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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의 신화와 새로운 노예

2016년의 글

나는 외국계회사에 다닌다. Junior 시절에는 그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퇴근할 수 있고, 윗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며, 내가 원하는 idea가 있으면 얼마든지 먼저 발표하고 제안할 수 있었다. 윗분들께서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윗분들의 잡일을 신입사원들에게 주로 시키는 한국 회사에 비해, 외국계 회사에서는 개인의 잡일은 직급상관없이 그 자신이 스스로 처리하기에 나는 내게 주어진 작은 책임과 업무들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보다 더 직급이 높았던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고, 외국인 임원들은 블랙베리 족쇄에 묶여서 주말에도, 식사시간에도, 회식중에도, 항상 업무를 했고, 사무실에서도 항상 가장 일찍 나오고 늦게 퇴근했으며 주말에도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인 임원의 경우 본인의 일은 일대로 있고 관리업무까지 같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이 바빴지만, 한국회사처럼 자신의 일을 부하직원에게 주고 자신이 보고만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돈을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일하는 것, 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입사한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그때 대비 2단계 정도 높은 직급에 있다. 그런데 한 단계별로 곱하기되는 일의 양이란 내가 더 받게 되는 월급의 양보다 훨씬 많았다. 예를 들어 승진시마다 월급이 10% 정도 오른다면, 일의 양은 거의 2배에서 3배 정도 오르는 느낌이다. 일도 너무 많고, 책임도 너무 많은데, 정말 자잘한 일처리까지 내가 직접하려니 미쳐버릴 것만 같다. 부하직원에게 시키고 싶지만, 이 수평적인 조직에서는 ‘부하’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그저 ‘다른’일을 하는 직원만 존재한다. 한국회사가 같은 일은 한 팀, 혹은 몇명의 팀원이 같이 하면서 가장 낮은 레벨의 직원이 먼저 일을 하고, 그 위사람 혹은 팀장이 수정 및 의견을 주는 구조라고 한다면, 외국회사는 팀으로 묶여있지만 팀원들은 각각 다른 일을 하며, 팀장은 그들의 업무에 대한 직접적인 수정보다는 전체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의 역할을 한다.


또한 더 직급이 높아지니, 더 많은 영역을 다루면서 매번 신입사원때처럼 그 영역을 깊게 연구하고 고민해서 idea를 낸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주말이나 저녁에는 이미 번아웃되어버려서 일과 관련된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어졌다. 이제 회의시간에 나의 idea를 제안하는 것은 재미있는, encouraging한 일이 아니라 큰 부담이 되어버렸다.


신입 때는 몰랐는데, 나보다 훨씬 높은 외국인 임원들은 대체 어떻게 그들의 삶을 매니지 하는 것인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상해에서 같이 일했던 미국인 임원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이 3명을 학교에 태워다주고, 아침운동을 마치고 8시 정도에 출근하면서 (그때 그 오피스에는 심지어 출퇴근시간의 기준이 없었음에도) 스타벅스 커피 벤티 사이즈를 들고 출근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야근을 하거나, 집에 가더라도 항상 밤늦은 시간까지 콜을 하거나, 메신저에 로그인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는 글로벌 워크샵을 했는데, 워크샵 후 다같이 디너를 하는 자리에서 글로벌 팀 매니저 두명이 밤 9시에 콜이 있다며, 레스토랑 구석진 테이블에 따로 떨어져서 한시간 정도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콜을 했다.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안타까워서 나는 사진을 찍어두었다. 워크샵 발표시간에는 글로벌 에이전시에서 와서 여차저차한 일을 꼭 완수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게 the reason you get paid for 라는 발언을 했다.


그 발언은 내게 우리 회사 외국인 임원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회의 중에 부사장이 말하기를, 한국 오피스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들은 일을 너무 안한다는 요지였다. 미국이었다면 인원이 필요없어지면 그만큼 해고할 수 있는데, 한국은 하던 일이 없어졌으니 월급을 받을 이유가 없는데(reason they get paid for), 한번 고용했다는 이유로 해고할 수 없다니 말이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외국, 특히 미국 쪽에서는 사람들이 일을 대하는 자세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내가 돈을 받는만큼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거나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것 같다.  우리나라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 나라가 아니라 나나 내가 아는 사람들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열심히 공부해서 회사에 들어가고 나면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가졌던 열정이나 패기, 성과를 내겠다는 자세가 굉장히 약해지는 것 같다. 이는 웬만하면 부장 정도의 직급까지는 회사 생활이 보장된다는 인식이라던지, 내 성과가 바로 내 승진이나 보상으로 직결되지 않는 보상체계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승진시 누가 먼저들어왔나를 따지고, 승진시기가 된 사람에게 고과를 밀어주는 등의 관례가 많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어차피 나는 아랫사람이고, 윗사람들은 윗사람들이 하시는 일이 있고 나는 조직의 작은 부품중에 하나이니, 그저 부품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외국의 경우 나이에 대해 서로 묻지도 않거니와 그 사람이 20대이건 30대이건 성과를 보이면 바로바로 승진을 하기 때문에, 그리고 성과를 보이지 못할 경우 언제 짤릴지 모르기 때문인지, 다들 엄청나게 성과에 매달리고 reason I get paid에 집착하는 것 같다.


미국의 경우, 성공한 사람에 대한 공통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성공한 임원의 경우 모두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나서, 아침운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잔뜩 activate된 채로 사무실에 출근해서 또 엄청난 열정으로 일을 하는 이미지. 주말이나 여유시간에는 마라톤 같은 장기적인 거창한 목표가 있는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과 파티를 즐기며 가족에게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미지. 게으름, 아무것도 하지 않기, 늘어져서 TV보기, 가만히 생각하기 같은 이미지와는 전혀 결합될 수 없는 바쁘고 정신없고 항상 사람들로 둘러쌓여있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이런 이미지는 산업화 시대부터 만들어진 일종의 신화같은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늦게까지 일하면서도 생산성과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운동과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열정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부와 행복을 거머쥐게 되는 그런 신화.

어리고 패기넘치던 시절에는 외국의 방식이 당연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 신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열심히 열정적으로 나를 개발하고 미친듯이 바쁘게 살면 멋있는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다. 그 신화가, 조선시대나 로마시대보다 못한 노예와 같은 삶으로 우리를 밀어넣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에는 테크놀로지도 전기도 없었으니, 자연의 섭리에 맞게 해가 지면 잠을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서 일을 했을 것인데, 지금은 새벽같이 일어나 불이 환히 켜진 gym에 가서 운동하고, 자정에 가까워서까지 다른 나라와 회의를 해야한다. 과연 이것이 멋있는 삶일까 아니면 멋있어보이도록 프로그래밍된 더욱 처절한 노예의 삶일까? 로마시대의 귀족들은 너무 게을러서 심지어 누워서 노예들이 먹여주는 밥을 먹었다고 하는데, 우리시대의귀족이라고 칭송받고 싶어하는 사람을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이전 노예의 삶을 더 닮은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큰 히트를 친 80년대를 회고하는 드라마에서는 평생고용시대, GDP는 더 적었지만 더 행복하고 서로 나눌 수 있었던 예전 우리의 삶이 큰 주제였다. 드라마의 전무후무한 흥행은 모두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을 방증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우리 회사는 추가로 인원 감축을 진행할 예정이며, 다른 많은 한국 대기업들도 그렇다고 한다. 일이 줄어들어서 사람을 해고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더 적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고, 그 늘어난 연봉보다 훨씬 많은 일을 시키는 구조를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어서 그런 방식이 회사에 얼마나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지 계산할 수 없고, 정치나 노동 방면에도 관심이 없어서 그런 변화가 좋은지 나쁜지 고민해 본적도 없지만, 그냥 어떤 쪽이 더 자연의 섭리에 맞고 더 행복할 것지는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 방향과는 반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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