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에 살며 홍콩을 짝사랑하는 여자의 홍콩 부띠크호텔 탐방기
아, 사랑하는 홍콩
해외 직구가 지금처럼 성행하지 않던, 그리고 홍콩의 환율이 120원을 약간 웃돌던 10년 전 호시절. 대학에 막 들어간 나에게 홍콩의 여름&겨울 빅세일 기간은 정말이지 별천지였다. (LANDMARK에서 마크제이콥스 컬렉션 슈즈를 80% 할인된 17만원에 구입해 한껏 신났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에야 아무리 홍콩이 세일을 한다 해도 가격 메리트와 다양성 측면에서 미국 직구와 경쟁이 안되고, 환율조차 140원을 훌쩍 넘은 지 오래. 하지만 이런 '쇼핑 메리트'가 사라졌다고 해도 지금까지 홍콩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도시이다. 나도 원체 홍콩을 좋아했던 터라 대학 시절 교환학생도 미국, 유럽 대신 홍콩 소재의 한 대학교로 지원을 했고 '여행이나 화려하지 그 좁고 빡빡한 곳에서 실제로 살아봐라'라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살면 살 수록 홍콩이 좋았다.
매일이 꺄르르 행복하던 교환학생 시절, 친구들과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홍콩의 반짝이는 야경을 내려다보며 '나중에 저 꼭 홍콩에 살게 해 주세요'하고 빌었던 나의 근본 없는 소원이 하늘 끝에 어설프게 닿긴 했는지, 10년 후인 현재 나는 홍콩에서 한 발 미끄러진 대만 타이페이에 살고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타이페이에서 홍콩까지 비행시간은 약 1시간 50분. 순수 비행시간은 한 시간 반이 채 안되며 국제선이 무색하게 기내식도 밥 대신 빵이다. 또 놀랍게도 '홍콩-타이페이'는 국제선 기준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승객수가 많은' 비행 노선으로 꼽힌다는 사실. 내 소원대로 홍콩에 안착하지는 못했지만 이만한 거리면 결혼해서 홍콩 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지.
하지만 막상 결혼해서 타이페이에 살다 보니, '너무 가까워 언제든 갈 수 있잖아'라며 홍콩은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잠잠했던 나의 홍콩 열병을 깨운 것은 어느 날 인테리어 잡지에서 무심코 본 "The Fleming Hong Kong"의 사진. 새로운 호텔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에 막대한 지분을 차지하는 나에게, 막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로이 오픈한 이 부띠크 호텔에는 식상하지 않은 '한 끗'이 있어 보였고 그 호기심으로 나는 오랜만에 홍콩행 비행기표를 구입하게 된다. (타이페이-홍콩행 비행기는 매일 50분 간격으로 아주 촘촘히 있으며 가격은 성수기에도 20만원 중반을 넘지 않는다.)
"The Fleming Hong Kong 이미지 컷"
*출처 : The Fleming Hong Kong Official Website
밤에 찍은 더플래밍의 외관은 빈티지스러운 뉴욕이 연상되기도 하고, 내부의 디테일도 지상에 있는 호텔인 듯 아닌 듯 묘한 매력이 있다.
그렇게 타이페이에서 한 시간 여를 날아 도착한,
직접 찍은 더플레밍 호텔의 사진들.
마주한 호텔의 첫 모습, 외관 벽면에서부터 재밌는 디테일이 숨어 있다. 위쪽에 조명설비들과 함께 달린 삐죽삐죽한 작대기들이 보이는지?
이 삐죽한 작대기는 바로 홍콩 건물 공사 현장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나무 지지대' (전문용어로 '비계')를 형상화한 것. 어릴 적 홍콩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지금 홍콩 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홍콩의 이미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이 대나무 지지대를 건축물로 형상화하다니 기발하다.
더플레밍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깜찍한 물건.
매일 아침 단장 후 방을 나서기 전, 손으로 살짝 "CLEAN MY ROOM"으로 돌려주는 아날로그적 재미가 있다. 여기까지의 사진만 봐도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지금 우리가 무언가... 배에 승선해서 선내 객실을 둘러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맞다. 더플레밍은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빅토리아 하버'를 건너고 있는 홍콩의 대표적 아이콘, '스타 페리(STAR FERRY)'를 모티브 삼아 디자인된 호텔이다.
바다 내음이 날 것 같은 네이비 컬러의 스트라이프가 경쾌한 더플레밍의 룸. 홍콩 호텔답게 기본 룸 면적이 21 m²로 작긴 하나, 홍콩처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걷는 도시'에서 우리같이 단출한 신혼부부에겐 크게 불편할 것 없는 사이즈였다.
저 핸드폰은 외부로 가져가서 쓸 수 있으나 타이페이에서 이미 KLOOK을 통해 현지 심카드를 사 간지라 쓸 일은 없었다.
이제 로비로 나가 본다. G가 지상 레스토랑과 연결된 1층이고 로비는 2층에 위치한다.
이 의자에 숨어있는 깨알 디테일.
등받침이 마치 '스타 페리의 좌석처럼' 앞뒤로 왔다 갔다 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5성급 호텔이 아닌 비지니스 호텔이지만, 컨시어지 역할을 꽤나 훌륭히 수행해 준다. 도착하자마자 급히 요청한 미슐랭 레스토랑 예약 건에 매우 친절하고 빠릿하게 대응을 해줬더랬다. 더플레밍에 예약을 이미 했다면 사전에 이메일로 현지 레스토랑 예약을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강렬한 햇빛 아래서 올려다보면 이 건물 나이가 보인다. 약 사십여 년 된 1970년대 건물이다. 레노베이션을 하기 전에는 쭉 서비스 아파트먼트 형식의 비지니스 호텔로 장기 투숙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 사용하던 엘리베이터는 현재까지 바꾸지 않고 사용하고 있고 방 개수도 예전과 변함없다.
더플레밍호텔의 조식당 "Osteria Marzia"는 Ho Lee Fook, Buenos Aires Polo Club, La Vache! 등 홍콩에서 다수의 쟁쟁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Black Sheep Restaurant'에서 위탁 운영하는 곳이다. 이탈리아 해안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명처럼,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이국적인 공간 덕에 두 여행자는 행복한 기분으로 매일 아침을 열었다.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알찬 조식. 특히 빵과 치즈가 맛있어서 매일 아침 커피와 함께 치즈와 햄을 올린 토스트, 바나나와 요거트, 뺑 오 쇼콜라. 이렇게 든든한 아침을 먹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분위기를 내는데 가장 큰 몫을 한 것은 아마도 이 컬러풀한 그릇들.
더플레밍의 오너는 홍콩에서 나고 자란 전직 테니스 선수. 경기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년간 어떤 호텔이 진짜 '즐길만한' 호텔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 시간을 거쳐 선수 은퇴 후 가족 사업이었던 호텔 비지니스로 돌아왔고, 결국 더플레밍을 모두가 주목하는 완전히 새로운 호텔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레노베이션 전 그의 목표는 더플레밍을 홍콩의 문화를 짙게 품고 있고 그 안에서 홍콩을 'celebrate' 할 수 있는 호텔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목표는 외부의 반응으로 보아 꽤나 성공적으로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모든 소비와 연관된 것들의 '스토리'에 열광하고 지갑을 여는 이 시대에 더플레밍과 같이 한 끗으로 차별화된 호텔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Ju_호텔 Comments (더플레밍 홍콩)
- 요즘 핫한 바,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완차이'에 위치.(센트럴과 코즈웨이베이의 중간)
- MTR까지 도보 4분, 얼리 체크인 및 AEL이용 가능한 홍콩역까지 차로 10분 거리
- '17년도 10월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장하여 매우 쾌적함
- 스타페리를 모티브로 한 홍콩의 문화가 녹아있는 색다른 테마의 호텔
- 비지니스 호텔이라 수영장은 없으나, 근처 State-of-Art 피트니스센터 무료 이용 가능
- 가족단위 혹은 부모님과의 여행보다는 친구 혹은 커플 여행자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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