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햅번은 티파니에서 아침이지만 나는 병실...
입원 수속에는 결정해야 될 게 많다. 우선 병실이다. 1인실,2인실,3인실,4인실 중에서 골라야 했고 중학교1학년이지만 소아 병동에는 아기들이 많을게 예상돼서 성인 입원실로 부탁했으나 자리가 없었다. 우선 4인실로 소아 병동에 있다가 자리가 나면 옮기기로 하고 왔더니 할머님 한분이 계셨고 소아병동이긴 하지만 성인 병실이 섞여있다고 한다. 우리한텐 다행이다.
더 좋은 건 4인실이지만 할머님은 내일 퇴원 예정이고 우리가 들어온 후로 더는 환자가 들어올 예정이 없다고 했다. 1인실 같은 4인실을 쓰게 됐다.
입원 첫날이면서 수술 첫날이라 긴장과 공포를 병원 침대에 맡기는 일은 적응이 쉽지않다. 병실에 감도는 공기와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지 않은 날이라 형광등 불빛에마저 빨리 적응해야 한다.
그 적응은 할머님의 코골이가 압권이었다.
벽에 붙인 보호자 침대에 옆으로 돌아 누워 자는 것도 힘든데 적막한 병실과 병동 복도를 울리는 코골이는 잠을 잔 건지 보초를 선 건지 모르게 했다. 수시로 열체크하고 혈압 재러 오는 간호사 인기척에 눈을 떴다가 잠이 들면 할머니 코골이와 잠꼬대가 쌍으로 공격해 왔다.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른쪽으로 돌렸다 똑바로 누워도 봤다가 온갖 자세를 취하며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새 새벽 네시다. 집에서 킹 사이즈 침대에 푹신하게 자고 있을 남편이 미워졌다.
딸의 맹장 수술은 나를 다시 아기 키우던 엄마로 돌아가게 했다. 소변량을 일일이 기록해야 돼서 다 큰 애가 오줌이 마렵다하면 화장실에 쫓아 들어가 오줌통에 받아서 몇 cc인지 적어야한다. 수술 후 첫 소변이 나왔을 때 아기 낳고 돌아와 산후 도우미 손에서 떠난 뒤 내 손으로 직접 아기 똥 기저귀를 갈면서 '아이 이뻐. 우리 아기 황금똥이네'하고 좋아했던 그때로 말이다. 다 큰애 오줌을 받는 건 엄마여도 곤욕스러운 일이었지만 빨리 회복되고 있는 신호 같아서 황금똥을 본 엄마가 아닐 수 없었다.
평소엔 모아둔 글감을 쳐다도 안 보던 난데 이런 특수한 상황이 생기니 글을 안 쓸 수가 없다. 지독한 관심병 같다고나 할까.
코골이 공격 할머니가 퇴원하고 드디어 1인실 같은 4인실을 쓰게 되었는데 빈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건 도덕성에 어긋나는 일이라 원래 내 자리인 좁은 보호자 간이침대에 처박혀 있다.
문지혁 작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열심히 읽는 중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안 쓸 수 없는 글감인 보호자 일지를 놓칠 수 없지 않은가.
낮잠에 들어간 딸이 깨어나면 물을 마시게 하고 오줌통 들고 화장실로 가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