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키우기가 네 살보다 어려운 썰 푼다
오후 네시 무렵. 문자 수신에 담임 선생님 이름이 떴다. 내일 공개 수업 때문에 학부모들 안내 사항을 보내셨나? 아무렇지 않게 문자 수신함을 열었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담임입니다.
어제 타 학급 학생을 대상으로 싫어하는 별명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놀린 일이 있어서 생활지도카드 1항 발급했습니다.
가정에서도 1:다수의 구성으로 다시는 다른 학생을
놀리지 않도록 지도 부탁드립니다.
연이어 한건이 더 왔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담임입니다.
오늘 한문 교과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시간에
sns사용 또는 핸드폰으로 웃긴 사진을 주고받으며 장난친 일이
적발되어 생활지도카드 1항을 발급했습니다.
가정에서도 핸드폰 사용에 대해 지도 부탁드립니다.
총 2건의 안 좋은 내용의 문자였다.
딸이 학교에서 드디어 사고(?)를 쳤다. 작년 9명의 친구들에게 손절당하는 일을 겪고 계속해서 친구 관계에 집중하느라 2학년때는 학교만 잘 다니면 바랄 게 없었다. 내가 싫은 것은 남들도 싫은 일이니 함부로 행동하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평소에도 교육을 시키고 있었는데 대체 이건 무슨 일이람.
공교육 멈춤의 날 다음일에 일어난 일이라 담임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답신을 했다.
'종례 이후 괜찮으시면 통화 가능하신가요?'
담임 선생님 전화가 오기 전 아이는 수업이 끝나 집에 왔고 엄마는 다 알고 있을 거란 예상하에 이미 겁을 잔뜩 먹고 들어왔다. 나한테 좋은 얘기 들을 리 없는 걸 아니까.
아이 얘기를 듣던 중 담임 선생님 전화가 걸려왔다. 자초지종을 물었다. 친구 별명을 부르며 놀린 일에 대한 것은 학교폭력사안으로 갈 수 있는 중대한 사항이므로 알아야 했다. 딸을 포함해 열 명의 아이들이 친구가 듣기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며 여러 차례 놀렸다고 했다. 남자친구였고 여러 명의 여자친구들이 자신을 향해 부르던 별명에 모욕감을 받은 것이다. 남학생 반의 담임 선생님께 알렸고 딸은 그 친구와 직접 연관이 없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도 공범이기에 다 같이 생활지도카드를 받았다고 했다.
한문시간에 일어난 일도 딸의 잘못이 맞다. 고사성어 찾는 시간이었고 다 끝난 뒤엔 휴대폰 사용을 안 했어야 했다. 딸은 같이 아이폰 쓰는 친구들에게 sns에서 찾은 웃긴 짤 사진들을 공유해 봤고 반장 아이가 딸을 적발했다고 한다. 고요한 수업 시간에 '야, 너 왜 핸드폰으로 딴 거 해.'라고 했고 자신이 한 일이 잘 못된 건 맞기 때문에 인정은 하지만 반장이 콕 집어 자기를 언급한 것과 수업 종료 후 담임 선생님께 찾아가 재 고발 한 것이 억울하단다.
내 딸이어서 감싸고만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잘못한 것은 분명했고 한문 선생님이 생활지도카드를 주었어도 할 말 없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수업 중 딴짓은 선생님을 무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혼낼 것은 혼내야 한다.
딸은 자기 잘못은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반장의 태도에 억울함이 있었다. 굳이 자기를 콕 집어 말을 했어야만 했는지, 담임 선생님한테 고발 후 돌아와 'oo이 아마 2항 받을걸? 누가 딴짓 하래?' 등의 말을 해 진짜 반장으로서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 게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반장의 역할이 반 아이들 행동 하나하나 감시하고 이르는 일을 맡는 것인지, 권력 남용 아니냐며 반장 친구에게 몹시 서운함을 보였다.
이럴 때 엄마인 나는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하나 어렵다. 잘못은 인정하되 반장인 친구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이였고 언제부턴가 자신을 곱게 보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해하던 찰나였다. 1학기에도 오해가 생긴 일이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서로 이해하기로 했고 2학기 개학 후엔 별 일 없이 지내왔다.
반장 아이가 딸에게 악의적인 감정을 갖고 그러지 않았을 거다, 크게 해석해서 오해를 쌓지 말자 곤 했지만 엄마로서도 딸이 그런 대우를 받았다는 게 솔직히 좋을 리 없다. 팔이 왜 안으로 굽겠는가.
담임선생님한테 하는 말 다르고 교실로 돌아와 친구들 앞에서 하는 말 다르다고 하니 이 점은 선생님도 참고사항으로 알아만 주셨으면 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보낸 후에 후회했다. 안 그래도 교사 권위니 권리니 하며 악성 학부모 민원으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뉴스가 계속 나오는 중에 내가 그 악성민원인이 돼버린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렇게 낙인찍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애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선생님이 잘 못 생각하신 거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니 한 번만 봐달라고 조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찝찝한지 모르겠다.
학원을 데려다주려고 차에 태워 가면서 반장 아이와 진짜 적이 돼서 등 돌릴게 아니라면 오해를 풀어보라고 조언했다. 마치 나를 저격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느껴져서 서운했다, 우리 그런 사이 아니지 않으냐, 잘 지내보자라고 말이다. 그리고 딸도 앞으로 더욱 행동 조심하고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성숙한 눈과 생각을 키워볼 것을 당부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가장 좋은 거라는 말은 진짜가 아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만져 볼 수도 없고 얘기 나눠볼 수 도 없는데 대체 뭐가 좋은가. 아마 커갈수록 가르쳐야 할 게 많고 부모 생각대로 따라와만 주면 좋은데 하나의 독립된 자아이니 그로서 존중하고 옳은 성장을 하게 도와줘야 하는 '나 스스로'가 버거워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
딸은 어제와 오늘 사고 친 걸로 한 뼘 자랐을 거라고 믿는다. 아직 친구에 대한 서운함이 남아 있겠지만 그 부분도 현명하게 잘 대처하길 바란다. 내 조언 그대로 하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 나가길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엄마인 나도 아이를 키우며 올바른 어른으로 커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워 주는 일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