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한 May 03. 2023

배달해 드려요

동네 아이들의 용돈 벌이

아이들의 감기로 일주일째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힘없고 답답한 하루하루...

그런 우리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띵똥"


오랜만의 초인종 소리가 반가웠던 아이들이 후다닥 달려 나가 창문으로 살펴보더니 어떤 아이들이 왔다는 것이다.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함과 동시에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으니) 누구보다 빠르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보니 10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8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뭐지? 무슨 일로 왔을까? 뭘 잃어버려서 찾고 있나?'

갖 생각을 다 하며 예상시나리오를 짜고 있는데 아이들이 간식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오호! 이것이 말로만 듣고 티브이에서만 보던 아이들의 방문 판매인 것인가! 꼭 사주고 말 테다!!

로망을 마주한 어른의 관대한 소비를 보여주고자 무얼 파는지 물어보니 본인들 집 앞에서 스노우콘이랑 캔디를 팔고 있단다. 스노우콘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예전에 분명 알고 있었는데 그 순간 그냥 젤리 같은 거 파나보다 했다. 사실 그게 무엇이든 사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커서 중요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장소가 저쪽.. 우리 집 뒤편.. 좀 멀리 있는 곳....

아..  갈 수가 없다.

봄이면 날마다 세차게 바람이 부는 이 동네에서 감기 걸린 아이 셋을 데리고 캔디 사 먹겠다고 먼 길을 나설 수는 없는 일.

망설이고 있는 찰나 큰 아이가 내뱉은 한마디.


"배달도 해드려요" (물론 영어로)


젤리라고 생각했던 스노우콘 2개를 각각 다른 맛으로 주문하고, 캔디까지 주문했다.

아이들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창문에 붙어 배달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캔디 가져오는 게 시간이 이렇게 걸린 일인가 싶어 이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 개의 전동 킥보드에 두 명이 같이 타고 갔는데 혹시 넘어져서 다친 건 아닐까, 오는 길에 캔디가 다 쏟아져서 다시 가지러 간 걸까,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슝 날아오고 있는 아이들.

전동킥보드 운전하는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들고 온 것은 빨간 플라스틱 컵에 시럽 뿌린 간 얼음과 캔디류 3개.

그걸 보는 순간 '아!! 그래, 이게 스노우콘이었지'

나는 멍청이 멍청이 똥멍청이야~ 감기에 얼음이 웬 말이냐.

고맙다고 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총 3불이 좀 넘는단다. 10불짜리를 주니 거스름돈을 다시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잔돈은 괜찮다고 했다. 거슬러주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쉽게 돈을 얻었다고 느낄까 염려가 되었지만 두 번이나 다녀오게 하기는 싫었다. 전동킥보드가 너무 위험해 보였고, 세찬 바람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10불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스노우콘 2개, 캔디 3개, 나의 로망 실현, 아이들의  즐거움에 스노우콘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운 날.

우리의 지루했던 하루에 기분 좋은 설렘을 선물해 준  아이들에게도 오늘이 의미 있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길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