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지난 삶의 방식을 완전히 파괴해 나갔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나는 나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 하나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습관'이라는 삶의 엔진이었다.
습관의 힘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꾸준하게 내 삶에 필요한 자양분을 채워주고 부족한 것을 저절로 메워 주었으며 강점은 더욱 강하게 만들고 약점은 보안해 주었다.
- 조신영 <성공하는 한국인의 7가지 습관> 중에서
이 저서는 1년에 한번 이상은 읽는 저서입니다. 그만큼 저에게 습관이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주었고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강한 동기부여를 준 저서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 안에 있는 내용, 즉 텍스트 읽기에 바빴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저자의 시각으로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의 시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읽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책읽기가 전부다>이 저자이신 송재환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독서삼독에 대해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독서 삼독
1. 글 읽기, 책의 내용 이해
2. 저자 읽기, 책을 쓴 사람 생각
3. 자기 자신 읽기, 스스로 성찰
처음에 읽을 때는 그저 지나쳤던 조신영 작가님의 변곡점이 어느날 눈에 띄었습니다.
1년전부터 시작한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 글쓴이의 변곡점이 되는 부분에 더욱 촛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이렇다한 확신이 없었을 때였지만 작은 느낌은 있었기에... 새벽 시간에 대한 깊이있는 뜨거움이 있었기에...
그때 만난 조신영 작가의 변곡점, 즉 새벽 4시 기상 시간은 저를 더욱 설레이게 만들었습니다. 그 뒤 3년동안 꾸준히 지켜온 그 힘으로 지금의 작가님이 있게한 그힘은 결국 습관이라는 큰 선물이 주어졌다는 고백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강하게 다가온 것이 꾸준한 3년이라는 것입니다. 3년이란 말을 자주 볼 수 있었던 책들은 육아서에서 많이 나옵니다. 결정적 시기라는 말로써 3세~6세가 되기전까지 아이의 대부분의 발달이 형성된다고 하여 최소 3년은 부모가 직접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결정적 시기는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이미 형성이 다 되었다고 하는 어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3년간 내가 어떤 일에 미처본 적이 있었던가!'
변화를 겪은 수많은 위인, 성공자의 삶을 보면 어느 변곡점으로 인해 수년간은 '결정적 시기'를 제대로 겪어냅니다. 가슴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늘 '결정적 시기'를 맞이하는 것처럼 매일 꾸준히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곤 합니다.
지금 삶이 힘들고 지친다 싶으면 지금부터라도 딱 3년간 제대로 '결정적 시기'를 맞이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육아가 힘들면 제대로 3년만!
교육이 힘들면 제대로 3년만!
무료한 일상에 힘들면 제대로 3년만!
제대로 3년만 잘 보내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이 결정적 시기라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인생사에 있어서 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제 미라클모닝을 시작한지 1년이 되어 갑니다. 1년만해도 예전과 다른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데 3년쯤 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할지 기대가 됩니다.
저의 비전이 하나 있다면 3년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90세까지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신 피터 드러커 처럼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전성기는 60세~90세까지 30년간 이었다.
남들은 퇴직하는 나이에 전성기라고 고백하다니! 정말 이런 삶은 어떤 삶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집니다. 저런 고백을 저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60세가 되려면 아직 20년은 남았으니 그때까지 내공을 깊이 쌓고 싶습니다.
피터 드러커가 매일 매일을 결정적 시기로 살게 된 이유를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 2>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피터 드러커 이야기
피터 드러커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빈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면제품 수출 회사에 견습생으로 입사했다. 당시 그는 열여덟 살도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함부르크 대학에 등록했지만, 학교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견습생 일에 더 몰두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페라를 관람했다. 함부르크 오페라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유명했다. 견습생이었기에 돈은 별로 없었지만 다행히 대학생은 오페라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개막 한 시간 전에 극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막이 오르기 10분 전까지도 팔리지 않은 제일 값싼 좌석이 대학생에게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페라를 관람하던 어느 날, 피터 드러커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았다. 베르디가 1893년에 작곡한 최후의 오페라 <폴스타프> 였다. 지금은 베르디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작품중 하나지만 그 당시에는 잘 연주되지 않던 곡이었다. 가수들도 청중들도 모두 그 곡을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러커는 <폴스타프>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날 그가 느꼈던 감동은 수십 년 후까지 생생하게 이어졌다.
<폴스타프>를 관람한 후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본 그는 깜짝 놀랐다. 그토록 유쾌하면서 인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이 여든 살의 노인이라! 열여덟 살이었던 그는 여든 살이라는 나이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당시 평균 수명은 쉰 살 정도였기에 여든 살은 흔한 나이가 아니었다. 그는 베르디가 쓴 글도 읽었다. 누군가로부터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유명인이 된 사람이, 엄청나게 벅찬 주제를 가지고 더구나 그 나이에 왜 굳이 힘든 오페라 작곡을 계속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베르디는 이렇게 썼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베르디의 이 말을 평생 잊지 않았다. 베르디는 열여덟 살에 이미 뛰어난 음악가 였지만 피터 드러커는 장차 무엇이 될지 생각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젊은이였다. 성숙하지 못한 풋내기였고 나약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드러커는 자신에게 어떤 소질이 있는지,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때 그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베르디의 교훈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나이를 더 먹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살아가는 동안 완벽함은 언제나 자신을 피해갈 테지만, 자신은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아흔다섯 살을 일기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왕성하게 집필했다. 사람들에게서 "저술한 책 중에서 어느 책을 최고로 꼽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다음에 나올 책이지요."
그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베르디가 여든이라는 나이에도 늘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오페라를 작곡했던 심정으로, 피터 드러커 역시 자신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삶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앞으로 나올 책들이 과거에 나왔던 책들보다 더 나을 것이고, 더 중요한 책으로 읽힐 것이며, 그리고 조금이나마 더 완벽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나이를 넘어선 피터 드러커의 결정적 시기는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계속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더욱 본받아 훗날 위와 같은 그의 고백처럼 살았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