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는 것의 힘
나는 장시간 운전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운전습관도 차선 변경을 최소화 하자는 주의다. 그렇다 보니 앞차와의 간격만 적당히 유지해도 사고 확률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자랑이지만 근 30년간 내 과실에 의한 사고는 O건… 이쯤 되니 차선을 요리조리 바꾸며 틈으로 어떻게든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운전자를 보면.. 신기하면서도 왜 저러나 싶다. 조금의 시간은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차선을 자주 바꾸면서 높아지는 사고위험과 높은 긴장, 낮아질 연비까지.. 에너지 손실이 작지 않다.
과연 그게 꼭 필요한 선택일까? 하지 않아도 될 일(잦은 차선 변경)을 우린 너무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필요한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의 기억 속에 스티브 잡스는 항상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었다. 이 단순한 스타일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그가 떠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으로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한 곳에서 불필요한 선택을 하길 싫어했다. 그의 단순한 선택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중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역시 회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는 옷 선택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항상 같은 스타일을 고수한다고 알려져 있다.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이유다.
책 "트리거(Triggers)"의 저자! 세계적인 리더십 구루로 잘 알려진 마셜 골드스미스는 초록색 폴로셔츠와 카키색 면바지를 항상 입는다. 여기에 갈색 로퍼를 세트로 신는다. 이제 사람들은 이 삼종세트를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인식하고 있다. 그가 이 옷들을 선택하게 된 것은 <더 뉴요커>의 한 기자가 그의 기사를 쓰면서부터다. 기자는 그가 늘 초록색 폴로티와 카키색 면바지를 즐겨 입는다고 기사에 냈다. 그 후 청중들은 강연장에서 마셜 골드스미스가 늘 그 옷을 입고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심지어 의상 선택은 그의 메시지와 일관되게,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리더십과 코칭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는 평가다. 그의 헤어스타일은 어떤가? 그는 늘 한결같다(대머리). 젊은 시절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으로 애써 감추려 했던 때가 있었다. 미용실에서 잠든 사이 미용사는 시원하게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을 몽땅 잘라 버렸다. 이후 자신이 대머리라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있기로 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의 저자인 사이먼 샤이넥 항상 깔끔한 셔츠와 안경을 착용한다. 그의 단정한 스타일은 신뢰감을 주며, 그의 강연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이먼 샤이넥이 캐주얼한 옷을 입은 모습을 구경하기란 좀 어려운 일이다. "아웃라이어(Outliers)"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은 또 어떤가? 그는 곱슬머리 펌과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유명하다. 그의 독특한 외모는 그를 쉽게 기억하게 만들며, 그의 강연 스타일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헤어스타일에 신경 쓸 이유가 사라졌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s)"의 저자인 제임스 클리어는 그의 강연에서 간단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는 깔끔한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명확하고 체계적인 접근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는 대회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빨간 셔츠와 짙은 색 바지를 입는다.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기 위해 정해진 옷을 입음 으로써 불필요한 선택을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어쩌면 스포츠 선수의 징크스로 볼 수 도 있겠다).
덜 중요한 결정에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가 늘 하는 선택의 과정이 결정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선택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면 결국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다른 결정을 해야 하여, 중요한 선택에서 질 나쁜 결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은 오전에 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수면으로 인해 오전에 집중력이 좋기 때문이다. 이치에 맞는 말이다. 핵심은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덜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 한 사람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은 제한적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푸른색과 밝은 색 계통을 참 좋아한다. 선명하고 깨끗해서다. 그래서 특별한 자리(강연이나 발표)에서는 밝은 색과 푸른색을 주로 입는다. 좋아하는 색상이라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기분도 상쾌하다. 구체적으로는 짙은색 폴로 긴팔 셔츠에 밝은 톤의 바지를 즐겨 입는다. 결국 불필요한 고민거리가 하나 줄어든 샘이다. 신발도 갈색 벨트에 맞춰 갈색 구두를 주로 신는다. 외출준비에 소요되는 시간도 아끼고, 불필요한 선택에 에너지를 쓸 일도 사라졌다.
실제로 지난 8월에 세계적인 리더십 분야의 구루인 마셜 골드스미스 박사를 만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할 때에도 고민 없이 익숙한 색을 선택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쁜 사람들이 참 많다. 적당히 바쁜 것은 좋지만 시간이 부족해 숨 가쁘게 일상이 채워지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마련이다. 바쁘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 되어 무엇이 더 중요한지 덜 중요한지 혼통 뒤죽박죽 되어 이 둘을 똑같이 대하게 된다. 이래서는 좋은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에서 특히 팀장급 이상은 의사결정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실무로 너무 바쁘다면 좋은 선택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우린 모두 제한된 에너지를 써야 하고, 다 쓰고 나면 방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반드시 나눠야 한다. 그 일들이 꼭 내가 해야 할 일들인가? 바빠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나..
나를 바쁘게 하는 그 모든 일들이 다 중요한 일일까?
안 해도 될 불필요한 선택이나 일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