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맘의 학원셔틀일기 1
육아휴직을 하며 세운 계획 중 글쓰기가 있었다. 기존 글을 쓰다 말다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워, 육아휴직 기간 중에는 어떤 퀄리티의 글이던지 하루에 하나는 꼭 쓴다! 라는 다짐을 해보았다. 오늘은 그 두번째 실천이다.
우리 엄마가 나를 어떻게 잘 세뇌한건지는 모르겠으나, 육아에 있어서 나의 멘토는 우리 엄마이다. 나는 자라오면서 크게 사춘기를 겪지도 않았고, 학원도 별로 다니지 않고, 공부에 대한 큰 압박이나 강요 없이도 운 좋게 목표하는 대학에 갈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기주도학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릴 때 내가 다녔던 학원은 공부에 관한 것이던, 피아노나 발레 같은 예체능 계열이던, 다 내가 원해서 다녔던 학원이었다. 그렇다보니 나는 대학 입학해서도, 입학 이후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면서도 ‘싫은데 억지로’ 무언가를 해본 적은 없다. 그렇다보니 학교 생활도 늘 충실하고 행복했던 기억 뿐이고, 크게 남는 후회는 별로 없다. 지금 회사도 돈은 그닥 많이 주지 않지만 회사의 문화나, 업무의 종류 모두 만족하며 자발적으로 행복하게 다니고 있다. 어려서 미처 하지 못해 아쉬웠던 예체능은 다 커서, 내돈내산으로 열심히 배웠고 지금도 내돈내산으로 열심히 배우고 있다. 피아노나 악기를 하나 멋드러지게 할줄 아는 수준까지 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뭐 못해도 크게 사는데 지장 없으니까..괜찮다 ㅎㅎ
나의 남편은 반대이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디자인된 루트로 걸어왔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시키는 대로 다양한 학원을 섭렵한 관계로, 막상 하면 모든 것을 나보다 잘한다. 피아노도, 테니스도, 골프도, 등등…! 대학교도 나보다 좋은 학과를 나왔고, 회사도 나보다 돈많이 주는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계속 그랬으면 좋겠기도 하고ㅋ) 그런데 그는 늘 회사를 일찍 은퇴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회사를 다니고, 매일매일 놀고만 싶어한다. 일하면서 새로운 것을 자발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별로 없다. 고등학교도 대학교 생활도 뒤돌아보면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한다.
물론 결과만 놓고 보았을때 나보다는 남편이 훨씬 더 사회적으로, 외부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내 딸이 우리 둘 중 어떤 사람의 삶을 살길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input 대비 output을 ROI로 계산한다고 했을때 내 삶이 더 ROI가 높지 않았나 싶어서이다. 그리고 그래서 과정이 더 행복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의 아이는 결과는 모르겠고 과정이, 매일매일이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교육의 유일한 목표이다.
그런데 이렇게 교육의 목표를 단 하나만 세우다 보니, 아이를 갓 낳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유치원에 보내며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회사 어린이집을 보내서 내가 잘 케어해보려던 나의 계획은 어린이집 부적응자였던 아이 덕분에 보기좋게 어긋나기 시작했고, 아이는 좁아터진 회사 어린이집 대신 널따란 놀이학교에서 안정을 찾았지만 곧 아이 놀이학교 등하원 및 이후 시간 돌봄을 도와주시던 부모님의 포기 선언으로 학기 중간에 급히 어린이집/유치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마침 그때 내가 등하원을 케어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집/유치원 중 자리가 있었던 곳이 하필 영어유치원이었다. 이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던 나의 목표에 크나큰 파란을 일으키게 될줄은 그때는 몰랐다.
아파트 내에 있던 영어유치원에 자리가 남아있었던 이유는, 뒤늦게 알게되었지만 그곳의 퀄리티가 비용대비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곳을 보내던 다른 엄마들은 하나 둘씩 근처의 다른 영어유치원으로 옮겨가게되었고, 친절하게도 나에게도 좋은 곳들을 알려주셨다. 나는 당연하게도, 영어유치원을 검색해보거나 비교분석따위 해보지 않고 자리가 있는 곳이라고 대충 아이를 밀어넣었던지라, 새롭게 눈뜨게 된 영어유치원의 세계에 놀라게 되었고 같은 돈이면 당연히 더 좋은 곳으로 보내야지 하며 또다른 영어유치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렇게 운명처럼 영어유치원 2곳을 전전하며 영어를 배우게 된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것이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라, 막상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아이가 영어를 잘하게 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욕심이 났다. 요즘 말대로 ‘오 이게 되네?’ 를 바로 경험했달까. 눈앞에서 영어로 이야기하고 영어 유튜브도 즐겁게 보는 아이를 보며 뿌듯했고 기뻤으며, 초등학교에 가서도 이 ‘돈 많이 들여 배운’ 영어를 잊지 않고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더 좋은 반에 배정되었으면 하며 영어 유치원 테스트를 보러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학원들은 다 나의 교육 철학과는 잘 맞지 않았다. P***학원은 몇개월에 한번씩 시험을 통해 아이들 반을 바꾸는 시스템이 마음에 안들었고, 매주 단어시험을 보아야했으며, 다른 학원들도 거의 다 P학원의 방식을 따라하는 N, D, C학원들 이었다.
고민하고 있던 내가 발견한 것은 D**학원이었다. 동네의 자유영혼들이 많이 간다고 들었는데 과연 커리큘럼이 자유로운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시험도 없고,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단어시험조차 없었다. 대신 책을 읽고, 단어를 활용해서 문장을 만들고, 프로젝트를 하며 토론하는 시스템이었다. 영어를 공부처럼 접하지 않고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인 것 같았으나, 막상 과제의 난이도는 초등학생에게 좀 어려울 수도 있겠고, 선생님과의 케미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또 집과의 거리가 멀고, 초등학교 1학년을 보내기에는 너무 큰 아이들 가는 학원같은 느낌이 들어서 좀 걱정이 되었다. 영어 학원 선정이 너무 피곤해서 그냥 보내지 말까…하다가 테스트를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이 학원을 좋아하는 것이다. 테스트 본 내용이 쉽거나 익숙했거나, 테스트를 보신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래 너도 역시 엄마 닮아 자유로운 영혼이구나! (공부를 엉덩이로 하긴 글렀구나!)
이렇게 하여 나는 옆 동네까지 매일 아이를 태워와서 학원에 들여보내고 너는 공부를 해라 나는 셔틀을 하고 글을 쓸테니…하는 신사임당의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매일매일 글 쓰는 시간도 확보하게 되어 좋기도 하다. 잘하든 못하든, 이런 방식으로 행복하게 즐겁게 영어를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 육아휴직의 또다른 목표인 수학 즐겁게 공부하기 프로젝트도 슬슬 시작해보고, 글로도 남겨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