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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Hyun Oh Apr 19. 2024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닥친 시련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염증이 너무 심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른다. 대수롭게 생각한 일이 타이머가 달린 시한폭탄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2023년 추석 연휴의 마지막날, 갑자기 오른쪽 눈이 따끔했다. 큰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하던 일을 마저하기로 했다. 바로 제거를 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련하게도 하던 일을 마칠 때까지 나는 16시간 이상 끼고 있던 렌즈를 계속 방치하고 있었다. 눈이 나에게 외치는 고통을 외면한 채로 말이다. 내 눈이 괜찮아지라리 믿으며, 그렇게 시작한 통증을 외면하고 다음 날도 버릇처럼 렌즈를 끼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아무래도 불편한 상태여서 계속 렌즈를 씻지 않은 손으로 맞지작 거리며 불편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이 나를 좀 봐죠하는 그런 외침을 외면하고 보낸 삼일째. 눈을 뜰 수 없고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신경까지 아픈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 순간 눈을 뜰 수 없게 되었고, 응급실을 찾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 순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런 두려움을 갖고 찾아간 응급실에 안과전문의가 없다고 하여, 그냥 공안과를 찾아갔고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상태로 세균이 번식되면 실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였다. 나의 경우, 급성 세균성 각막염으로 안과 전문의가 있는 응급실을 가라고 조언을 받았다. 가장 센 항생제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두려움과 급한 마음으로 서울성모병원에 예약을 하려고 하니 신규환자는 4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예약을 하고 공안과를 다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서울성모병원을 가는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갑자기 암흑이 된 느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눈을 감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안타깝게도 음악듣기, 오디오북, 명상 외에 많지 않았다. 원래도 책을 좋아해서 트레바리를 하던 나는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에서 진정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자라고 나를 다독이며, '부자의 그릇'을 듣기 시작했다. 오디오북은 의외로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과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캄캄한 터널에서 작은 희망을 본 느낌이였다. 사람이란 동물은 참 신기하게도 눈이 보이지 않으니 다름 감각들이 살아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청력, 미각, 후각은 더 예민하게 주변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눈의 상태는 2주 동안 차도가 거의 없었다. 절실한 마음에 갑자기 생각난 어릴적 친구인 안과 전문의에게 연락을 하여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자기네 병원이 서울성모병원과 연계 병원이여서 응급의 경우 보다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가뭄의 한 줄기의 비와 같은 소식을 듣고 빠르게 나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서울성모병원을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태는 그래도이며,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각막을 긁어서 세균배양이 필요하다고 했다. 잠깐의 아픔이 문제인가? 빠른 치료가 제일 중요한 상황이라 그 것마저도 감사했다. 배양된 세균에 적합한 제조된 항생제를 사용하면서 눈을 뜰 수 있게 되었지만 시력이 계속 나빠지게 되었다. 이제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PT를 받으러 갔는데, 다음 날 병원에서 안압이 올라가니 주의하라고 하였다.


나는 원래도 휴식을 온전하게 멍을 때리거나 쉬지 못한 성격이다. 불도저 ENTJ인 성향으로 쉬지 못하고 그냥 새로운 일과 생각을 하는 것이 그 동안의 휴식이였던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은 나에게 휴식을 모른다고 얘기해왔는데, 각막염으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냥 쉬게 되었다. 그렇게 쉬면서 지낸지 6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휴식중이다. 병원에서는 눈에 흉터가 남을 것이라고 했지만, 감사하게도 내 눈은 열심히 회복중이다.        


이렇게 눈을 감고 명상도 해보면서 나에게 원초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행복, 죽음, 결혼의 의미 등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행복은 성취이고, 성취는 곧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개념들은 하나씩 하나씩 바뀌고 있다. 일상을 즐기고, 감사할 줄 알고, 감정도 보살피는 것도 필요하구나. 나에게 숙제라고 생각했던 결혼에 대한 생각도 180도 바뀌게 되었다.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으니 어떤 관점에서 보는 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구나. 각막염은 나에게 시련을 주었지만 동시에 큰 가르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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