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주부 16년 차. 고3 때 취업해 총 11년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전업 주부 생활만 하다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5개월 되었다.
오후에 3-4시간 정도만 일하는 데다 시급도 내 입장에선 꽤나 쏠쏠했다. 커피 두 잔 마실 수 있는 금액이지만 아이들 사교육비와 치솟는 물가, 남편 수입에만 의존하며 살았던 나와의 이별 연습을 위한 일이라고 해두자.
집에서 25분 거리에 독서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동안 틈틈이 민간 자격증을 따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와 글쓰기 관련해 '글쓰기 지도사 1급'이랑 아르카북스 책방과 인연으로 했었던 '책사 꾸모(책을 사랑하는 꾸러기들의 모임)'온라인 독서모임을 이력서 경력란에 자신 있게 적었고 통했다.
사실 이력서 지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책을 원래부터 좋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오래 독서모임에 참여, 운영을 하면서 내 삶의 영원한 동반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인생을 산다면 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글쓰기지도사, 토론디베이트, 학습코칭등 교육을 들으며 자격을 취득했다. 언젠가 책방을 하게 된다면 맛난 커피도 내려야 하니까 바리스타 2급도 땄다. 아이들을 직접 지도해 본 경험이 없어서 매번 탈락의 쓴 맛을 봤었다.
운이 좋게 나를 받아준 학원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프랜차이즈 독서학원이다. 수강 학생들 수가 적어서 일하는 시간도 당장은 짧았고 애당초 경험을 쌓으려 시작한 일이어서 만족도는 최고였다. 아이들이 읽을 책을 고르고 그 책을 읽은 아이들과 교감하며 삐뚤빼뚤 쓴 문장을 첨삭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교실 청소도 하고 초등학교 앞에 나가 전단지 홍보도 했다. 출근하기 위해 화장을 신경 쓰고 매일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퇴근 후엔 저녁을 준비하는 워킹맘의 일상을 시작했다.
이력서 내고 면접 보자는 연락이 안 오길래 이번에도 내 경력은 써먹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아직 더 공부하라는 뜻이구나 하고 말이다. 면접에서
'저는 책을 아주 좋아합니다. 성인들 대상으로 독서모임 경험이 많다 보니 아이들은 조금 긴장되긴 합니다만 프로그램을 잘 익히고 책임감 있게 수업을 끌어 갈 자신이 있습니다.' 라며
'나 지금 떨고 있니' 무릎을 딱 붙이고 긴장한 자세로 표정은 최대한 여유로운 척하며 내가 마음에 들길 바라는 눈빛을 보였다.
원장님도 선생님이 급했는지 바로 출근할 수 있는지 묻더니 주말을 지나고 계약서를 썼고 전임 선생님한테 인수인계를 속전속결받고 수업에 곧장 투입됐다. 괜히 할 수 있다고 한 건 아닌가, 내 역량이 되는 게 맞는 걸까 또 자기 검열이 시작됐지만 아제 더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 나이여서 용기를 내봤다.
남편은 언제 학원 차릴 수 있냐고 벌써 김칫국을 마시고 있지만 커피 두 잔 값의 시급 강사인 지금의 내가 아직은 좋다. 갑자기 학생이 결석하는 날엔 수업이 취소되어 그날은 돈을 못 버는 날이어도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것과 독서 학원 강사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생겼다는 점. 이것으로도 지금은 충분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