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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재 Sep 18. 2022

행사 준비

국제 사이버범죄 대응 심포지엄

 우리 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가을 쯤 개최되는 국제 심포지엄이라는 말을 경찰청으로 오자마자 전임자에게 들었고, 작은 일을 하나 하나 끝낼 때마다 더 중요한 행사가 남아있다는 말을 동료직원으로부터 매번 들었다. 그만큼 우리 계의 1년 성과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행사가 국제 사이버범죄 대응 심포지엄이었다. 


 매년 개최되는 이 행사는 2000년 부터 시작되었고, 이 행사를 위해 우리가 컨택하고 있는 기업, 정부, 학계 인사들에게 발표를 요청하고, 일부 대상자를 상대로는 왕복 비행기삯과 호텔값도 지불해주었다. 이번에는 반포에 있는 jw 매리어트 호텔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 1박 가격이 대략 4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처음 가보는 호텔이었는데 매우 좋아 보였다. 


 이번 행사에도 역시 인터폴 고위급 인사, FBI 고위급 인사, 미 법무부 검사 등 다양한 분들이 연사로 사이버범죄의 최신 트렌드 등에 대해 발표를 해주었고, 발표 내용도 상당히 좋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준비했던 파트는 개회사, 양자회담을 위한 자료작성 등이었다. 내가 개회사를 쓴 것을 반추해보면 아무리 중요한 행사라고 해도 개회사 같은 연설문 초안은 나 같은 실무자가 쓴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놀랍다. 경찰을 잘 알지도 못하는 실무자가 여튼 개회사 초안을 쓴다. 느낀 점은 정말 책을 많이 틈틈이 읽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조세프 나이 하버드 교수님이 "안보는 공기와 같다"라고 책에 쓰신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문구를 용케 기억해내고 "치안은 공기와 같다"라고 치환해서 사용했다. 나름 반응이 좋았다. 


 이 심포지엄에서 국가 간 공조수사를 위해 양자회담도 진행한다. "우리가 이렇게 수사를 진행했는데, 피의자가 너네 국가에 있어, 잡고 싶은데 좀 도와줄래?", 이런 대화를 하기 위한 회담으로 개인적으로 연사들 발표만큼이나 중요한 일정이라고 생각한다. 수사의 궁극적 목적은 나쁜 놈을 잡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하는 것이니 만큼 공식적인 소통창구가 수사의 목적 달성에 도움된다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 


 행사 준비가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발표를 준비하기 위한 절차가 힘든 것이 아니라 "보고와 의전" 때문인 것 같았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계속 행사 진행상황 보고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고, 중요 참석자를 대상으로 어떤 선물을 줄지, 어떻게 이 사람들을 앉혀서 밥을 먹일지 등을 고민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아직 공무원이 덜 되었는지 이런 준비의 중요성 및 실효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못하고 있다. 선임 경감한테 물어보니 나중에 그들이 경찰청의 요청에 적극 대응을 해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무자로서 일하면서 접하는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내외 고위급 인사들을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는 것은 직위에서 오는 파워를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라는 사람에서 오는 대접이 아닌 나의 직위에서 오는 대접을 당연히 여겨서도 안되며, 이를 갖고 아랫사람을 하대해서도 안되며, 이 대접은 피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행위하면 그들과는 다른 진짜 리더가 될 것 같다. 


 우리 계와 함께 이번 행사를 주도한 업체가 있다. 정부기관 혼자 이런 큰 행사를 치룰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행사가 사설 업체와 계약을 해서 진행되는 것 같다. 그 업체의 한 직원이 우리 행사를 책임지고 우리 측 직원과 계속 의견을 나눠가며 행사를 준비했고, 진행했다. 우리 계 직원 대부분이 그녀 혼자 너무 혼자 고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그 회사를 그만둔다는 인사를 전해왔다고 들었다. 나는 그 직원과 한 세, 네 마디 나눴는데, 너무 안쓰러워서 주제넘지만 메시지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선물했다. 


 조직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단연코 "일"이다. 일이 돼야만 조직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람"인데, 그 사람한테 너무 부담을 주어 실망하게 하고, 그래서 떠나게 만들었다면 어느 조직이든 한번쯤 그간 행태를 돌이켜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조직이 나한테 실망하는 것만큼이나 나도 우리 조직에 실망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을 이유로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조직은 너무 거대한 조직이니까 나 하나 떠난다고 바뀔 부분은 1도 없지만 그래도 작은 울림이라도 던지고 갈 수 있도록 일단은 내 몫의 일은 다하고, 그런 사람으로 생각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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