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엄마인것도 팔자인 것을
팔자나 운세, 별자리 등을 조금은 믿게 되는 때가 이번주처럼 비슷한 유형의 일들이 한번에 몰아쳐올때이다. 아이 학교가 지난주까지 4교시하다 적응기간 완료로 5교시가 된 주여서 매주 오전에 그간 보기 힘들었던 멀리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쭉 잡았고, 아이 친구들이랑도 놀기로 했는데, 급 회사에서 글로벌 마케팅팀의 내 업무 매트릭스 담당자가 온다는 것이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의 구조에 변경이 생길 예정이어서 설명하러 오는 것이어서 나의 앞으로의 업무에도 영향이 큰 일이기 때문에 미팅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나 역시 휴직 중에 불러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니 미팅&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아 이번주는 사람 만나는 운기가 강한 주인가’ 라고 생각하게 되는 팔자소관을 믿는 늙다리가 바로 나다…ㅋㅋ
휴직 한달째,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너무 좋았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책도 실컷 읽고 집도 정리하고 반신욕도 하고 가까이/멀리 사는 친구들도 만나고 좋았는데, 한달이 꽉 채워져 갈 즈음 몸에 병이 났다. 몸살처럼 기력이 없더니 어느날 밤 어깨/등이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깰 정도. 하여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부항도 뜨고 물리치료도 받았다. 한의사 선생님 말이, 긴장하며 살다가 긴장이 풀어지면 그간 누적되어왔던 것들이 아픔으로 나타날수도 있다고, 그런데 계속 긴장하고 살면 더 누적되어 더 큰 병이 될수 있으니 지금 이렇게 털고 쉬고 가는 게 좋다고 했다. 애 키우랴 회사일 하랴 아플 새 없이 정신력으로 버텨왔던 것도 사실이니, 그래 이참에 마음껏 몸을 놓아주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주 스케쥴이 너무 빡세다보니, 다시 영양제와 보약과 감기약을 몸에 털어넣으며 다시 정신력과 체력을 강화하고 있는 나란 인간인 것이다…내 몸도 내 머리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어제 회사일을 하러 나갔는데, 왠걸 너무 즐거운 것이다. 휴직하며 너무 좋아서 계속 이렇게 전업맘으로 살고 싶다고 친구들, 남편에게 말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아이와 있는 행복과 다른 묘한 즐거움이 있었다. 아이와의 시간은 즐거웠지만, 아이의 숙제, 아이의 친구관계, 아이의 식사와 건강 등, 사실은 모두 다 내가 컨트롤 할수 없는 것들인데 최대한 내가 원하는 대로 해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에서 은근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일은 그에 비하면 내가 컨트롤하고, 내가 하고싶은대로 할수 있는 부분이 좀더 많다보니 즐겁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것 같다. 그리고 매일 맘룩으로 쌩얼에, 옷도 꾸안꾸 원마일 웨어만 입다가 출근한다고 화장도 머리도 옷도 신경쓰고 나가니 뭔가 싱글일 때 같은 느낌도 나고 아이나 남편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쾌감이 있었다. 휴직 한달만에 벌써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다니. 우리 딸에게 왠지 좀 미안하지만, 그게 내 딸의 팔자이려니 해야겠다.
대학교 때 여성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여성 국회의원, 기업 임원, PD, 기자 등 쟁쟁한 선배들이 나와서 여대생들에게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고 인생 이야기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 중 딱 두가지가 생각난다.
첫번째는, 이런 위치에 오르리라고 대학생때부터 목표를 정하고 성취해왔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모두가 의외로 전혀 계획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던 점이었다. 그냥 주어진 삶을, 주어진 상황을 열심히 살아내다보니 이렇게 되었더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워킹맘으로서 아이에게 미안하거나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그 당시 멘토였고 이후 개그콘서트로 유명해지신 서수님 피디님 왈, “그것도 걔 팔자라고 생각해요.” 였다.
이 두가지는 17년 전 들었을 때부터 내 뇌리에 콕 박혀있다. 일에서나 삶에서 위기가 올때나 마음이 힘들때면 이 두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 인생은 내가 가고자 하는 대로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 어떻게든 되는 것이고, 나의 아이를 만난 것도 아이가 나를 만난 것도 팔자, 즉 주어진 환경인 것이다. 우리는 이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보고자 다같이 아등바등하는 필부필부인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행복하게 살다보면 행복한 인생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