 마주한 개개인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묵직한 존재감이 있다. 좋은 말로 꾸며보려 해도 마땅한 표현이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존재 자체로 밀도가 다르다'는 느낌이 가장 가까울 것이다. 해변에서 작은 돌들을 주워 모으면 그럴듯한 모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돌보다는 천연보석에 가까웠다. 하나씩 볼 때는 그 가치를 다 몰랐는데 일곱이 엮여 있으니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경계로 넘어가 버린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내내 웃고 있었다. 그것이 연기인지 진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의 몸은 참 가벼워 보였다. 억지로 짜낸 움직임이 아니라 그 순간을 온전히 장악하고 즐기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여유였다. 그 큰 무대 위에서 그들은 '멋을 부리는' 존재가 아니라, '멋 그 자체'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무대를 보는 내내 나는 자꾸만 되묻게 되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저렇게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해 즐거워했던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들의 눈부신 젊음이 이토록 부러울 때가 있었나 싶다. 어느샌가 내 마음속에도 내가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젊음'이라는 단어가 짙게 그려지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 사이의 공기였다. 신뢰가 묻어나는 눈빛, 오랜 시간 감정을 쌓아온 이들만이 나눌 수 있는 배려, 장난스러운 제스처 속에 녹아있는 노련미. 발목을 다쳐 한쪽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멤버를 자연스럽게 무대 중심의 공기로 끌어들이는 모습은 미리 짜인 안무보다 더 정교한 유대감의 증명이었다.
그들의 노래 ‘Take Two’에는 이런 가사가 흐른다.
사막도 바다가 돼서 we swim forever / 외로워했던 고래도 이젠 singing together / 함께니깐, 영원을 바래도 무섭지 않아 / 내 믿음은 너고 하나뿐인 이유니깐
광화문 무대에서 불려지는 노래의 가사를 다 몰라도 전해지던 그 기운의 정체는 아마도 이 가사처럼 ‘함께함’이 주는 두려움 없는 확신이었을 것이다. 사막 같은 시간을 지나 바다를 만들어낸 일곱 청년이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믿음이 되어 영원을 노래한다.
그들이 엮어내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이 묵직하고도 투명한 여운을 동력 삼아 나의 다음 장을 펼쳐보려 한다. 저들도 저토록 즐겁게 자신의 길을 증명해 내는데, 나라고 못 할 것이 있을까. 이제는 부러워만 하던 젊음의 잔상을 뒤로하고 나만의 노련한 기세를 이어받아 새로운 챕터를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디뎌 본다. 이제 막 시작된 나의 ‘두 번째 챕터’, 그 길 위에 서서 말이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