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도 틀지 않고 지낸 게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네요.
이 여름 언제 가나 더워도 너무 덥다고 힘들었는데 진짜 가나 봅니다.
며칠 전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 크게 상처를 입은 일이 있었어요.
블로그에 가끔 부부싸움 얘기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쓰고 나면 후련하기보다 속이 쓰렸습니다.
행복한 것만 자랑해도 모자란 세상에 굳이 싸우고 상처받은 일을 드러낸다는 게 용기가 아니라 궁상맞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진짜 안 쓰려고 참았어요. 성격 급한 건 알겠는데 못 참고 쓰는 거 보니 제 인내심은 양은 냄비인가 봅니다.
싸움의 원인은 저였어요. 학교 봉사, 독서모임 등으로 집을 자주 비우니 남편이 심통이 난 거예요.
'대체 당신의 포지션이 뭐야? 가정주부야, 책 선생님이야. 우리 앞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10년이야. 우리 노후는 생각 안 하니?'
네. 결국 돈과 일이에요.
남편은 자수성가했고 아내가 책 읽고 글 쓰는 걸 결사 반대하는 사람은 아닌데 돈 되는 일을 하길 바라요.
책 읽으면 성공한다던데 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은 없느냐, 언제까지 책만 읽을 거냐,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냐,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냐, 부동산 경매나 배웠으면 좋겠다, 투자에 관심 좀 가져봐라 등등 남편이 하는 말은 전부 저를 찌르는 말 뿐이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것들과 저라는 한 사람이 깡그리 부정당한 느낌이었어요.
'당신한테 어떤 것으로도 능력 없는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이 말 한마디를 하고 거실에 나와 밀린 집안일을 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고요. 초라해서요.
어찌 보면 저도 절실하게 노력하지 않고 떨어지는 감을 기다리며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남들이 하는 것에 이상적인 부분만 쫓으며 망각의 세계에 살았던 모양이에요.
책상에 쌓여가는 책이 전부 돈이라고 생각하면 남편한테 미안해요. 한 푼도 안 버는 사람이 책만 사고 산다고 다 읽지도 않으니 말이에요. 안 읽는 책을 당근에도 팔아봤는데 한두 권 팔릴 뿐 크게 소득이 없었어요.
거꾸로 남편한테 큰소리 친 적도 있지요. 몇십만 원 자리 옷을 사지도 않고 여행을 자주 가지도 않았고 시답잖은 얘기 나누느라 카페에서 식당에서 시간
보내다 오지도 않았으니까요.
외벌이 가정에서 남편이 가지는 위기의식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내가 취미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존중해 줄 수 없는 건지 그 부분에서 서운하고 속이 상한 것 같아요.
그날 이후 남편과 서먹한 사이로 지내고 있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라고 하면 좋은데 우린 또 그런 사람도 못되요. 참 못났어요. 나나 남편이나.
이번엔 진지하게 제 자신에 대해 들여다봐야겠어요. 경제적인 부분을 내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남편한테도 얘기하고요.
돈 버는 일을 하자면 저는 책, 글 관련해서 수입을 얻고 싶거든요. 이 부분에 대한 것도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지 살펴봐야겠죠. 실패할 것을 두려워 말고 작게 다시 시작할 용기도 얻고요.
남편이 바라는 일은 아니어도 나는 이 길 밖에 없다고 어필해 봐야죠. 남편이 져주길 바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