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인데도 아직은 엄마한테 학교에서 있던 일, 친구들 얘길 종알거려 주어 좋다마는
끝도 없이 쏟아내는 불평불만을 받아주기 힘들 때가 있다.
딸아이는 현재 중3이다. 1학년 2학기 시작하자마자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아홉 명이 자신을 한꺼번에 거리를 둔다며 힘들어한 일이 있었다. 잠깐 지나가는 일이겠거니 가볍게 생각했는데 그 친구들 중 누군가를 딸아이가 험담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인지 진실인지 가려야겠다는 생각에 담임 선생님을 통해 진상 파악을 요청했다. 아홉 명 중 한 친구에게 딸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자길 멀리하니까 기분이 나쁘다는 말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게 험담으로 둔갑한 것이다.
'야, oo이가 너네 싫다고 욕하던데?'로 와전된거였다.
교내 상장을 한 번도 타지 못한 딸이 모범상을 받은 친구에게 부럽다, 좋겠다며 푸념 섞인 말을 했을 때
'너도 좀 열심히 하지 그랬니'라며 얄밉게 말한 친구가 있었다. 당시 나한테 말을 전하던 딸의 속상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학년때도 이벤트가 있었다.
아픔을 겪은 후에 신중하게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친해진 친구들이라 다를 거라고 안심했다.
중학교2학년부터 첫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이 끝나고 친구와 놀러 가려고 계획을 했다가 친구가 엄마와 통화할 때 엄마의 음성을 듣고 딸이 기분이 상해서 돌아왔었다.
'A너 엄마가 공부 잘하는 애들이랑 어울리라고 하지 않았니? 놀지 말고 그냥 집으로 와.'
친구의 전화기 밖으로 흘러나온 음성은 딸의 자존심을 짓밟았고 성적이 좋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할 말도 없어서 할 수 없이 헤어졌다.
그 뒤로 친구는 자신을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힘들어했다. 그때마다 다독이며 더는 마음 찢기는 일 없길 바라왔다.
중학교 마지막인 올해에는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조용히 지내며 성적 올리는데 에너지만 쏟아주면 좋으련만 이번엔 체육대회로 딸의 불평이 는다.
2인3각 경기에 출전하는데 실력이 형편없다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나 보다. 단체 줄넘기에서는 실컷 연습했는데 대회 당일에 너무 못해서 빼야겠다며 담임 선생님이 물으면 아파서 빠진 거라고 얘기하란 말까지 들었단다.
대회날이라 따져 묻다간 분위기 싸해지니 참았다지만 자기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뒤에서 불평하는 모습이 엄마인 나로선 속상하기도 했고 답답해 보였다.
끊이지 않는 불만릴레이에 지친다. 엄마지만
자식의 이야기를 모두 수용하긴 어렵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닌지 자책하던 때도 있었는데 우선 내 감정이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이것 또한 나의 감정 트라우마인지 모른다.
내가 딸아이 나이였을 때 불편한 일들을 모두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엄마는 심성이 착하지만 다정한 편은 아니었다.
들어주는 척은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은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면 포기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다. 포기를 먼저 익힌 탓인지
딸에게 지혜로운 엄마로 다가가는 법을 모르겠다.
힘들었겠다, 고민이겠다는 말로 다독여주지 않은 게 지금에서야 후회된다.
그 친구들 못됐다고 같이 욕을 하다가도 곧바로 이성적으로 돌아서서 이유가 있었을 거다, 너도 잘못한 게 없는지 되돌아보라며 일관되지 않은 나를 딸은 서운하게 받아들인다.
가까워졌다가도 한순간에 멀어지는 나와 딸의 관계는 내 엄마와 나의 모습과도 아주 닮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겁고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