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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기보다 쉬운 글쓰기

by 책사랑꾼 책밥

점심을 먹던 중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책을 그렇게 오래 읽었으면 뭔가 결과물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남편이 말하는 '결과물'은 책 출간을 말하고 남들은 다 내는데 나는 왜 안 하냐는 질책처럼 들린다.

실제 책을 내고 싶던 적도 있었고 투고란 것도 해봤고 남의 글을 고쳐주는 일에 손을 댄 적도 있었지만 정작 내 이름만 적힌 책은 없다.

꼭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책 읽는 사람들은 전부 책을 내야 되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나를 그런 궁지에 몰아넣는 이유는 남편이 자기 계발서를 읽기 시작한 이유밖에 없다고 본다.


책 두 권의 표지를 카카오톡으로 보내고는 아는 책인지, 읽어봤는지 물었다. 자기 계발서 놓은 지도 오래됐고 모르는 책이기도 했는데 남편은 사실 평소 책을 안 읽는다. 글자가 잘 안 들어고 소리 내어 읽을 때도 끊어 읽기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송사무장이라고 나이트클럽 웨이터에서 부동산경매로 성공한 사업가가 있는데 그의 책을 읽고 싶다고 샀던 엑시트라는 책은 일 년이 넘도록 절반도 안 읽었다.(흉보려는 건 아님)

그런 그가 갑자기 자기 계발서 두 권을 읽어야겠다며 쿠팡에서 바로 구입하는 스피드까지 이게 무슨 일인가.

첫날엔 서문을 펼치더니 한 장 읽고 힘들다고 했다. 다음날엔 열 페이지나 읽었다며 형광펜으로 읽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꽂아두고 나한테 보여주며 인증을 했다. 한 사람의 리더가 여러 명을 리드하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해 말하는 책이라며 이틀째에 책 사랑이 달아올라 보인다.


아이들은 아빠가 책 읽는 걸 평생 네 번 봤다고 했다. 이건 분명 비웃음이었다. 아빠가 자격증 공부할 때랑 약초 책 구경할 때라고 했다. 그래도 한 번도 못 본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무튼 남편은 나에게 책을 쓰길 주문하고 있다. 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려니 두렵고 떨린다. 브런치에 썼던 글을 추려서 투고해봐야 할까? 다시 책 쓰는 루틴을 위해 공부 모드에 들어가야 될까 생각이 많아진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책을 읽다가 그의 글에서 재밌는 책제목을 봤다.

'밥 짓기보다 쉬운 글쓰기'다. 이거 내가 닉네임으로 책밥을 지었을 때 생각했던 건데 이미 앞서간 사람이 있었다. 알라딘에서 찾으니까 책은 절판되었고 중고가격은 십 만원가량한다. 대단한 책인 게 분명하다. 나는 지금 글쓰기보다 밥짓기기 훨씬 쉽지만 어디 한 번 해보고 싶다. 뭐가 더 쉬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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