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글자보단 사람에 관심이 많고 관계에 집중하는 타입이다. 공부 욕심보다 친구 욕심이 큰 친구다. 평생 친구 하나 두기를 일생의 목표로 삼았는지 나를 따르던지, 따라가던지 둘 중 하나였다.
공부도 사람도 과유불급이 적용될까?
공부해서 남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람은 사귀다 보면 남 주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딸은 친구에게 내쳐진 경험이 있다. 왕따. 바로 이것이다.
무리에서 가장 위협적인 역할을 했던 아이는 공교롭게도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의 올케 딸이었다. 일이 벌어졌을 때 아이들끼리의 일이라 오해가 잘 풀리길 바라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딸 혼자 아홉 명을 상대할 줄 전혀 몰랐다. 담임 선생님께 조용히 상담을 요청했고 이미 알고 있었으며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나빠진 것 같으니 이제 선생님이 개입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도움을 청했고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될 줄 알았다.
감정적으로 나서지 않고 최대한 딸의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라며 아이들의 태도가 어떤지 담임 선생님과 학생부장선생님께 처리 과정을 간간이 전해 들으며 버텼다. 심하게는 학교폭력으로 신고해 정식 절차를 밟으려고도 했지만 신고 후 과정 자체가 하루 이틀 안에 끝나게 되어 있지 않은 데다 피해 사실을 여러 번 반복해 사실 관계 조사에서 글로 적거나 말을 해야 하기에 딸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생각에 반성 태도를 보이면 끝낼 참이었다.
한 반에 여학생 수가 열다섯 명 정도였는데 그중 아홉 명이 한 무리이고 내 딸을 왕따 시켰고 나머지 다섯 명은 그들끼리 각자의 무리였다. 철저하게 딸은 혼자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공개수업날의 모습이.
체육 수업이었는데 짝을 이뤄 탁구 치는 시간이었다. 복도에서 교실을 바라보는데 교실 구석에 딸은 팔을 앞으로 모으고 어딘가 응시하는 듯 하나 뭘 보고 있는지도 모르게 혼자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내가 딸의 엄마라는 걸 눈치챈 아이들은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수업 중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데다 엄마가 밖에 있다는 걸 딸이 알면 곤란해질까 봐 얼른 건물을 빠져나왔고 마음 같아선 무리의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서 딸아이 앞에 무릎 꿇려 사과시키고 싶을 뿐이었다.
이때의 상처 때문인지 더욱 사람 관계에 집착하느라 중학교 3년 내내 건강한 친구 관계를 이어가지 못했고 그렇게 고등학생이 됐다.
딸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 주려고 대신 내가 친구가 됐다. 시험 끝나면 다른 애들은 우르르 몰려서 마라탕 먹고 코인 노래방, 쇼핑하러 갈 때 나는 딸이랑 영화 보고 마라탕도 먹었다. 성적이 나빠서 속이 상해도 정신적 에너지가 학습을 방해했다고 위로하며 건강하게 학교만 다니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마음이 가장 많이 아플 무렵에 한두 번 결석한 거 말곤 지각 한번 안 하고 졸업했다.
딸은 관계를 이어 가는 일에 서툴렀지만 모든 면에 성실한 친구다. 약속 시간을 어기지 않고, 맡은 일엔 끝까지 책임을 진다. 모둠 활동에서도 친구들은 쉽고 편한 일을 선택할 때 시간이 걸리는 일은 꼭 자기 마 도맡아 했다. 덕분에 지금도 ppt 만드는 실력이 늘어 수행평가에서 늘 만점이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학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마음 나눌 친구가 안 생길까 봐 불안에 떨던 모습이 눈에 아른하다. 뜻하지 않게 벌어진 따돌림으로 딸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 주려고 미술 학원도 등록시키고 체험 학습날엔 단둘이 바다로 놀러 간 일도 있었다. 가끔은 잘못을 저지른 친구들을 제대로 벌을 줄걸 그랬나 후회도 많았다. 한 번뿐인 중학 시절의 추억을 상처로 기억하게 한 것 때문이다.
현장 학습날 버스에서 심한 모욕감으로 반 아이들과 함께 가지 못하고 혼자 내려서 데리고 곧바로 왜목마을에 갔던 사진이다.
'야! 이 나쁜 년들아!!!!!!'소리 질러보라고 했더니
그럼 똑같은 사람 된다고 속으로 울음 삼키던 모습에 나 역시 속으로 펑펑 울었던 날이다.
기억은 남았지만 지금 성숙한 친구들과의 돈독한 우정을 쌓아서 나쁜 기억은 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앞으로 성인의 나이가 되려면 두 해 남았다. '반면교사'라고 해도 될까? 대한민국 현실에서 입시의 중요한 시기를 겪고 있지만 공부보단 사람이 전부다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는 딸이
앞으로 세상의 중심에서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고 잘 버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무탈하게. 지금 내가 바랄 수 있는 게 그것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