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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Oct 16. 2024

우리 집 부추 꽃 보고 가세요

별빛이 내린다


5년 키운 부추가 꽃을 피웠다.

이 집에 이사 온 첫해에 시어머니께서 심어주신 부추다.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시는 시어머니께서 우리가 이사 오자마자 앞뜰에 이것저것 심어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저 부추다. 이사 온 첫해 초기에는 물을 잘 줄 수 있었다. 셋째 출산으로 친정엄마께서 와계셨고, 신랑이 일을 시작하기 전이라 물 줄 사람이 있었다. 그러다 다음 해부터는 2주에 한번 정도 겨우 물을 주게 됐다. 친정엄마께서 다시 한국으로 가셨고, 신랑은 일을 시작하고 너무 바빠 일 년 내내 단 하루도 쉬지 못했으며, 나는 1살, 3살, 6살 어린아이들을 돌보느라 다른 것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여름 내내 산불 연기로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라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산불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어느 날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붉은 연기들이 가득했고, 어느 날은 하늘이 좀 맑게 보이기도 했다. 기온은 37도를 넘어가는데 비는 내리지 않고, 주인도 물을 주지 않는 메마른 2년을 겨우 보낸 식물들 중 절반이 말라죽었다. 재작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조금씩 물을 줄 수 있었다. 앞뜰에는 잡초도 자라지 못한 채 꽃 몇 가지와 부추가 살아남아 있었다. 원래 부추의 생명력이 엄청난 것인지 악조건 속에서도 매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었다. 올해도 더운 여름을 지나 뽀얗고 말간 얼굴을 한 부추꽃이 만발했다. 너무 예뻐 꽃대만 모아 꽃병에 꽂아두었다.


한국에서도 부추는 사 먹어만 봐서 꽃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직접 키워보니 부추꽃대가 생각보다 질기고 단단했다. 초록빛이라 꽃만 잘라내고 줄기도 부추처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얇은 갈대 줄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작년 부추꽃

봉오리는 아기자기한 작은 보석을 닮았고, 활짝 핀 모양은 정확히 재고 그린 것만 같은 별 모양이다. 안쪽의 노란색 꽃술과 하얀색 꽃잎의 조화는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그 생김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는데 바로 향기이다. 근처만 가도 꿀같이 달콤한 향기가 너무나 진해 방향제를 뿌린 것만 같다. 가끔씩은 달콤함에 부추의 매운 향이 약간씩 더해져 있어 잘못 맡으면 찌린내 같기도 한 오묘한 향이 다. 신기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 꽃이 다 지고 나면 씨앗이 맺힌다. 다시 시간이 지나 씨앗주머니가 터지고 그 안에 까만색 씨앗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잘 모아 바짝 말려서 보관해 두면 두고두고 보관이 가능하다. 작년에 잘 안 말린 상태로 보관했던 씨앗들에 곰팡이가 생긴 적이 있어 올해는 신경 써서 말렸다.

부추씨앗


아직 밭에 그대로 맺혀있는 부추씨앗들이 많은데 여기저기로 퍼져나갈 테니 내년엔 올해보다 더 관리하기가 힘들 것 같다. 올봄에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나오던 부추싹들을 뽑아 정리하느라 고생을 좀 했는데 올해는 퍼져나갈 씨앗들이 더 많다.

작년 부추
올해 부추

작년과 비교해 보니 올해 부추의 기세가 엄청났구나 싶다. 물만 줘도 쑥쑥 잘 자란다. 여름에 한국을 가면서 마냥 자라 있을 부추가 아까워 형님께 오며 가며 마음껏 잘라다 드시라고 말씀드렸었는데 한 번도 그러지 않으신 것 같다. 아마 미안하기도 하고 주인 없는 마당에서 무언가를 가져간다는 게 내키지 않으셨던 것 같다. 부추는 계속 잘라먹어야 풍성해지고 잘 자란다던데 그냥 둬도 잘 자라는 것을 보니 새삼 대단해 보인다. 내년엔 부추밭을 좀 더 확장시켜 주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정리를 해줘야겠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많이 추워졌다. 오늘 저녁은 올해 마지막일 부추를 뜯어다 부추전을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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