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야'
우린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기억 속 이모는 밝고 상냥한 미소 바이러스 전파자였다. 도 레 미 파 솔솔 솔 솔 톤의 목소리로 우리 이름을 차례로 부를 때면 언제나 부엌에 서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엄마와 비교가 됐다.
이모는 서울에서 피부관리샵을 운영했다. 지금은 울 쎄라, 써마지, 튠 페이스라는 이름으로 고주파 기계를 이용하지만 당시엔 경락마사지가 최고의 기술이었다.
진줏빛 크림을 손에 묻히던 이모와
시뻘건 김치 국물을 묻히던 엄마의 모습은 양귀자 소설 모순에서 안진진의 엄마와 그의 쌍둥이 언니인 이모를 연상케 한다.
진줏빛 크림, 솔 톤 목소리, 미소 전파자였던 이모는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는 중이다.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정리할 줄 모른다.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 카드값을 몇 달 안내서 연체가 되어있는지도 몰랐다.
재산세도 이년이나 안 냈고 집에 시켜 먹던 우윳값, 외상으로 먹은 치킨값 등등 이모가 살아온 흔적을 한꺼번에 마주하느라 올해의 절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이모가 엉망진창으로 살았다며 달가워하지 않고 기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당신의 삶을 헤집어 놓는다는 생각이 강했다.
우린 얘기했다.
그저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생 천천히 서로에게 물들어가면 어떻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